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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오는 토마 피케티 / 주상영
관리자 . 2018.10.15

주상영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국민경제자문회의 거시경제분과 의장

 
<21세기 자본>의 저자 토마 피케티가 이달 말에 한국에 온다. 피케티는 탄탄한 역사적 통계와 직관적이고 단순한 이론을 바탕으로 세계 동시의 조세혁명이라는 급진적이고 담대한 제안을 한 바 있다. 폴 크루그먼은 그의 책을 읽고 “우리가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과 경제학자들이 경제학을 생각하는 방식을 바꿀 것”이라고 칭찬하고 <뉴욕 타임스>에 수식과 그래프까지 동원하면서 그의 이론을 소개하기도 했다.

 
2014년 9월 피케티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 필자는 그의 강연회에 참석했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자신의 책 내용에 다 동의할 필요는 없다고 말한 대목이었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글로벌 부유세라든지 사회국가 같은 개념이 부담스러우면 그건 독자의 판단에 맡기겠다는 것이다. 대신 책의 제3부까지 내용, 즉 기본 이론과 역사 자료에 대해서는 상당한 자신감을 보였다. 적어도 이 부분은 보수든 진보든, 주류든 비주류든 모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필자도 그렇게 생각한다.

 
피케티의 학문적 업적은 역사적 사실과 통계 수치를 이용해 경제적 불평등의 동학을 밝혀낸 데 있다. 주요 선진국에 대해 300년에 걸친 방대한 자료를 제시했는데, 경제적 불평등은 18~19세기 유럽에서 가장 심했고 20세기 중반에 둔화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1980년대 이후 다시 악화되었다. 이 추세대로 가면 아마 21세기 중반쯤에는 다시 19세기 말의 모습으로 되돌아갈지 모른다는 것이 그의 예측이다. 한국에서는 1997년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불평등에 관한 모든 지표가 악화되었는데, 선진국에서 오랜 기간에 걸쳐 진행된 현상이 한국에서는 십여년 만에 압축적으로 발생했다.

 
<21세기 자본>은 프랑스 인권선언 제1조를 인용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나 살며 동등한 권리를 누린다. 오직 공공의 선에 기초할 때에만 사회적 차별이 가능하다.” 오늘날 심화된 불평등이 과연 공공의 선이라는 차원에서 허용될 만한 수준일까? 피케티는 불평등의 역사를 분석했고, 분배 문제를 경제학의 중심으로 복귀시키려고 했다. 불평등이 여기서 더 악화되면 능력주의 원칙이 훼손되고 민주주의와 사회정의마저 위협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보수진영은 피케티의 방한을 달가워하지 않을 것이다. 사실 2014년 9월에 열렸던 세미나도 구성 자체에 문제가 있었다. 멀리서 저명 학자를 불렀으면 얘기를 잘 듣고 점잖게 토론하면 그만인데, 무례할 정도로 많은 시간을 반대 토론과 맞대응에 할애했다. 어느 경제 단체는 그가 오기도 전에 그의 이론을 반박하는 책을 급조해서 펴내기도 했다. 언론의 왜곡 보도도 심했다. 어느 언론은 그가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고 인터뷰 기사 제목을 뽑기도 했다. 단지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려고 그렇게 두꺼운 책을 쓴 게 아닌데 말이다.

 
2015년 1월 미국 보스턴에서 열린 전미경제학회에서는 그 유명한 ‘맨큐-피케티 논쟁’이 벌어졌다. 피케티는 자신을 심하게 몰아치는 하버드대학의 그레고리 맨큐를 향해 다음과 같이 냉소적으로 응수했다. “부자들은 옷이나 음식만 사는 게 아니라 정치권력이나 경제학자마저 산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대공황 당시에 자본주의를 구하려면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총수요를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을 편 바 있다. 21세기의 피케티는 자본이 가진 무소불위의 힘을 적절히 조절하고 분배 개선에 노력을 기울여야 자본주의를 살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한국을 다시 찾는 그에 대해 각계에서 어떤 반응이 나올지 벌써 궁금해진다.

한겨레에서 보기: 
//www.hani.co.kr/arti/opinion/column/865462.html#csidx476ba96a94122b886ac898d15177e8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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