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 피케티
5년 전 저서 ‘21세기 자본’서 경고음
70여 나라 자산-소득 DB 구축
‘세계불평등보고서 2018’ 내는 데 공헌
더 심해진 상위 1% 자산 집중 밝혀
한국 진보진영 해법 찾기에 도움

리처드 윌킨슨
사회구조-공공건강 관계 30년 연구
부유한 23개 나라 비교분석 결과
소득수준이 같아도 불평등 사회 땐
더 아프고 더 빨리 죽는다는 결론
쌍용차 해고 등 우리 사회에 큰 교훈
2011년 9월 미국 뉴욕의 금융 중심지 월스트리트에서 극단적인 빈부 격차와 금융자본의 탐욕에 항의해 벌어진 ‘오큐파이(점령하라) 운동’에 참가한 한 시민이 ‘우리가 99%다’라고 쓰인 팻말을 들어보이고 있다.   위키미디어 커먼스
2011년 9월 미국 뉴욕의 금융 중심지 월스트리트에서 극단적인 빈부 격차와 금융자본의 탐욕에 항의해 벌어진 ‘오큐파이(점령하라) 운동’에 참가한 한 시민이 ‘우리가 99%다’라고 쓰인 팻말을 들어보이고 있다. 위키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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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총생산(GDP) 세계 12위, 수출 세계 6위.

 
한국 경제가 지난해 받아든 성적표는 화려하다.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도 코 앞에 다가왔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완전히 딴판이다. 최근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이 국세청 과세자료를 근거로 분석해보니, 일을 해 벌어들인 소득과 자산 보유에서 발생하는 소득을 합친 ‘통합소득’을 기준으로 삼으면 지니계수가 0.5를 넘어섰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일반적 기준에 따르더라도 ‘불평등이 매우 심한’ 상태에 해당한다. 자산 상위 10%가 전체 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무려 70%대에 근접한다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이뿐 아니다. 소득과 자산의 극심한 불평등은 건강과 시간, 주거 등 삶의 여러 영역에서 깊은 생채기를 남기고 있다. 자살률 1위와 출산율 꼴찌라는 불명예는 요지부동이다. 불평등의 골이 갈수록 깊어지면서 모든 영역이 곪아 터지고 있는 한국 사회의 어두운 현주소다.

 
토마 피케티 프랑스 파리경제대학 교수는 경제적 불평등, 특히 자산 불평등 연구에 매진해온 대표적 학자다. 피케티 교수는 2014년에 출간돼 세계적으로 화제를 모았던 <21세기 자본>을 통해 여러 나라에서 관찰되는 극심한 자산 불평등과 극소수의 부 독점이 세상을 중세 세습사회로 되돌릴 지도 모른다고 엄중하게 경고한 바 있다. 불평등 연구를 경제학의 핵심과제로 자리매김한 <21세기 자본>은 주류 경제학계의 뒤늦은 ‘반성’과 맞물려 커다란 파장을 낳기도 했다. 세계은행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이 ‘포용성장’을 강조하고 나선 건, 부자의 주머니부터 채워야 불평등이 사라지고 빈곤층의 주머니가 채워진다는 ‘낙수효과’ 주장이 거짓임을 스스로 고백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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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 피케티 파리경제대 교수 류우종 <한겨레21> 기자 wjryu@hani.co.kr

 
피케티 교수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그 사이 70여개 나라의 소득과 자산 불평등 시계열 자료를 한데 모은 세계 자산·소득 데이터베이스(WID.월드)를 구축해 누구나 자유로이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든 것도 그의 주된 공로라 할 만하다. 그가 중심이 돼 파리경제대학의 세계불평등연구소에서 지난해 연말 펴낸 <세계 불평등 보고서 2018>은 그 결과물이다. 미국과 유럽은 물론 신흥경제국까지를 포괄하는 이 책은 각국은 물론 전세계 차원의 불평등도 차츰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2016년 기준으로 세계 자산 집중도 상위 1%는 전체 자산의 33%를 소유해, 30년 전인 1988년(28%)에 견줘 집중도가 한층 높아졌다.

 
토마 피케티 교수가 자산 불평등을 근거로 세습사회의 문턱에 선 세상에 경고음을 날렸다면, 불평등과 건강의 상관관계라는 독특한 주제에 오랜 기간 주목해온 대표적 학자로는 리처드 윌킨슨 영국 노팅엄대 사회역학 명예교수를 꼽을 수 있다. 영국 정경대학(LSE)에서 경제사와 과학철학을 전공한 윌킨슨 교수가 사회역학 분야를 개척하며 남긴 발자취는 오래도록 빛을 내고 있다. 건강을 불평등의 영역으로 끌어들인 윌킨슨 교수는 영국 정부로 하여금 건강 불평등을 국가적인 연구과제로 삼도록 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가난한 사람이 더 많이 아프다? 부자일수록 더 오래 산다? 얼핏 생각하면 건강과 불평등이란 열쇳말은 쉽게 하나의 연결고리로 맺어질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윌킨슨 교수가 던지는 메시지는 단지 가난이 사람들을 병들게 하고 수명을 단축한다는,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가 결코 아니다. 설령 소득 수준이 동일하다 하더라도 불평등 정도가 더 높은 사회에 사는 구성원일수록 더 많이 아프고 더 빨리 죽는다는 게 그가 내린 결론이다. 예컨대 인구당 의사 수, 병원 수용가능률, 개인의 의료비 지출이 기대수명에 미치는 영향이 그리 크지 않다면, 답은 결국 ‘불평등’에서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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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처드 윌킨슨 노팅엄대 사회역학과 명예교수 <한겨레> 자료사진

 
윌킨슨 교수는 부유한 23개 나라를 대상으로 비교분석을 한 결과, 불평등 정도가 심한 나라일수록 정신질환과 질병, 자살, 범죄 빈도가 높고, 사회적 신뢰도 떨어진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처럼 불평등이 사회 구성원의 건강에 해를 끼친다는 윌킨슨 교수의 주장은 건강과 불평등을 바라보는 기존의 시각을 근본적으로 바꿀 것을 요구한다. 문제의 핵심은 가난한 사람들이 치료를 받지 못한다는 점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은 왜 더 많이 질병에 걸리느냐에서 찾아야 한다고. 30년 넘게 사회구조와 공공의 건강이 맺는 관계에 매달려온 윌킨슨 교수의 결론은, 단순하지만 외려 명쾌하다. 평등해야 건강하다! 평등이 답이다!

 
토마 피케티와 리처드 윌킨슨. 불평등을 화두로 삼아 외길을 고집해온 두 세계적 석학은 10월 30~31일 이틀간 열리는 제9회 아시아미래포럼 첫날 오전 나란히 기조 강연자로 나선다. 두 사람의 기조강연이 끝난 뒤엔 이정우 한국장학재단 이사장의 진행으로 두 사람과 이강국 일본 리쓰메이칸대 경제학부 교수가 함께 참여하는 정책대담의 시간이 기다리고 있다. 한국 사회의 최대과제인 불평등과 어떻게 맞서야 하는지와 관련해, 정부와 정치권, 재계와 학계, 시민사회에 두 사람이 어떤 목소리를 들려줄 지 사뭇 관심거리다.

 
<21세기 자본>이 나온 지 4년. 그 사이 세상은 요동쳤다. 인종주의와 국수주의를 내건 포퓰리즘이 세계 곳곳에서 득세했고,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선 제조업이 몰락한 ‘러스트벨트’의 백인 노동자들이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에 표를 몰아줬다. 피케티 교수는 올해 초 발표한 ‘브라만 좌파 대 상인 우파’라는 화제의 논문에서 1948~2017년간 미국·영국·프랑스의 선거 데이터를 분석해보니, 좌파는 교육 받은 엘리트(브라만 좌파)를, 우파는 수입과 재산이 많은 엘리트(상인 우파)를 대변하는 추세가 더욱 뚜렷해졌다고 결론 내린 바 있다. 비록 맥락은 크게 다르지만, 한국 사회의 불평등 해법과 관련해 시사하는 바 적지 않다. 전통적인 의미의 진보진영이 내건 해법이 ‘지금, 여기’ 불평등 구조에서 가장 고통받는 사람들로부터 외려 멀리 떨어져 있는 건 아닌지 진지하게 되돌아보는 기회를 마련해 주고 있어서다. 4년 만에 다시 한국을 찾는 피케티를 주목하는 이유다.

 
‘불평등한 사회는 어떻게 퇴보하는가’를 주제로 기조강연에 나설 윌킨슨 교수는 지난 봄 게이트 피킷 영국 요크대 공공보건역학 교수와 함께 쓴 <이너 레벨>(The Inner Level) 에서 평등해야 건강하다는 메시지를 한층 구체적인 언어로 담아냈다. 그는 과거 한 인터뷰에서 평등이 답인 이유를 이런 에피소드로 들려준 바 있다. 1980년대 이후 해고가 일상화된 영국에서 해고 광부들 가운데 목숨을 끊는 사람들이 유독 많았다고. 우리에겐 너무도 낯익은 풍경이다.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 가운데 목숨을 버린 숫자가 이미 30명을 헤아리고, 79%가 우울증을 앓고 있으며, 40%가 자살 충동을 느꼈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 우리는 윌킨슨 교수의 이야기에서 어떤 교훈을 찾아야 할까.

 

 
▶토마 피케티

 

 
1971년 생

 
영국 런던정경대학(LSE)과 프랑스 고등사회과학원(EHESS)을 거쳐 거쳐 1993년 22살에 박사학위 받음. 프랑스 경제학회가 주는 ‘올해의 최고논문상’ 수상

 
1993~1995 미국 메사추세츠공과대학(MIT) 경제학과 조교수

 
1995~2007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소 연구원

 
2007~현재 프랑스 파리경제대학 교수

 
2015년 제레미 코빈이 이끄는 영국 노동당 경제자문

 
2017년 프랑스 사회당 대선 후보 브누아 아몽 캠프 활동

 

 
▶리처드 윌킨슨 약력

 

 
1943년 생

 
영국 런던정경대학(LSE)에서 경제사와 과학철학을 전공한 뒤 노팅엄대 사회역학 교수로 재직

 
2008~현재 노팅엄대 사회역학 명예교수, 런던대학교 공공건강과 역학 명예교수, 요크대학 초빙교수

 
2011년 세계정치학회가 주는 ‘올해의 책’ 수상(<평등이 답이다>)

 
* 주요 저서

 
<건강 불평등: 사회를 어떻게 죽이는가>, <평등해야 건강하다>, <평등이 답이다 : 왜 평등한 사회는 늘 바람직한가>

 

 
최우성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시민경제센터 연구위원 morge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