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아시아미래포럼 특집】 10월31일 세션 5
디지털 전환과 노동의 미래

4차 산업혁명 시대 왔는데
노동법은 옛날 방식 그대로
디지털 시대 앞 효력 잃어가

일본-중국에선 정부 주도 역할 강조
초국적-특수 고용 고려하고
기계화 물결 대비책 있어야

디지털 시대, 곳곳에 깔린 인터넷 망과 스마트폰이 시공간의 경계를 넘어 사람과 사물을 촘촘히 연결한다. 기술의 발전은 산업의 구조와 노동 방식을 뒤흔든다. 인터넷만 있으면 지구 어디에서나, 언제든 일을 할 수 있다. 증기 기관이 촉발한 제1차 산업혁명이 논밭의 노동자를 공장으로 불러들인 것처럼 인공지능과 빅데이터가 불러올 제4차 산업혁명은 노동자를 거리로 나오게 할 것이다.

 
일하는 장소와 내용은 일하는 시간에도 영향을 끼친다. 농사를 짓던 농민은 자연의 시간에 따라 움직이지만 공장의 노동자는 전등 빛으로 밝혀진 공장에서 밤낮없이 일한다. 지금의 법과 제도는 공장 노동자를 기준으로 만들어졌다. 회사와 계약을 맺은 노동자는 정해진 장소에서 정해진 시간만큼 일하고 월급, 보험, 연금 등으로 이루어진 대가를 받는다. 제조업에서 서비스업으로 노동의 중심이 이동했지만 법과 제도는 산업사회의 유산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기존의 고용 관계로 설명할 수 없는 노동은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프랜차이즈 가맹점주, 택배 기사, 학습지 교사, 방송작가처럼 노동 조건을 통제받는 사장님, 노동의 대가를 보장받지 못하는 노동자가 흔해졌다.

 

 

 
노동자와 회사의 관계를 규정하고 각 주체의 권리와 의무를 명기했던 노동법과 사회보장법은 개별 국가 내에서만 작동한다. 기업의 활동이 국경을 넘지 않았을 때, 노동자들은 각 국가의 법과 제도의 혜택을 누릴 수 있었다. 운이 좋아 ‘복지국가’에서 태어난다면 개발도상국의 노동자보다 더 좋은 환경에서, 같은 일을 하고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었다. 하지만 초국적 기업의 등장은 노동자 간의 격차를 줄였다. 값싼 노동력과 낮은 세금을 좇아 언제든 국경을 넘을 수 있는 초국적 기업 앞에서 각 국가의 노동자 보호 정책은 점점 효력을 잃어가고 있다. 디지털 시대는 기업의 규모에 상관없이 모든 기업을 초국적 기업으로 만든다.

 
서비스 사회로의 전환에 제때 대비하지 못한 채 우리는 디지털 시대를 앞두고 있다. 준비 없이 맞이하는 디지털 시대는 서양에서 불평등이 가장 심했던 18~19세기의 모습을 재현할 수도 있다. 더 늦기 전에 불평등을 해결할 새로운 상상이 필요하다.

 
아시아미래포럼 둘쨋 날인 31일 오후, 한국노동연구원 주관으로 디지털 시대에 걸맞은 노동의 미래를 논의하는 자리가 마련된다. 좀 더 정의로운 노동, 좀 더 인간적인 노동을 추구하기 위한 한국, 중국, 일본 세 나라의 경험을 공유한다. 장소와 시간의 경계가 희미해지는 시대에 한국만의 대책은 유효하지 않기에, 우선 지리적으로 가까운 두 나라와 공동의 노동법과 제도를 고민해보자는 취지다.

 
첫 번째 발제자인 최석환 명지대 교수(법학)는 제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정부 주도로 법과 제도를 개정하고 있는 일본의 사례를 소개한다. 일본은 올 6월 사회보장제도 및 세금제도 개편, 근로시간 상한제 도입 등을 뼈대로 ‘일하는 방식 개혁을 추진하기 위한 법’을 제정했다. 최 교수는 이러한 일본의 움직임을 “과거에는 건강한 성인 남성이 노동자의 기준이었다면, 저출산?고령화를 계기로 여성과 노인의 노동력을 활용하는 방안을 고민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고용 형태가 다양해지는 사회 흐름에 맞추어 편의점 점주, 서비스 엔지니어 등 전통적 고용 관계에 속하지 않는 특수형태 고용종사자(특고)의 계약 조건을 규제하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고 말했다.

 
저우 광쑤 중국 인민대학교 교수(노동인사학원)는 디지털 전환이 불러올 중국의 노동시장 변화를 지역과 산업, 노동자의 특성별로 나누어 보여줄 예정이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남성보다는 여성이, 나이가 많고, 교육수준이 낮고, 소득이 낮은 노동자일수록 기계에 대체될 확률이 높다. 예견된 변화를 앞두고 있는 지금, 다음 행동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 저우 광쑤 교수는 “정부가 기술의 발전이 지닌 긍정적인 면만 홍보할 것이 아니라, 노동시장의 자동화에 따른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 방안으로 “노동자의 숙련도를 높여 기계에 대체될 가능성을 줄이고, 소득 감소나 노동시간 증가 등 노동 조건의 악화를 최소화하는 방안을 고민할 것”을 제안했다.

 
한국의 사례는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이 소개할 예정이다. 이날 토론자로는 왕 페이 중국 인민대학교 노동인사학원 교수, 강성태 한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장지연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나선다.

 
해당 세션을 기획하고 좌장을 맡은 박제성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노동자가 정해진 시간과 장소에서 일하고 그 대가로 물질적 복지를 보장받는 시대는 지났다”며 “고용 여부와 상관없이 노동자의 인격에 연계한 권리 보장 제도를 구상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송진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 연구원 jyso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