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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철 칼럼] 툰베리의 결기
관리자 . 2019.10.10

칠십, 팔십이 넘은 노인이라면 모를까, 아직 10대인 소녀가 환경파괴에 대한 걱정 때문에 옷도 새로운 것을 사 입지 않겠다고 말하는 이 단호한 태도, 지구를 살리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겠다는 이 놀라운 집중력에 대하여 우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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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소형 요트를 타고 2주 만에 뉴욕에 도착한 그레타 툰베리, 올해 16살인 이 스웨덴 소녀는 어느새 세계적인 인물이 되었다. 지난해 가을부터 학교로 가는 대신 국회의사당 앞으로 가서 1인 시위를 시작한 이후 그는 “우리의 집(지구)에 불이 났는데, 어른들은 왜 딴짓만 하고, 불을 끌 생각을 하지 않나요?”라는 질문을 집요하게 되풀이해왔다. 이 단순명료한 메시지는 그 자체로 강력한 호소력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말과 행동 사이에 조금도 어긋남이 없는 그의 모습에서 지금 많은 사람들은 너무나 순수한 진정성을 느끼고, 그 절실한 호소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 소녀가 요트를 타고 대서양을 건넜다는 것은 그 자체로는 신기할 것도, 별로 찬양할 만한 일도 아닐 것이다. 그러나 말이 좋아서 요트 항행이지, 툰베리의 이번 여정은 화장실도, 샤워시설도 없는 것은 물론, 인터넷도 연결되어 있지 않은, 거의 바람의 힘에 의지하여 움직이는 조그마한 요트를 타고 광대한 해양을 가로지르는 항행이었다. 결코 쉽고 편안한 여행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이 바삐 돌아가는 세상에서 굳이 그런 여행수단을 택한 것은 오늘날 환경파괴의 주범 중 하나, 즉 비행기를 타지 않으려는 결심 때문이었다. 툰베리는 자신이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오늘날 환경운동가들조차도 끊임없이 항공여행을 하고 거리낌 없이 (공장식 축산물인) 육류를 먹는 행동이라고 어느 집회에서 말한 적이 있다. 그러니까 적어도 자신은 절대로 비행기를 타지 않겠다는 단호한 자세를 이번의 대서양 횡단 항행을 통해서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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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뉴욕에 도착한 직후 어떤 언론인과 나눈 대담에서 툰베리는 자신의 사적 생활에 관련해서 또 한번 경악할 만한 발언을 했다. 즉, 자기는 현재도 새로운 옷을 사 입지 않고 있지만,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요컨대 지구를 이토록 망가뜨려온 소비주의문화에 자기만이라도 참가를 거부하겠다는 결의를 그런 식으로 표현한 것이다. 칠십, 팔십이 넘은 노인이라면 모를까, 아직 10대인 소녀가 환경파괴에 대한 걱정 때문에 옷도 새로운 것을 사 입지 않겠다고 말하는 이 단호한 태도, 지구를 살리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겠다는 이 놀라운 집중력에 대하여 우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우리들 대부분은 지금 환경을 걱정하고, 기후변화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면서도 늘 생각(혹은 말)과 행동이 따로 도는 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어정쩡하게 살아가고 있다. 이른바 환경운동에 생애를 바치고 있는 사람들도 예외가 아니다. 예를 들어 미국의 대규모 환경단체들 중에는 회비나 일반시민들이 낸 후원금을 ‘굴려서’ 더 큰 돈으로 만들기 위해 주식투자를 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고, 또 우리가 잘 아는 나라의 어떤 환경단체가 주관하는 주요 연례행사 중에는 (한번 움직일 때마다 자동차 수백만대분의 대기오염물질을 뿜어내는) 크루즈선을 타고 연근해를 돌면서 몇날 며칠 동안 진행하는 선상 토론이라는 것이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자신의 애초 목적에 충실한 운동인지, 조직을 유지·확대하기 위한 비즈니스 활동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애매모호한 현상이 환경운동권에서도 흔히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원인은 무엇일까? 거두절미하고 말한다면, 자연환경이 끊임없이 훼손·오염되고 무수한 생물종이 멸종되어 가고 있는 상황에서 인간정신이라고 해서 온전한 상태로 있기는 극히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미나마타병’이라는 비극적인 산업재해의 문명사적 의미를 생애 마지막까지 캐물었던 작가 이시무레 미치코의 표현을 빌려 말하면, 지금은 “인간정신이 극도로 쇠약해진” 말세 중의 말세이다. 그러므로 훌륭한 목적을 위해 출발한 일이 도중에서 방향이 흐려지거나 변질되는 것은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는 상례인지도 모른다.

 

“말 따로, 행동 따로”라는 현상은 오늘날처럼 근본적으로 뒤틀린 세상에서는 강인한 정신력의 소유자가 아니라면 누구든 노출할 수밖에 없는 ‘실존적 한계’라고 할 수 있다. 더욱이 환경운동이라는 것은 다양한 사회운동 가운데서도 가장 큰 딜레마를 처음부터 내포하고 출발한 운동이다. 즉, 환경을 지키려는 운동을 하면 할수록 환경에 대한 부담이 가중되는 역설적인 논리를 감수해야 하는 것이 환경운동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툰베리가 매우 이상하게 여기는 사태, 즉 고명한 과학자들이나 환경운동가들이 밤낮없이 비행기를 타고 돌아다니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캐나다의 원로 환경운동가 데이비드 스즈키는 몇해 전부터 항공여행을 해야 하는 강연은 중지하고, 그 대신 영상을 이용한 강연을 한다는 원칙을 정하고 실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착잡한 상황에서, 지금 서양에서는 무너지는 자연환경을 지키기 위한 마지막 수단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도 생겨나고 있다. 기후위기에 둔감한 동료 시민들에게 강력한 경고를 하기 위해서, 혹은 자기 한 사람이라도 사라지면 지구가 그만큼 건강을 되찾을 확률이 높아질지도 모른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그렇게 결행하는 것이다. 물론 이들은 아직은 극소수이고, 따라서 이에 대한 언론 보도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지금은 미미한 듯 보여도 이것은 매우 불길한 미래를 예고하는 신호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인류사회는 파국적인 기후변화로 멸망하기 전에 인류 가운데 가장 순수하고 맑고 민감한 영혼들이 사라지거나 병들어버린 결과로 속절없이 붕괴할 가능성도 있음을 그것은 암시해주기 때문이다.(실제로 최근 만난 한 젊은 농부도 그런 의미의 ‘자살’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는 얘기를 했다. 나는 절대로 그런 생각은 하지 말라고, 우리가 할 수 있는 데까지 성실하게 노력하다가 가면 되는 것이지, 세상을 살리겠다고 뭔가 비상한 행동을 해야겠다고 작심하는 것도 ‘교만심’의 발로일 수 있다고 말했으나, 그렇게 말하는 내 마음이 편할 수는 없었다.)

 

그런 점에서 툰베리의 결기에 찬 말과 행동은 우리에게 큰 용기를 준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툰베리는 오늘날 환경문제에 대한 해결이 왜 이토록 어려운지 그 근본적인 이유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봄 영국 하원에서 행한 연설 중에서 “대중의 지지를 잃을까봐 ‘더 많은 성장’을 끊임없이 약속하고 있는” 정치가들의 위선과 거짓을 날카롭게 비판한 대목에서 그 점을 분명히 느낄 수 있다. 장기적인 비전도, 최소한의 책임감도 없는 저열한 정치가 이대로 계속된다면 구원의 가능성은 제로라는 것을 이 영민한 소녀는 명확히 인지하고 있는 것이다.
 

한겨레에서 보기:

//www.hani.co.kr/arti/opinion/column/91019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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