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상위 10% 자산 집중도 66.5%
미국-영국에 근접하며 양극화 커져
‘부의 대물림’ 주거-일-삶에까지 확장
피케티가 말한 ‘중세로의 회귀’ 방불

다양한 상상력 통한 불평등 극복 방안
세계적 대가들과 함께 현실적 탐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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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번째 아시아미래포럼이 열리는 올 가을은 리먼 브러더스 붕괴로 본격화한 글로벌 금융위기가 벌어진 지 꼭 10년이 되는 때이다. 그 어느 때보다 파장이 컸던 경제위기로 지난 10년간 세계 도처에서 수많은 사람이 고통을 겪었다. 직장을 잃었고, 살던 집에서 쫓겨났으며, 일부는 비극적 선택을 하기도 했다. 미국, 유럽 등 선진국들은 양적 완화로 겨우 위기의 표면을 덮어놓는 데는 성공했으나, 상처를 치유하고 위기의 재발을 방지하는 일은 제대로 손을 못대고 있다.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경제위기 근절이 쉽지 않은 것은 그 뿌리를 심화한 불평등, 그리고 이를 재생산하는 경제, 사회구조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1979년부터 2012년까지 상위 1%가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몫이 두 배 넘게 커지는 등 80년대 이후 전 세계에 ‘불평등의 회귀’ 현상이 빚어졌다. 여러 정부가 불평등 완화를 위해 최저임금 인상 같은 포용적 정책을 채택하고 누진적 세제를 도입하는 노력을 기울여왔다. 그런 한편 포퓰리즘을 자극하는 극단 세력이 정치적 세를 얻고, 미국-중국의 분쟁에서 처럼 보호무역의 성벽을 쌓는 등 국제사회에 갈등과 긴장이 높아지고 있기도 하다.

 
한국으로 눈을 돌리면 불평등이 발밑으로 파고들어 위기로 향해가는 사회가 보인다.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이 기획해 10월 중 연속 보도한 ‘한국형 불평등 말한다’ 에는 이런 실상이 잘 드러난다. 무엇보다 불평등의 대표 지표인 지니계수가 0.5가 넘었다는 통계는 한국의 불평등이 결코 가볍게 넘길 수준이 아님을 말해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일반적으로 지니계수가 0.5가 넘으면 불평등 정도가 ‘매우’ 높은 것으로 본다. 일해서 버는 근로소득 지니계수 (0.47) 보다 통합소득 지니계수가 높아진 것은 자산이 불평등을 악화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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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 한국의 자산은 상위 10%가 66.5%를 소유해 집중도가 미국이나 영국의 70% 선에 다가가고 있다. 올해 그랬듯이 주기적인 아파트 가격 급등으로 서울 및 강남에 집 가진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자산 격차가 점점 벌어지고 있다. 이런 자산불평등은 ‘부의 대물림’을 통해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진다. 지난해 상속 및 증여 재산총액은 67조9천여억원으로 별다른 노력 없이 부모나 조부모에게 물려받는 재산이 하루 1800억원꼴로 나타났다. 이번 포럼의 기조 연사인 토마 피케티 교수가 <21세기 자본>에서 “중세사회로의 회귀”라 비유한 상황을 연상케 하는 것이다.

 
주거처럼 필수 재화에서도 불평등은 심화하고 있다. 1995년 이후 20년 간 30~34살 월세가구가 2배로 늘어 나는 등 모든 연령대에서 전세가 줄고 월세가 늘어났다. 월세는 주거비용이 상대적으로 비싸고, 전세가 그간 집 마련의 징검다리 역할을 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주거의 질이 낮아지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또, 전, 월세가구가 집 있는 가구보다 아이를 덜 낳는다는 통계도 나와 주거 불평등이 자녀 출생의 불평등으로 이어지는 게 확인됐다.

 
‘일과 삶의 균형’이란 측면에서도 불평등은 걸림돌이 되고 있다. 소득이 낮을수록 보육, 여가, 대인관계에 충분한 시간을 할애할 수 없는 ‘시간빈곤’ 상태에 더 많이 빠졌다. 소득 보전을 위한 장시간 노동이 일상화한 속에서 여성의 30%, 남성의 20%가 시간빈곤을 경험하고 있었다. 시간당 임금이 낮은 계층이 초장시간 노동을 하고 임금이 높은 층은 40시간 안팎의 표준노동을 해 시간이 소득에 따라 불평등하게 주어졌다. 부모가 가진 시간의 불평등은 가정에 돌아가서 하는 자녀 돌봄 시간 불평등으로 이어졌는데, 이런 격차는 또 다른 불평등의 원인이자 결과가 됐다.

 
‘포용적 성장’ ‘일의 미래’ 등 한국 사회에 긴요한 의제와 담론을 한발 앞서 제시해 온 아시아미래포럼은 올 해 좀 더 균등하고 역동적인 사회로 나가는 길을 찾아간다. 토마 피케티 파리경제대 교수, 리처드 윌킨슨 노팅엄대 명예교수 등 이 분야 세계적 대가에게서 불평등의 현상과 원인을 진단하고 대책을 듣는 자리를 마련했다. 불평등은 구조적 ‘고질병’이란 점에서 이번 포럼은 일반적인 분배와 재분배 외에도 상상력에 기반을 둔 다양한 해법들을 제시하고자 한다. 삶의 질과 복지국가, 노동의 미래, 전환시대 도시정책, 지역순환경제, 노사정의 사회적 대화 등의 세션에서 다양한 상상력을 만나게 된다. 첫날 오후 기조 연사인 사와다 야스유키 아시아개발은행(ADB)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아시아의 포용성장에 대해, 캐시 조 마틴 보스턴대 교수는 북구의 경험을 들어 사회적 합의를 통한 불평등 극복 방안을 들려준다. 저우 광쑤 중국 인민대 교수는 4차 산업혁명 기술에 집중투자하는 중국이 ‘노동과 직업의 변화’를 어떻게 다루는지 소개한다. 무엇보다 불평등 극복은 구성원 모두의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데 이때 필요한 것은 정치적 리더십을 유능하게 발휘하는 것이다. 피케티와 윌킨슨 모두 정치의 역할을 불평등 극복의 요체로 강조하는 점도 이번 포럼에서 눈여겨볼 대목이다.

 
이봉현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시민경제센터 연구위원 bh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