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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델 “능력주의 오만, 공동선에 대한 책임 망각하게 해”
관리자 . 2021.10.13
2021 아시아미래포럼
미리 만나보는 주요 연사 ② 마이클 샌델

 

제12회 아시아미래포럼에서 기조강연하는 마이클 샌델은 우리에게 생소한 인물이 아니다. 그는 2005년에 한국철학회의 초청을 받아 처음으로 우리나라에 와서 네차례 연속 강의를 했다. 2010년 밀리언셀러 <정의란 무엇인가>로 샌델은 우리에게 지적 셀럽이 되었다. 그는 새로운 책으로 우리 사회에 시의적절한 화두를 던져왔다. 지난해 말에 내놓은 <공정하다는 착각>은 한국 사회에 뜨거운 이슈로 떠오른 공정과 능력주의에 대한 논쟁의 중심에 자리잡았다.

지난 8월25일 비대면 영상 대화에서 샌델은 “능력주의는 불평등을 강화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능력주의는 “자신의 성공을 스스로의 행동에 의한 결과로 믿게 만듦으로써 가족, 이웃, 지역사회, 국가,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 빚지고 있음을 망각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러한 “능력주의의 오만”은 공동선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지 못하게 한다. 엘리트 계층이 “공동선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지 못하면 경제 구조를 바꿔 불평등을 줄이는 일은 불가능하게 된다”는 것이다.

샌델은 능력주의의 함정이 ‘코로나 팬데믹’ 같은 위기 시대에 꼭 필요한 국가 간 협력도 방해한다고 지적했다. 백신 개발에 막대한 공적 자금이 투입됐는데도 지식재산권을 빙자한 민간 기업의 탐욕으로 개발도상국에 충분한 백신이 제공되지 않는다고 했다. 이는 “특정 연구개발 패턴(민간 투자가 주도하는)에 의존함으로써 백신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선진국과 거의 접근하지 못하는 개발도상국의 분할선이 어떻게 심화되는지 잘 드러낸 사례”다. 샌델은 “코로나와 같은 긴급한 상황에서는 공동선과 세계적 공익을 위해 백신에 대한 특허권을 중단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샌델에 대한 가장 큰 오해는 그가 공동체의 가치를 가장 우선시하는 공동체주의자라는 것이다. 인간의 기본적 권리나 보편적 가치보다 자신이 속한 공동체나 집단의 가치를 우선시하는 것이 공동체주의라면, 샌델은 결코 공동체주의가 아니다. 2005년 처음 한국 방문 때 그에게 “공동체주의자로서의 견해”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샌델은 “나는 공동체주의자가 아니다. 나는 자유주의자다”라고 대답해서 기자들을 당황시켰다.

존 롤스는 정의로운 결과를 이끌어내는 보편적이며 형식적인 원리를 제시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인간은 자신이 속한 구체적인 상황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다고 상정하고, 이런 상상을 기초로 정의의 원칙들을 고안했다. 이성에 기초한 원리적 절차를 마련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인해 롤스는 자유주의자로 불린다. 자유주의자는 이성의 힘과 인권의 중요성, 보편적 가치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데, 샌델도 이런 믿음을 갖고 있다.

샌델이 롤스와 다른 점은 어떤 인간도 성장하며 교육받은 환경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고 생각한 점이다. 생각을 구성하는 언어를 통해 작용하는 인간 이성의 역할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공정과 정의에 이르려면 우리의 생각과 문화 속에 깊이 깔린 가치들에 대한 철저한 되돌아봄이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중요한 것은 문제적 상황들을 잘 분석하고 숙고하여 그에 걸맞은 도덕 원리들을 찾아 적절한 적용을 고민하고 판단하는 일이다. 이런 일은 혼자서만 잘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대화와 토론을 통해야 잘 이루어진다. 정의는 실천하는 시민들이 함께 생각하고 숙고함으로써 실현되는 것이다. 이것이 민주주의의 관건이다. 민주주의는 이런 시민을 토대로만 제대로 작동할 수 있다.

많은 교육을 받고 전문적인 지식을 갖춘 사람이 좋은 정치가가 되는 것이 아니다. 미국의 존 에프 케네디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모두 아이비리그 출신이고, 또 최고 학위를 가진 자들을 기용하여 국정을 이끌었다. 그러나 케네디는 미국을 베트남 전쟁의 늪으로 빠뜨렸고, 오바마는 금융위기 가운데 월가의 손을 들어주어 결국 권력이 도널드 트럼프에게 넘어가는 데 기여했다. 정치가의 핵심 자질은 전문지식이 아니라 사회의 다양한 구성원들의 관점을 적절히 대표하는 능력이다. 정치가는 스페셜리스트가 아니라 제너럴리스트여야 한다.

 

우리는 그동안 사회 발전을 위해 공정한 절차와 제도 확립에 큰 노력을 기울여왔다. 이제 그 절차가 과연 정의로운 결과를 낳고 있는지 깊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빈부격차는 날로 심해지고 계층 사다리는 점차 사라지고 있는 현실에서, 공정한 기회의 결과로 평등이 이루어지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공정한 절차가 능력주의와 결합된 데 있다. 능력은 사회 발전을 위해 중요하다. 그러나 능력주의라는 원리는 문제다. 능력주의는 시험을 통해 능력을 검증하고, 그 능력에 따라 돈과 권력을 부여하는 제도다. 나아가 경쟁의 승자는 보상의 자격이 있고 패자는 굴욕이 당연하다고 하는 정당화 장치이기도 하다. 시험을 응분의 자격을 부여하는 정당화 장치로 만든 것이 능력주의 원리이고 문화다.

능력주의가 문화로 장착된 사회에서는 승자의 오만도 정당한 것이 되고 패자의 열악한 삶과 열패감도 당연한 것이 된다. 차이가 차별이 되고 또 혐오로 바뀌어도 당연하다. 이런 사회에서 통합과 연대는 점점 더 멀어지게 된다.

 

공정한 절차 자체가 문제가 아니다. 그 절차에 임하는 이들이 이미 불공정한 환경의 산물이라는 것이 문제다. 비싼 과외 선생의 도움을 받은 학생과 자기 공부방조차 없는 학생, 가족을 위해 알바를 해야만 하는 학생에게 공정한 시험의 기회가 부여되어도 그 결과가 정의로울 수는 없다. 그래서 공정한 절차는 많은 보완 장치가 필요하며, 단지 부분적 중요성만 갖는다.

능력주의는 사회제도에서 작동하는 원리다. 문화가 그 원리를 작동하게 한다. 산업화와 급속한 경제 발전의 과정에서 우리 사회는 능력을 중시했고 능력주의를 문화로 장착했는데, 이것이 민주주의 제도의 발전과 결합하여 결국 공정한 절차가 정의로운 결과를 낳지 못하는 왜곡이 발생했다. 샌델이 제안하는 해결책은 그런 문화를 바꾸는 것이다.

 

우리는 사회적 연대를 회복해야 한다. 우리의 삶은 수많은 다른 사람들에게 의존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보상체계는 공동체에 대한 기여의 관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팬데믹을 겪으면서 간호사와 택배 노동자에게 특히 많은 도움을 받고 있는데 그들의 기여가 보상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식으로 말이다. 또한 성공한 자들과 패배한 자들이 자신의 성공과 패배에 깃든 운의 역할을 살펴보아야 한다. 승자는 감사를 배워야 하고, 패자는 자신의 굴욕을 당연시할 필요가 없다. 이런 문화가 필요하다.

 

문화는 토론을 통해 무엇이 옳고 좋은 것인지를 함께 찾아가는 시민들에 의해 바뀔 수 있다. 샌델은 능력주의 문화를 정확히 타격하여 사회적 연대가 가능한 문화로 대체하는 길을 제안한다. 그래야 민주주의를 통해 정책과 제도로 진정한 사회 발전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김선욱 숭실대 부총장
마이클 샌델

 

1953년 미국 미네소타주 출생
옥스퍼드대(베일리얼 칼리지)에서 철학 박사 학위
하버드대 최연소(27살) 교수로 부임
현 하버드대 교수(정치철학)
2008년 미국 정치학회 ‘최고의 교수’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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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에서 보기: https://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101492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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