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수교 20돌
기로의 중국경제 현장을 가다
제3회 아시아미래포럼 기획
➍ 턱밑까지 쫓아온 중국
중국 고부가가치 산업 재편 한국과 기술격차 3.7년
태양광 세계 1위…전기차 양산 한국보다 2년 빨라
반도체·자동차도 고성장…수출처 아닌 경쟁국 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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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중국 내륙도시 충칭의 중싱(ZTE)통신연구소에는 800명이 일한다. 지난 7월12일 만난 장전웨이 총경리는 “95%가 엔지니어이며, 70%가 석사 학위 이상 소유자”라고 말했다. 이들의 평균 월급은 2만위안(약 355만원)으로, 인근 오토바이 공장 노동자 월급 2000위안(약 35만원)의 10배였다. 중싱통신연구소는 이곳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장 총경리는 “연구개발센터가 중국 내에 12곳이 있다”며 “가장 큰 곳은 난징에 있고, 그곳에서는 2만명이 연구개발 업무를 맡고 있다”고 말했다. 난징 연구개발센터 하나만으로도 엘지(LG)전자의 연구개발 인력(약 1만5000명)보다 많다. 이런 실력을 바탕으로 지난 2분기에는 휴대전화 판매대수에서 엘지전자를 제치고 4위로 등극했다. 중국 업체 화웨이는 중싱보다 앞선 3위다.
#2. 지난 2006년 현대자동차는 중국 광저우에 공장 건립을 검토했다. 현대차가 진출하면 협력업체들도 대거 진출할 예정이었다. 이에 중국 지방정부는 재빨리 움직였다. 한국의 협력업체 유치를 위해 회사 관계자들의 숙박비, 연회비 등의 비용을 제공하면서 기업 유치에 안간힘을 보였다. 코트라 충칭사무소 김정태 부관장이 전한 당시 상황이다. 하지만 현재 이런 모습을 기대하기 힘들다. 김 부관장은 “당시까지는 중국 지방정부가 외국 기업들을 유치하려고 노력했지만, 이제는 특별한 기술을 갖고 있지 않은 외국 기업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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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한국 제품의 주요 수출처에서 경쟁상대로 바뀌고 있다. 노동집약형 산업에서 벗어나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빠르게 변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한·중 양국간의 기술 격차도 줄어들고 있다. 산업연구원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한·중간 기술 격차는 2004년 4.0년에서 2011년 3.7년으로 줄어들었다. 업종별로는 정보통신산업이 2.9년으로 가장 작았고, 경공업이 4.0년으로 가장 컸다.
그만큼 중국 기업은 이미 한국 기업을 위협하는 존재가 됐다. 중싱통신의 장 총경리는 “삼성전자나 엘지전자 등과는 달리 값싼 제품을 찾는 동남아나 아프리카 등에 많은 수출을 했다”며 “여기서 벌어들인 돈으로 기술력을 축적하고, 다시 유럽이나 미국 등 선진시장으로 진출해왔다”고 말했다. 외국 기업의 하청업체에서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경우도 있다. 프랑스 시멘트업체 라파즈의 중국 지점에서 일하는 이정수 부사장은 “2000년대 초반 라파즈 시멘트 공장의 기자재를 공급하고 설치하던 시비엠아이(CBMI)라는 회사가 이제는 세계 시장을 석권하고 있다”며 “중국에서 익힌 기술을 가지고 아프리카나 동남아 등에서 낮은 인건비를 무기로 진출해 성공을 거뒀고 이제는 기술력까지 갖춰 세계 시장 점유율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기업들의 성장은 미래 산업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중국의 태양광 생산능력은 이미 세계 1위다. 현재 생산제품의 90% 이상을 수출하고 있다. 또 전기자동차산업에서 2008년 세계 최초로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전기자동차를 상용화한 뒤 2009년 양산체제에 진입했다. 한국보다 2년 빨랐다. 풍력산업 역시 세계 5위권 기업에 시노벨, 골드윈드가 속할 정도로 뛰어난 기술력을 자랑한다.
중국 현지에서 만난 우리 기업들도 중국의 추격에 걱정을 나타냈다. 우한시에서 만난 엘에스(LS)전선의 박경훈 선임연구원은 “전선 케이블 개발에 있어서 두 나라의 기술 격차는 거의 좁혀졌고 일부는 중국이 이미 넘어선 분야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예컨대 한국의 고압 전선 기술력은 765㎸ 용량의 전선을 상용화한 수준이지만 중국은 이미 800㎸ 넘는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며 “전선을 설치 운영하는 노하우 측면에서는 여전히 한국이 5년 정도 앞서고 있지만 그 차이도 점점 줄어드는 추세”라고 말했다. 두산인프라코어 최우균 충칭지점장은 “중국은 자체 기술로 로켓과 인공위성을 쏘아올릴 정도로 기술력이 뛰어나다”며 “자동차 부품만 보더라도 중국에서 일본 도요타 자동차 캠리의 부품을 생산하는 등 큰 격차가 없다”고 말했다.
그만큼 한국 기업에 대한 처우도 달라졌다. 국내 대기업의 한 관계자는 “5년 전 진출할 때만 해도 중국 정부가 세금을 모두 면제해줬다”며 “이번에 서부 내륙 쪽에 공장을 추가 증설할 때는 세금을 내야 했다”고 말했다. 또 “중국 정부가 관심이 있는 특정한 기술을 제외하고는 과거와 같은 투자 유치에 따른 혜택을 기대하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엘지경제연구원의 박래정 수석연구위원은 “중국이 제조업 중심으로 성장하고 꾸준히 연구개발과 인수합병을 통해 추격해 반도체의 일부 공정이나 디스플레이, 자동차 엔진 등 일부 기술격차가 남아 있다”며 “선택과 집중을 통해 우리가 잘할 수 있는 분야를 정한 뒤 민간기업과 정부, 학계 등이 협력해 기술력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또 “우리 기업들은 자기 브랜드를 가지고 글로벌 마케팅을 한 경험이 있다”며 “삼성과 엘지라는 브랜드를 가지고 유통, 마케팅 등을 한 경험은 기술격차와는 또다른 산업경쟁력이고, 이런 마케팅 능력을 잘 유지하고 살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청두·충칭·우한/이정훈 권오성 기자
ljh9242@hani.co.kr
한겨레-코트라 공동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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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중국은 투자 유치에는 관심 쓰지 않습니다. 새로운 기술에만 관심이 있을 뿐입니다.”
중국 충칭의 타이곤컨설팅 이윤철 대표의 설명이다. 그는 현재 충칭의 세계적 오토바이업체인 쭝선을 돕고 있다. 이 대표는 “쭝선 같은 중국 기업들은 자본과 시장은 이미 갖추고 있다”며 “현재는 새 성장동력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쭝선은 현재 400㏄ 이상의 고급 오토바이 기술 확보를 위해 한국의 한 기업과 논의를 벌이고 있다.
이처럼 중국은 이제 ‘메이드 인 차이나’(Made in China·다국적기업의 중국내 생산)에서 ‘메이드 바이 차이나’(Made by China·중국 기업에 의한 생산)로 탈바꿈하고 있다. 중국 제조업은 다국적기업의 투자에 힘입어 생산은 2007년부터, 수출은 2009년부터 세계 1위에 올랐다. 하지만 다국적기업 의존도를 차츰 줄여나갈 계획이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중국에 위치한 외국계 기업의 수출 비중은 2006년 59.7%에서 계속 감소해 2020년대에는 40% 중반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그만큼 중국 기업들의 도약이 예상되고, 한국과 치열한 경쟁이 예상된다. 중국은 미국 등 선진국 시장과 중국 시장에서 가전제품, 통신기기, 자동차, 석유화학 등 많은 분야에서 한국 기업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중국 정부는 여기에 더해 ‘제12차 5개 년 개발계획’(2011~2015년)을 통해 신에너지, 친환경기술, 신에너지 자동차, 신소재, 바이오기술(BT), 정보기술(IT), 첨단장비제조 등 7대 신흥전략산업을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이들 7대 산업이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2015년에 8%, 2020년에는 15%로 높인다는 계획이다. 이들 전략 산업은 한국의 신성장 동력과 겹쳐 향후에도 양국간 치열한 경쟁이 예상된다.
이 때문에 현재 정부가 추진중인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한 국내 대기업의 중국 지점장은 “정부가 현재 농산품이나 중소기업 품목에서 경쟁력이 떨어지는 대신 제조업이나 고부가가치 산업에서 경쟁력 우위를 보인다고 하지만, 이미 많은 업종에서도 격차가 줄어들어 자유무역협정으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이득이 얼마나 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정훈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