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6일 중국 상하이 신좡역에 위치한 ‘스카이몰’에는 평일 낮임에도 쇼핑을 즐기는 가족과 연인들이 매장마다 눈에 띄었다. 이 부근에서 가장 큰 쇼핑몰로 꼽히는 곳이다. 이 지역은 인구 2400만에 이르는 상하이시의 비교적 외곽 지역에 자리잡고 있으면서도 아파트 단지들로 들어차 있다. 서울로 치면, 은평구 특성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쇼핑몰에 있는 중국 씨지브이(CGV) 멀티플렉스 영화관 2호점 앞에서 만난 황밍쥔(32)에게 최근 불거지는 ‘중국 위기론’은 다른 나라 이야기였다. “불황은 전혀 느끼지 못해요. 상하이는 최근 10여년 동안 사람 중심의 살기 좋은 도시로 바뀌고 있고 당분간은 그럴 겁니다.” 게임회사에서 일하는 그는 아내와 함께 한달에 두세번은 영화관을 찾는다고 한다. 황과 같은 중국의 ‘바링허우’(1980년대 이후 출생자) 세대는 ‘세계의 공장’에서 ‘최대의 소비시장’으로 바뀌고 있는 중국의 변화를 대변한다. 1970년대 말 개혁·개방과 함께 부국을 위해 성실하게 일하고 남는 돈은 저축했던 윗세대와 달리 바링허우는 ‘소비의 맛’을 즐기는 신세대다. 허시유 푸단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겨레> 인터뷰에서 “중산층 소비력의 핵심은 내집 마련인데 1자녀 정책으로 홀로 자란 젊은 세대들은 결혼 뒤 주택 문제에서 비교적 자유롭다”며 “그만큼 안정적인 소비 계층”이라고 말했다. 황의 아내 니링(25·교사)은 “한국 드라마를 좋아한다”며 “드라마에서 본 사고 싶은 제품은 가격에 관계없이 사는 편”이라고 말했다. 소비시장 성장의 중추가 되는 중국의 중산층은 현재 3억명가량으로 추산된다. 황과 니링 같은 바링허우 세대의 성장과 함께 이 계층은 늘고 있다. 중국 당국이 발표한 지난해 지역별 1인당 국내총생산(GDP)을 보면 상하이가 1만2784달러(약 1400만원), 항저우가 1만2761달러, 베이징이 1만2447달러 등이다. 이 수치는 도시 인구와 외곽의 시골 인구의 생산량을 평균한 것이기 때문에 도시 인구만 따지면 이미 2만달러가 넘는 선진국 수준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13억 인구로 구성된 중국 소비시장의 부상과 잠재력을 알고 있는 세계 기업들은 이미 중국 소비시장을 잡기 위한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상하이나 인근의 ‘명품 소비 도시’ 항저우와 같이 고도 성장을 이룬 중국 동부 연안 도시들의 대형몰과 백화점에는 한국에서도 보기 힘든 해외 명품 브랜드의 단독 매장들이 앞다퉈 들어서고 있다. 세계고가품협회(WLA)의 집계를 보면 지난해 세계 ‘명품 소비’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율은 28%에 달했다. 코트라 항저우 무역관의 이재령 관장은 “과거 임가공 수출기지로 기능했던 동부 연안 지역은 인건비 상승 등으로 제조업이 타격을 받는 반면, 높아진 소비수준과 정부의 내수정책으로 소비시장으로서 매력이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소비시장에 불어닥친 변화의 바람은 한-중 경제 관계 및 한국 쪽의 대응 전략에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다. 한국과 중국 사이에 맺어진 그동안의 경제 관계를 보면 대체로 중국이 저임금 노동력을 바탕으로 추진해온 빠른 수출 중심 성장 전략에 한국이 임가공 무역 형태로 올라탄 형식이었다. 중국은 2012년 미국을 위협하는 경제 대국으로 성장했다. 그사이 축적된 내적 모순을 내수 진작과 균형발전으로 극복하려는 중국과 그런 중국을 최대 교역국으로 둔 한국의 관계는 전혀 다른 국면을 맞고 있다. 양국 사이의 수교 뒤 지난 20년 동안 한-중 간 무역 총액은 연평균 22.7% 증가했다. 유엔 상품무역통계를 보면 지난해 한국의 대중국 수출액은 1341억9000만달러(약 151조원)였고 수입액은 864억3000만달러(약 97조원)를 기록했다. 무려 477억5000만달러(약 54조원)가량 흑자를 올렸다. 수교 첫해에만 적자를 기록한 뒤 한국은 계속 흑자를 냈으며, 그 폭도 크게 증가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지난 5일 내놓은 ‘파급효과’ 보고서를 보면 “한국의 중국 수출의존도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8.3%에 달해 대만(12.9%)과 말레이시아(8.6%) 다음으로 높다”고 분석했다. 이런 무역 관계는 중국을 저임금을 활용한 임가공 기지로 활용해온 데서 비롯됐다. 지난해 한국 대중 수출 가운데 가공무역을 위한 수출은 70%에 육박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 내수 시장을 위한 수출 비중은 30%에 불과했다. 한국 기업들은 대체적으로 지난 15년 동안 중국을 주로 선진국 수출을 위한 중간기지로 활용해 왔다. 양국의 무역 관계는 근본적인 변화에 직면해 있다. 중국 정부는 지난해 5월 앞으로 5년 동안 자국 경제의 방향과 주요 과제를 담은 ‘12.5 규획’을 발표했다. 핵심 기조는 △양적 성장에서 균형발전으로 전환 △대외 수요 의존형에서 민간 소득 향상을 통한 내수 위주형으로 전환 △지역균형 개발의 추진 등이다. 이는 후진타오 국가주석이 집권한 2003년부터 추진해온 방향이지만 지난 수년 동안 선언·모색적 단계에 그쳤다면 앞으로 5년은 실천적 단계로 접어들었음을 뜻한다. 이런 추세를 바탕으로 임가공 기지로서 중국의 매력은 점차 떨어지고 있다. 그동안 동부 연안의 ‘값싼 노동력’을 제공했던 저소득 계층의 인건비는 점차 상승해 왔다. 중국 정부는 ‘농민공’으로 대표되는 이들에게 성장의 과실이 돌아가도록 지역간, 계층간, 도농간 격차를 바로잡는 데 더욱 주력할 전망이다. 동시에 중국 정부는 신에너지, 바이오, 신소재 등 7대 산업을 ‘신흥전략산업’으로 선정하고 외국 기업의 투자를 점차 가려서 지원하는 추세다. 이런 변화된 환경은 한국 기업한테 위기와 동시에 기회로 다가온다. 외국 기업의 주문 하청에서 기술력을 쌓아온 중국 기업들이 해외 시장에서 한국 기업과 맞붙게 된 반면, 부상하는 중국 내수 시장은 한국 기업들에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지난달 낸 ‘중국의 4대 변화상과 기업의 대응’이라는 보고서에서 “중국은 2020년까지 매년 서울 인구보다 많은 1600만명의 농촌 인구가 도시인이 되고, 인구 100만 이상의 도시가 220개에 달할 것”이며 “대중국 수출도 선진국에 완제품을 수출하기 위한 중간재 중심에서 중국 시장 공략을 위한 내수형 중간재 및 최종재로 전환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상하이 이창/권오성 박영률 기자 sage5t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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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업들도 개발바람 부는 내륙으로 중국 동부의 초대형 ‘1선 도시’들이 소비시장으로 부상하는 사이 중국 내륙은 동부를 뒤쫓아 개발을 서두르고 있다. 한국 기업들도 이 바람에 가세하고 있다. 지난달 20일 찾은 중국 후베이성 이창의 엘에스(LS)훙치전선 생산공장은 신규 시설 건립으로 분주했다. 이 회사는 전선의 두께와 무게 때문에 가로로 놓고 생산할 수 없는 고용량의 전선을 세로로 제조하기 위한 시설인 ‘브이시브이(VCV) 타워’를 올 연말까지 준공한다는 목표 아래 건설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김영호 엘에스훙치전선 생산기술부문장은 “중서부 산업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어 기존 전선을 고용량 전선으로 대체하는 수요가 크게 늘 것”이라고 말했다. ‘산업의 핏줄’인 전선을 생산하는 이 회사가 2009년 이창에 공장을 두고 있는 중국 전선회사 훙치전기를 인수한 이유는 분명하다. 성장 둔화세를 겪고 있는 동부와 달리 비교적 낙후된 중서부 지역의 발전 여력은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세계 최대 규모의 댐인 싼샤댐으로 알려진 이창은 중국의 모든 주요 도시를 800㎞ 안에 두고 있는 중부 교통의 요지 후베이성 우한 인근에 자리잡고 있다. 지난달 중국 정부가 발표한 중국 20개 성 상반기 성장률을 보면 중서부지역은 모두 10% 이상의 국내총생산(GDP) 성장세를 보였지만, 동부지역은 톈진 등 2곳을 제외하고 모두 10%보다 낮았다. 김선국 엘에스훙치전선 총경리(한국의 사장 직위·상무)는 “중국 정부가 내륙 개발에 집중하고 신재생에너지 사업에 주목해 내몽골과 신장 지역 풍력발전 등에 투자를 북돋우면서 중국 내수의 전선 수요는 늘 10% 이상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며 “중국 내수를 잡지 못하고 세계 시장에서 경쟁을 논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중국은 현재 세계 전선 시장의 32%를 차지하고 있다. 중국 정부가 지난해 밝힌 경제의 핵심 기조는 내수 진작과 함께 내륙 개발을 통한 국가 균형발전으로 요약된다. 이런 변화된 기조를 진출 전략에 반영하지 못하면 한국 기업의 중국 진출 성공은 요원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양옌린 우한대학교 교수(경제학)는 “과거 중국이 광저우 지역 중심의 수출 전략으로 성장을 견인해 왔다면 이제는 내륙과 내수가 그 자리를 차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상해 코트라 우한 무역관장은 “금융위기 이후 한국 기업들의 중국 진출은 둔화됐다”며 “임가공 생산에서 내수와 내륙 장악으로 전략을 발빠르게 변화해야 세계 최대 시장을 선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창/권오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