⑨ 동부 연안 칭다오 진출 지에스칼텍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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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산둥성 칭다오시는 한국 기업들한테 ‘기회의 땅’이었다. 지리적 이점과 저렴한 인건비를 누리러 완구·액세서리·신발 등 노동집약형 제조업체들이 앞다투어 칭다오로 건너갔다. ‘보따리상’이라 불리던 소규모 무역상들은 제집 드나들듯이 바다를 누볐다. 이를 두고 1200여년 전 산둥성 일대를 무대로 형성됐던 신라방(당나라 때 신라인들의 집단거주지)의 재림이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인건비 상승과, 중국 정부의 규제 강화에 직격탄을 맞은 국내 업체들은 칭다오를 떠나 동남아로, 내륙으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칭다오를 비롯한 산둥성에서 새롭게 내륙 진출의 발판을 마련하고 있는 지에스칼텍스와, 진퇴양난의 고민에 빠져 있는 중소기업을 찾아 선택의 갈림길에 선 중국 동부지역 한국 기업들의 현실을 짚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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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색은 낯설었다. 페트로차이나(중국석유), 시노펙(중국석화) 등 거대 국영 석유회사의 빨간색 간판들이 중국의 주유소를 대표하기 때문이다. 성재수 지에스(GS)칼텍스 칭다오 법인 부장은 ‘GS 加德士(자더스)’라고 쓰인 푸른색 간판을 가리키며 “(중국인들은) 붉은색이 아니면 주유소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웃었다.
지난 1일 오전 찾은 칭다오시 스난(시남)구의 지에스칼텍스 칭다오 법인은 산둥성을 거점으로 국내 주유소를 뿌리내리기 위해 힘을 쏟고 있었다. 아직은 시작 단계이지만, 장기적으로 중국 내륙 지방까지 뻗어나갈 꿈도 꾸고 있다.
지에스칼텍스는 2007년 중국 산둥성의 칭다오, 지난, 옌타이 등의 도시에 4개의 석유유통 법인을 설립하며 주유소 사업에 진출했다. 현재 9곳의 주유소를 운영하고 있고, 1곳은 지방정부 허가를 받는 대로 문을 열 예정이다. 주유소 사업은 국내 시장이 사실상 포화 상태인 가운데, 자동차 보급 대수가 1억1400만대(6월말 기준)로 전체 인구 12명 중 1명꼴로 자동차를 보유한 중국은 새로운 기회의 땅이 될 수 있다. 중국의 자동차 판매량은 지난해 1851만대로, 2009년부터 3년 연속 세계 1위를 차지했다. 자동차 판매 증가율은 2009년 46.2%, 2010년 32.4%였다. 지난해 경기 둔화와 중국 정부의 자동차 구입 지원금 축소 등으로 판매 증가율은 2.5%에 머물렀지만, 여전히 자동차 업계에서는 중국의 성장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또 주유소 사업은 지에스칼텍스의 중국 에너지 사업의 한축으로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는 구실도 한다. 지에스칼텍스는 2006~2007년 사이 중국 허베이성에 석유화학 공장을, 베이징에 윤활유·윤활기유 사업을 위한 법인을 설립하며 중국 에너지 사업에 공을 들이고 있다.
칭다오 법인은 주유소와 함께 있다. 이날 찾은 1652㎡(500평) 규모의 널찍한 주유소에는 6개의 휘발유·경유 주유기와 자동세차 시설, 편의점을 갖추고 있었다. 출근 시간이 지난 오전 11시께였지만 기름을 넣으려는 차량들이 꾸준히 주유소를 찾았다. 칭다오 주유소의 월평균 판매량은 국내 주유소들의 한달 평균 판매량(1000드럼·20만ℓ)의 5배인 약 5000드럼(100만ℓ)이다. 성 부장은 “아파트와 주택가에 위치해 판매량은 괜찮은 편”이라고 말했다.
국내에서는 정유사인 지에스칼텍스가 주유소들에 기름을 공급하지만, 외국 기업의 석유 수입을 엄격히 규제하는 중국에서 칭다오 법인은 시노펙 등 중국 국영회사가 공급한 석유제품을 받아 판매한다. 정부가 석유의 소비자가격을 정하고, 중간 마진을 제한하기 때문에 안정적인 이익을 이어가는 게 쉽지 않다. 국제유가 상승 때 바로 가격이 올라가는 구조도 아니다. 중국의 휘발유 가격은 1ℓ당 7위안(약 1290원) 정도이고, ℓ당 마진은 0.5위안(89원)이다. 성 부장은 “부지 임대료, 법인 운영비 등을 고려하면 현상 유지하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진입 장벽이 높은 것도 어려운 점이다. 중국에서 주유소 사업을 하려면 주유소 부지 허가를 받은 사람한테서 임차를 하거나, 개별 기업이 지방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지방정부의 허가는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지에스칼텍스 주유소들은 대부분 기존의 주유소 부지를 임차해 운영하고 있다. 성 부장은 “산둥성에는 중국 국영주유소보다 무폴주유소(상표 없이 개인이 운영하는 주유소)가 많아 부지 임대 등 들어갈 틈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지에스칼텍스가 중국 주유소 사업에 매진하는 것은 향후 중국의 외국 석유제품 수입 규제 완화 가능성을 보고 국내에서 직접 석유제품을 조달해 판매하려는 장기 계획에 따른 것이다.
성 부장은 “언젠가는 석유 도매상을 하는 게 목표”라며 “우선 산둥성의 주유소를 9개에서 30개로 확대하는 계획을 추진중”이라고 말했다. 국내에서 가까워 운송이 용이한 산둥성을 중국 주유소 사업의 발판으로 삼은 이유다. 2006년 칭다오에 석유화학 합작회사로 설립한 청도리동화공유한공사 공장 주변의 부두와 저장탱크도 국내에서 석유제품을 가져올 경우 활용될 예정이다.
지에스칼텍스는 중국 주유소들과의 차별화를 위해 국내에서 축적된 ‘서비스’에 승부를 걸고 있다. 성 부장은 “중국 직원들을 교육시키는 게 제일 힘들었다”며 웃었다. 보통 중국 주유소 직원들은 차량을 기다리게 하는 경우가 많은데, 차량이 들어오면 지체없이 응대하고, 친절하게 대하는 내용의 서비스 교육을 강화했다. 단순히 석유제품만을 파는 것이 아니라 차량 정비점인 오토오아시스(AutoOasis)와 자동세차 시설, 편의점 등 다양한 부대시설을 설치해 차별화된 서비스를 보여주고 있다. 칭다오 주유소 점장을 맡고 있는 푸하이(38)는 “손님에 대한 종합적인 서비스가 다른 중국 주유소보다 좋은데다 세차장·편의점 등 시설도 잘 갖췄다”고 말했다. 그는 “근무 환경도 중국 주유소보다 좋다”고 덧붙였다. 칭다오/글·사진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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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퇴양난’ 칭다오 한국 중소기업들 “뾰족한 수가 없다”
신 신라방 산둥성 한국기업들의 현실
인건비 상승·인력난·경기둔화 3중고
“시장개척도 일감이 밀려야 하는 건데 주문 자체가 줄어버리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죠.”
지난 1일 산둥성 칭다오시 청양(성양)구 사무실에서 만난 이래현 재청도한국인회(한인회) 부회장은 칭다오에 진출한 국내 기업들의 처지를 ‘진퇴양난’이라고 표현했다.
칭다오는 1990년대부터 귀금속·완구·신발 등 노동집약형 국내 제조업체들이 앞다투어 진출한 곳이다. 2000년대 초반까지 월 100위안 안팎의 저렴한 인건비, 인천에서 가까운 위치, 외자기업에 대한 파격적인 혜택이 국내 중소업체들을 이끌었다. 하지만 2006년 이후 중국 정부의 정책 변화와 2008년 국제 금융위기는 업체들에 직격탄이었다. 현재 현지 노동자들의 월급은 2000위안(36만원)이 넘어섰고, 인력난도 심하다. 세계적인 경기 둔화로 이곳에서 생산한 제품들의 미국·유럽 수출에도 빨간불이 들어왔다.
귀금속 제조업체를 운영하는 이 부회장은 “귀금속 업체들의 경우 2007년 회원사 500개, 비회원사 3000개 정도였는데, 현재는 회원사 380개, 비회원사 1500개 수준으로 줄었다”고 전했다. 귀금속 업체들의 경우 칭다오에서 생산해 미국·유럽으로 수출하는데 인건비와 인력난으로 베트남·인도네시아 등으로 떠난 기업들도 많다. 이 부회장은 “동남아시아는 산업기반시설이 부족하고, 인건비 상승 가능성도 있다”며 “내륙지방으로 옮겨간 의류·가방 업체들도 중국의 소규모 업체와의 경쟁에서 재미를 보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칭다오에 남은 기업들에 대해 “국내로 돌아오거나 개성공단으로 가는 것도 불확실성이 높아 매력이 떨어진다”며 “업체들이 뾰족한 수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수출물량을 취급하는 해운회사는 중국의 경기 둔화와 국내 업체들의 어려움을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1989년부터 아시아 지역 물류운송 사업을 해온 장금상선의 칭다오 법인 관계자는 “지난해보다 수출물량이 줄어들고 있는 추세로 해운회사끼리의 경쟁도 심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칭다오는 원래 일본 수출 물량이 많은데 지난해 후쿠시마 대지진 이후 옷·가방·액세서리 수요가 줄며 ‘악 소리’가 났다”며 “한국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업체들이 직격탄을 맞았다”고 전했다.
반면 확실한 기술력을 가진 제조업체들은 여전히 칭다오의 이점을 충분히 활용하고 있었다. 금속을 가공하는 데 쓰이는 절삭공구 시장에서 세계 3위 안에 드는 와이지원(YG1)의 칭다오 법인인 칭다오뉴센츄리공구유한공사(뉴센츄리)는 지난해 매출 450억원을 올리며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중국 정부가 관세·부가가치세 등 세제감면 혜택을 주는 ‘보세구’에 위치한 뉴센츄리는 생산물량 100%를 국내 와이지원으로 수출한다. 송시한 총경리는 “현지 직원들 월급은 2000~3000위안(36만~53만원) 정도로 이전보다 인건비 부담이 늘긴 했다”면서도 “여전히 국내보다 인건비가 저렴한 편이고, 세제 혜택과 저렴한 운송비용 등으로 원가를 절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권용석 코트라 칭다오관장은 “2008년 금융위기와 최근 중국의 경기 둔화로 외자기업, 중국 내수기업 가릴 것 없이 모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칭다오/이승준 기자gamja@hani.co.kr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