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미래포럼

알림마당

알림마당

보도자료

보도자료

최근 5년 역사상 가장 덥고 CO₂ 농도 가장 높아

[이근영의 기상천외한 기후이야기]세계기상기구 ‘2015~2019 지구 기후보고서’ 지구기온 산업혁명 이전보다 1.1도 상승 2011~2015년보다 최근 5년간 0.2도 올라이산화탄소 증가 가팔라 연말 410ppm 초과   ?세계기상기구는 ‘2015-2019 전지구 기후보고서’에서 최근 5년이 역사상 가장 더운 다섯해로 기록될 것으로 전망했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올해를 포함해 최근 다섯해가 역사상 가장 더웠던 5년으로 기록될 것으로 전망됐다. 또 이산화탄소(CO₂) 농도가 올해 말 410ppm을 초과해 역사상 가장 가파른 상승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됐다. ?세계기상기구(WMO)는 23일(현지시각) 미국 뉴욕에서 열리는 ‘유엔 기후행동 정상회의’에 맞춰 발표한 ‘2015-2019 전지구 기후보고서’에서 2015년부터 올해까지 최근 다섯해가 역대 더위 순위 1~5위를 차지할 것으로 내다봤다. 보고서는 또 온실가스 농도가 해마다 기록을 갱신하고 있으며, 대표적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의 증가율은 이전 5년(2011~2015년)보다 20%나 높아졌다고 밝혔다. 세계기상기구는 이날 발표한 보도자료를 통해 “특히 전지구 이산화탄소 평균 농도가 올해 말 410ppm에 도달하거나 초과할 것으로 보여 역사상 가장 가파른 상승세를 보일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이로 말미암아 전지구 평균기온은 산업화 이전(1850~1900년)보다 1.1도 상승했으며, 최근 5년은 이전 5년보다 0.2도 상승했다고 세계기상기구는 덧붙였다.1854년~2019년 전지구 기온편차(산업화 이전 대비)의 5년 이동평균. 자료=영국기상청 보고서에서 전지구 평균 해수면은 최근 5년 동안 연평균 5㎜ 상승해 1993년 이후 연평균 상승률 3.2㎜보다 크게 증가했으며, 남극과 북극, 그린란드의 빙하도 계속 감소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2017년과 2018년 남극의 여름(2월) 해빙 면적은 각각 사상 1·2위로 작았고, 2017년 겨울(9월) 해빙도 두번째로 낮은 수준이었다. 또 2009~2017년에 남극에서 해마다 손실된 얼음의 양이 2,520억t에 이르러 1979년 400억t의 6배가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페테리 탈라스 세계기상기구 사무총장은 “지금과 같은 기후변화는 돌이킬 수 없는 심각한 재앙을 초래할 수도 있다”며 “파리기후협정에 명시된 목표를 달성하려면 에너지 생산, 산업, 운송 등에서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평균기온 2도 상승을 막기 위해서는 3배 이상, 1.5도까지 제한하기 위해서는 5배 이상의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참고 : 전지구 이산화탄소 농도는 미국해양대기청(NOAA)의 발표값으로 향후 변경될 수 있음. 세계기상기구에서 발표하는 전지구 농도는 통상 10월에 발표됨. 한편 기상청은 우리나라 최근 5년 평균기온은 13.3도로, 이전 5년보다 0.3도 상승해 전지구 평균기온보다 증가폭이 크게 나타났다고 밝혔다. 또 안면도 기후변화감시소의 2018년 이산화탄소 연평균 농도는 415.2ppm으로, 2017년 대비 3.0ppm 증가한 것으로 나타나 증가폭이 전지구 평균보다 약간 높았다고 밝혔다. 안면도의 최근 10년 동안 연평균 이산화탄소 농도 증가량도 연평균 2.4ppm으로 전지구 2.3ppm보다 약간 높은 수준이다. 김종석 기상청장은 “한반도의 이산화탄소 농도 증가량과 기온 상승폭이 전지구보다 높게 나타나, 온실가스 감축과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정부 혁신을 통한 민·관 모두 적극적인 노력과 행동이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라고 밝혔다. 이근영 선임기자 kylee@hani.co.kr 한겨레에서 보기:http://www.hani.co.kr/arti/science/science_general/910478.html?

세계기상기구 “최근 5년 역사상 가장 더워…대재앙 우려”

WMO, ‘2015~2019 전 지구 기후보고서’ 발표CO₂ 증가율, 2011~2015년보다 20%나 높아져 최근 5년 평균기온, 산업화 이전보다 1.1도 올라 탈라스 WMO 사무총장 “지금 같은 기후변화…돌이킬 수 없는 심각한 재앙 초래할 수 있어”   ??‘9·21 기후위기 비상행동’에 참여한 시민들이 지난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종로타워 앞에서 적극적인 온실가스 감축 정책 등을 요구하며 ‘뜨거워진 지구에서 더 이상 살 수 없음’을 뜻하는 상징의식을 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최근 5년이 인류 역사상 가장 더웠고 이산화탄소 농도도 가장 높았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 상태로 기후변화가 계속되면 전 지구적으로 돌이킬 수 없는 심각한 재앙이 초래된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기상청은 “세계기상기구(WMO)가 발표한 ‘2015~2019 전 지구 기후보고서’에서 2015년부터 올해까지가 역사상 가장 더웠던 5년으로 기록될 것으로 전망했다”고 22일 밝혔다. 이 보고서는 23일 미국 뉴욕에서 열리는 2019 유엔 기후행동 정상회의에 맞춰 발표된 것이다. ▶관련기사 2·13면 세계기상기구는 보고서를 통해 온실가스 농도가 해마다 올라 기록을 경신하고 있고, 대표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CO₂)의 증가율은 지난 5년(2011~2015년)보다 20%나 높아졌다고 분석했다. 특히 전 지구의 이산화탄소 평균 농도가 올해 말 410ppm에 도달하거나 초과해 역사상 가장 가파른 상승세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멈추지 못한 온실가스 배출은 지구 온도 상승으로 이어졌다. 최근 5년 동안 지구의 평균기온은 산업화 이전(1850~1900년)보다 섭씨 1.1도 올랐고, 이전 5년보다 0.2도 상승했다. 이에 따라 남극과 북극, 그린란드의 빙하가 계속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지구 평균 해수면 상승률은 최근 5년 동안 연평균 5㎜로 나타났는데, 이는 1993년 이후 연평균 상승률이 3.2㎜를 유지했다는 점에 견주면 크게 오른 수치다. 특히 2017년과 지난해 남극의 여름(2월) 때 해빙(바닷물이 얼어서 생긴 얼음)의 넓이는 역사상 가장 최저치였고, 2017년 겨울(9월) 해빙의 넓이도 두번째로 좁은 수준이었다. 2009∼2017년 남극에서 해마다 없어지는 얼음의 양은 연평균 2520억t에 이르렀는데, 이는 1979년 손실된 400억t의 6배가 넘는 양이다. 페테리 탈라스 세계기상기구 사무총장은 “지금 같은 기후변화는 돌이킬 수 없는 심각한 재앙을 초래할 수 있다”며 “2015년 파리기후협정에 명시한 목표를 달성하려면 에너지 생산, 산업, 운송 등에서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기후변화 속도와 온실가스 증가 폭은 전 세계 수준보다 가파르다. 한국의 최근 5년(2015~2019년) 평균기온은 13.3도로, 이전 5년(2011~2015년)보다 0.3도 높아졌다. 지구 전체 평균기온보다 0.1도 더 오른 것이다. 지난해 안면도 기후변화감시소에서 측정한 연평균 이산화탄소 농도는 415.2ppm으로 2017년 연평균보다 3ppm 늘어났다. 최근 10년 동안 한국의 연평균 이산화탄소 농도 증가량도 연간 2.4ppm으로 전 지구 평균(2.3ppm)보다 높다. 기록적인 폭염도 기후변화의 속도를 실감케 한다. 지난해 19일 동안 이어진 폭염으로 산간 지역인 강원도 홍천의 일 최고기온이 41도까지 치솟았다. 환경부는 지난 8월 온실가스를 계획대로 줄이지 못하면 2021년 이후 전국 시·군의 63%가 ‘높음’ 수준의 폭염 위험에 노출될 것이란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전 지구적인 위험 앞에 정부의 적극적인 대응을 촉구하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환경단체 등 330개 시민·사회단체와 시민들로 꾸려진 ‘기후위기 비상행동’은 지난 21일 서울 대학로와 부산, 대구 등 전국 10개 도시에서 기후위기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인 대응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우리 모두가 멸종위기종이고 난민이다. 뜨거워지는 온도 속으로 지구라는 섬이 잠길 때, 이곳을 떠나 우리가 도망칠 곳은 없다. 인류의 생존과 지구의 안전 따위는 아랑곳없이, 화석연료를 펑펑 써대는 잘못된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또한 “정부는 기후위기의 진실을 인정하고 비상상황을 선포하라”며 “이미 전 세계 10여개 국가와 1000여개 ?도시가 비상선포를 내렸다. 지금은 우리의 생존을 위해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촉구했다. 23일 열리는 유엔 기후행동 정상회의에는 문재인 대통령과 조명래 환경부 장관이 함께 참석할 예정이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이번 정상회의를 앞두고 각 나라에 2050년까지 온실가스 순배출량을 제로(0)로 줄일 수 있는 계획안을 마련해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한국 정부는 이에 대한 논의를 공식적으로 하지 않은 상태다. 최예린 기자 floye@hani.co.kr  한겨레에서 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environment/910477.html?

성매매집결지 여성친화 마을로…도시재생 ‘젠더’를 입히다

1부 ② 진화하는 도시재생‘성매매’ 아산 장미마을의 변신양성평등거리·여성커뮤니티센터 추진 “지난 인권침해에 대한 책임 느껴”성공 열쇠는 ‘주민과 소통’사업 내용부터 원주민 정착방안까지 도시재생 흐름 ‘통합·포용’으로 위기를 넘어 지속가능한 마을로군산, 근대 역사문화 자산 거점으로순천, 마을방송국·도서관 만들어  ?사진 : 아산시청, 한겨레 그래픽 지난달 17일 오후 찾은 충남 아산시 온양온천 관광지 ‘장미마을’. 한때 충남 최대 성매매 집결지로 불리던 과거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술집이 빽빽하게 들어차 음침하던 골목은 사라지고, 사람들이 편하게 다닐 수 있도록 널따란 길이 생겼다. 아산시청이 유흥업소를 매입한 뒤 건물을 허물고 길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1970~80년대 80여곳에 이르던 업소는 지금 5~6곳만 남았다. 이미 동네 분위기가 바뀌어 나머지 업소도 매입 문제를 놓고 시와 논의 중이다.여성 인권 유린의 상징이던 장미마을은 더 큰 변신을 계획하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7월 아산시가 추진하는 여성친화형 도시재생사업 계획을 승인했다. 낙후된 마을을 재생하면서 여성을 전면에 내세운 것은 아산시가 처음이다. 장치원 아산시 도시재생과장은 “장미마을은 여성의 인권침해와 아픔이 존재하는 장소”라며 “완전히 지우는 방식의 도시재생이 아니라 지난 과오에 대한 사회적 책임의식을 갖고 장미마을을 여성 친화적인 곳으로 만들기로 했다”고 말했다. 여성 인권을 외면했던 기억을 남기고, 성매매가 단순히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책임이었다는 점을 명확히 하자는 얘기다. 온양 원도심 여성친화 도시재생사업엔 온천동 16만225㎡(4만8천평) 면적에 국비 100억원, 지방비 67억원, 엘에이치(LH) 행복주택 1000억원 등 총 1167억원의 재정이 들어간다. 이제 본격적인 작업이 시작됐고 2022년 완공이 목표다. ?아산이 구상하는 ‘여성친화 도시재생’은 어떤 모습일까? 우선 장미마을 터에 양성평등거리를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이 거리에 여성커뮤니티센터를 세워 여성의 창업과 취업을 돕는 등 여성들이 언제든 편하게 찾을 수 있는 공간이 되도록 한다는 생각이다. 성매매 집결지였다는 과거를 기억하고 성찰하기 위한 공간도 검토하고 있다. 또 여성·청년·협동조합 등의 주체들이 경제활동을 할 수 있도록 특화상점을 만드는 방안도 고민 중이다. 장미마을과 좀 떨어져 있는 또 다른 터에는 한부모 가정, 미혼모, 가정폭력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쉼터와 고령자 돌봄·부업 등 공동체 활동이 가능한 곳도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5개 분과 주민협의체 만들어 논의가장 많이 신경 쓰는 부분은 주민과의 소통이다. 아산시는 도시재생사업을 하면서 여성뿐만 아니라 상인, 사회적 경제, 청년, 문화예술 등 5개 분과로 된 주민협의체를 만들어 지속해서 논의 중이다. 이들은 도시재생사업 내용부터 젠트리피케이션 방지 대책 등에 이르기까지 상시로 만나 머리를 맞댄다. 주민들의 참여를 높이기 위해 도시재생대학 프로그램을 만들어 교육도 하고 있다. 이현정 주민협의체 여성분과 분과장은 “10년 이상 전업주부로 있다가 일이 너무 하고 싶어 지금 교육 강사를 하고 있다. 처음에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고민이 많았다”며 “양성평등거리나 여성커뮤니티센터가 여성을 포함한 사회적 약자들이 편하게 만나 고민을 나누는 등 기회를 얻을 수 있는 곳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기대만큼 걱정도 크다는 그는 “여성친화라는 것이 굉장히 추상적이고, 도시재생에는 처음 접목되는 것이어서 어려운 측면이 있다”며 “주민들이 내는 의견을 실제 사업으로 어떻게 반영할지 여성 전문인력이 꼭 있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아산처럼 도시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도시재생사업이 조금씩 진화하고 있다. 도시재생이란 인구의 감소, 산업구조의 변화, 주거환경의 노후화 등으로 쇠퇴하는 도시를 경제·사회·물리·환경적으로 활성화시키는 것을 말한다. 다 부수고 새로 짓는 대규모 토목사업인 재개발·재건축과는 성격이 다르다. 도시재생의 다양한 실험은 세계적 흐름이다. 유엔은 20년 단위로 도시 및 인간 정주 문제 해결을 위한 정상회의를 진행해왔는데, 지난 40년 동안 의제는 주로 주거권과 기초서비스 분야에 맞춰졌다.하지만 2015년을 기점으로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유엔총회에서 193개 회원국 합의로 불평등 완화, 지속가능 도시 등 17개 지속가능발전목표(SDGs)가 채택되고, 2030년까지 도시 거주 인구가 세계 인구의 70%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면서 고민의 방향이 달라졌다. 유엔은 앞으로 20년 동안의 도시 의제로 사회융합, 환경, 지역경제, 사람 중심 공간계획, 도시 거버넌스 등을 포괄하는 ‘신 도시의제’를 채택했다. ‘신 도시의제’가 목표로 삼는 것은 사회적 통합과 포용력 있는 도시, 일자리 창출, 생태적이고 회복력 있는 도시를 추구하는 것이다.?아산시는 도시재생사업을 하면서 여성뿐만 아니라 상인, 사회적 경제, 청년, 문화예술 등 5개 분과로 된 주민협의체를 만들어 지속적으로 논의 중이다. 아산시는 “주민소통을 가장 신경 쓰고 있다”고 강조했다. 아산시청 제공 ■ 도시 노후화에 마을도 소멸, 도시재생 절실우리나라도 2013년 ‘도시재생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하는 등 적극 나서고 있다. 특히 문재인 정부는 지난해 3월 쇠퇴하는 도시를 살리기 위해 청년창업, 혁신성장을 기반으로 하는 ‘도시재생 뉴딜사업 로드맵’을 발표했다. 국토연구원 자료를 보면, 지방 중소도시를 중심으로 인구 감소, 고령화 등으로 인해 30년 안에 84개 시·군·구(전체 37%), 1383개 읍·면·동(전체 40%)이 소멸될 우려가 있다. 대도시도 건축물 노후화가 확산되고 있어 도시재생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이미 진행된 도시재생사업 중에선 전북 군산이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꼽힌다. 일제강점기 등 근대 역사문화 자산을 문화거점시설로 만들면서 관광객이 늘어 지역경제가 살아나고 있다. 2014년엔 군산 월명·해신·중앙동 일대 도심의 상가 공실이 100개가 넘었지만, 지금은 찾아보기 어렵다고 한다. 전남 순천도 2년 연속 도시재생 최고 등급을 받는 등 평가가 좋다. 마을방송국, 도서관 만들기 등 꾸준히 진행된 도시재생으로 2014년 187채에 달했던 빈집은 지난해 7채로 줄었고, 주민 만족도도 90%를 넘는다. 도시재생이 성공적으로 진행된 곳에서 가장 강조하는 말은 역시 ‘주민 참여’다. 주민이 참여해서 주민이 만족하는 도시를 만드는 것이 성공의 열쇠란 얘기다.물론 한계도 드러나고 있다. 정부 재정이 들어가는 만큼, 지방자치단체가 경쟁적으로 도시재생에 뛰어들면서 천편일률적인 양상도 보인다. 한옥마을과 벽화는 전국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으며, 기념관 설립도 도시재생에서 빠지지 않는 단골 메뉴다. 도시재생을 추진하고 있는 한 기초단체 관계자는 “사업기간이 3~5년인데, 생각보다 촉박하다. 주민들이 도시재생이 어떤 것인지 알기 위해서는 교육도 필요하고, 사업 방향에 땅·건물 매입 등 이해관계가 천차만별이라 논의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며 “시간에 쫓기다 보면 기존에 다른 지역에서 하던 것을 참고할 수밖에 없다. 사업기간에 유연성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여성의 목소리가 좀 더 적극적으로 반영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유진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성평등정책확산전략실장은 “도시재생은 도시를 지속가능하게 만드는 작업이다. 그 속에서 사는 사람들의 요구와 이야기가 담기는 것이 핵심”이라며 “양성평등, 사회적 약자의 배려 등이 충분히 이뤄지는 것뿐만 아니라 여성이 주체적으로 사업에 참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측면에서 최 실장은 “아산시가 여성친화를 전면에 걸고 도시재생에 나선 것은 굉장히 진화된 모습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도시재생사업은 일본, 유럽, 미국 등 선진국에서도 활발하다. 나라마다 도시가 처한 상황이나 주택 문제가 달라 재생 방식은 제각각이지만, 지속 가능한 도시를 위해 세계 곳곳에서 정부와 주민들이 머리를 맞대고 있다. 일본에선 빈집을 허물기보다 마을 사람들이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는 장소로 만드는 사례가 늘고 있다. 빈집을 허물면 비용도 많이 들지만, 이산화탄소 배출 등 환경에도 좋지 않다. 예를 들어 도쿄의 세타가야구에서는 정부가 재정을 지원해 빈집, 빈방, 정원 등을 커뮤니티 시설로 만든다. 지역에서 필요한 공익시설이나 주민 교류 활성화를 위한 마을 카페, 커뮤니티센터, 놀이방 등 다양한 시설로 바꿔 지역 활성화에 이용한다. 일본은 정부가 빈집 데이터베이스를 작성해 매매·임대를 지원하는 ‘빈집 뱅크’를 만든 데 이어 빈집 조례(2014년), 빈집 대책 추진에 관한 특별조치법(2015년) 등을 만들어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2000년 이후 도시재생에서 ‘지역사회공헌협약’(Community Benefits Agreement, CBA)이 주목받고 있다. 김지은 서울주택도시공사 도시연구원 수석연구원이 쓴 ‘지역사회는 경제기반형 재생사업에 어떻게 참여하는가’라는 보고서를 보면, 공헌협약은 공공지원을 받는 대규모 민간개발사업의 사회적 책임을 담보하기 위한 수단을 말한다. 예를 들어 협약에는 지역주민 우선채용 비율, 생활임금 보장, 부담 가능한 주택 확보, 공공시설 확충 등에 대한 목표치와 실행계획이 포함된다. 이 협약은 법적 구속력이 있는 계약이며, 지역 비영리단체는 이행 과정과 결과를 지속적으로 점검한다. 김 연구원은 “(도시재생 과정에서) 공헌협약은 공청회나 설문조사 등 소극적 주민 참여의 한계를 넘어 지역사회가 협상의 주체로 직접 참여하는 가장 진화된 형태의 주민 참여 가능성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김소연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수석연구원 dandy@hani.co.kr한겨레에서 보기:

‘불안한 미래’ 우리사회 지속가능성, 국민 22%만 “낙관”

 1000명에게 물었다 ‘우리 사회 지속가능할까?’저출산·고령화·양극화·환경변화 공포“비관한다” 42% 달해 갑절 20대, 환경 빼곤 낙관지수 가장 낮아 미세먼지 등 환경 두려움도 증폭 “경제성장 중심 극복하는 것도 과제”“저출산·고령화와 양극화, 미세먼지 등 주변에서 우리 사회가 지속가능할까 걱정하는 사람이 많다. 비싼 아파트, 답이 나오지 않는 교육, 불안한 일자리 등을 생각하면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이 점점 어려워진다.” 수도권에 있는 대학을 다니다 휴학 중인 김수미(가명·22)씨는 미래가 불안하다고 말했다. 열심히 노력해도 별반 달라지지 않을 것 같은 답답함도 있다고 했다. “경제적으로 봤을 때 중간층 정도라고 생각한다”는 그는 “혼자 살아간다면 지금보다 삶의 질이 나아질 것으로 본다. 하지만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산다면 더 나은 삶을 살기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김씨처럼 미래를 암담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정치·경제·사회·환경 등 종합적으로 판단했을 때 국민 10명 중 2명가량만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낙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20대와 60대에서 비율이 가장 낮았다. 대다수 국민이 다가올 미래를 불안하게 생각하는데다, 우리 사회를 이끌어나갈 미래세대와 삶을 치열하게 살아온 노년세대가 우리 사회 지속가능성에 강한 의구심을 드러내고 있어 상당한 위기의 징후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이 여론조사 전문기관 글로벌리서치에 맡겨 전국 성인 1000명을 상대로 패널을 이용한 온라인 방식으로 9월25~27일 실시한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국민의식’ 조사 결과(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3.1%)를 보면, ‘정치·경제·사회·환경 등 종합적으로 판단했을 때 우리 사회 지속가능성’에 대해 21.7%만이 ‘낙관한다’고 응답했다. ‘비관한다’는 응답은 2배쯤 많은 42.1%, ‘보통’은 36.1%로 조사됐다.  미래를 바라보는 인식 차이는 세대와 계층에 따라 뚜렷했다. 20대(19%)와 60대(14.8%)에서 우리 사회 지속가능성을 낙관한다고 선택한 사람이 가장 적었다. 이번 조사에서는 정치·경제·사회보장·환경·외교 등 5개 분야별로 지속가능성에 대해 평가를 했다. 이 중 미래세대인 20대만 따로 살펴보면, 다른 연령과 견줬을 때 환경분야만 낙관한다는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었고, 나머지 분야에선 대체로 낮아 20대의 미래 불안감이 두드러지는 것으로 분석된다. 흥미로운 점은 ‘향후 귀하의 삶의 질은 어떨 것이라고 보느냐’는 물음에 20대의 30.4%가 좋아질 것이라고 답했다는 사실이다. 우리 사회 지속 가능성에 대한 기대보다 10%포인트 이상 높은 수치다. 사회 구조에 대한 암담함을 느끼면서도 개인적으로는 지금보다 조금 더 나아질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하지만 경제적 상황에 따라 격차가 상당히 컸다. 부유한 20대(중간층 이상)는 57.6%가 사회구조와 상관없이 자신의 삶이 나아질 것이라고 봤지만, 가난한 20대(중하층 이하)는 23.1%에 그쳐 2배 이상 차이가 났다.    전체 계층별 분석에서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중간층 이하에서 우리 사회 지속 가능성에 대해 19.3%만 낙관한다고 응답해 가장 낮았다. 중간층 이상과 중간층은 각각 24.5%, 24%로 조사됐다.  분야별로는 대기오염, 에너지 등 환경적 측면의 지표가 가장 나빴다. 지속가능성을 낙관한다는 응답이 12.4%로 경제 등 5개 분야 가운데 최하위 수준이다. 환경에 대한 두려움이 우리 삶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다. 특히 연령별로는 40대(7.9%)와 50대(9.7%), 성별로는 여성의 낙관 비율이 한자릿수로 낮았다. 경기도 성남에 사는 박미영(44)씨는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이 둘 있는데, 미세먼지에 대한 공포가 심하다. 최근 조금 좋아졌지만 미세먼지 심한 날은 무서울 정도”라며 “당장 획기적으로 좋아질 수 없고, 중국 등 외부 변수도 있어 답답한 심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환경문제는 내 삶에서 조금 떨어진 주제라고 생각했는데, 미세먼지가 심각해지면서 피부로 생생히 느끼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기상이변을 사회관계망(SNS)에서 생생하게 볼 수 있는데다, 최근 스웨덴의 청소년 그레타 툰베리 등 환경운동가들의 적극적인 활동으로 기후변화의 위험성이 알려진 것도 영향을 줬다는 분석이다.  반면 민주주의와 시민참여 등 정치적 측면의 지속가능성과 관련해선 응답자의 32.6%가 낙관한다고 답해 가장 높았다. 2016년 촛불혁명 등 시민의 힘으로 최고 권력인 대통령을 하야시킨 경험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 사회 미래와 관련해 가장 불안한 점을 묻는 질문에는 ‘저출산·고령화 등 인구구조 변화’(25.6%)를 가장 많이 꼽았다. 우선 저출산·고령화는 정부도 심각성을 알고 재정을 전폭적으로 투입하고 있지만 상황이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있다. 지난해 합계출산율이 0.98명으로 1명대가 무너지면서 세계 유일의 ‘0명대’ 국가가 됐다. 고령화도 속도가 워낙 빠른데다 노인빈곤율도 45.7%에 이른다.  ‘자산·소득·교육 양극화 등 사회계층 간 갈등 심화’(25.2%)도 고질적인 불안요소다. 특히 20~30대가 저출산·고령화보다 사회계층 간 갈등 심화가 더 불안하다고 선택했다는 점이다. 최근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 과정에서도 나타났듯이 ‘금수저’ ‘흙수저’ 등 사회적 논란이 거세진 것도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비슷한 맥락에서 우리 사회 가장 심각한 갈등을 묻는 질문에 43.9%가 ‘계층 간 갈등’을 꼽아 비율이 가장 높았다. 이념(29%), 지역(6.4%), 세대(6.1%), 성별(6%), 남북(5.6%) 등이 뒤를 이었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가 지속가능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64.4%가 ‘경제성장, 좋은 일자리 등 경제분야’라고 응답했다. 성별, 연령, 계층에 상관없이 압도적으로 높게 나왔다. 민주주의와 시민참여 등 정치분야가 13.7%, 환경분야 9.7%, 남북관계 등 외교 6.4%, 취약계층 보호 등 사회보장분야는 5.7%로 조사됐다.  윤희웅 오피니언라이브 여론분석센터장은 “경제와 성장, 이를 통한 일자리 창출 없이는 우리의 미래가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인식이 국민들에게 뿌리 깊게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다. 그런데 우리 사회가 좀 더 지속가능해지기 위해 극복해야 할 점도 바로 이 성장 중심의 경제관”이라며 “이러한 딜레마를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우리 사회가 당면한 핵심 과제”라고 지적했다.  기후변화 같은 생태위기와 불평등이라는 사회경제적 위기가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고 있다. 성장만을 숭배하고 승자가 모든 것을 챙기는 극단적 시장주의가 두 개의 위기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2015년 지구촌 193개 나라가 유엔이 제시한 지속가능발전목표(SDGs)에 합의했다. 기후변화 대응, 불평등 감소 등 17개 목표를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이 함께 달성해 나가면서 경제·사회·환경의 지속가능성을 높이자는 취지다. 한겨레신문사는 오는 23~24일 ‘대전환 :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사회적 합의’를 주제로 제10회 아시아미래포럼을 연다.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이 주관하는 이번 포럼은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우리 사회의 패러다임 전환을 진지하게 모색하는 자리다. 서울 용산 서울드레곤시티호텔에서 열리는 포럼에선 세계적 미래학자인 제레미 리프킨 미국 경제동향연구재단 이사장이 특별강연을 하고, 도시 및 노동연구의 석학 리처드 세넷 영국 런던정경대학교 사회학 교수가 기조강연을 한다. 포럼에 앞서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은 기업, 도시, 금융 등 3개 영역에서 지속가능한 미래에 대한 도전이나 문제의식을 담은 1부 기획기사를 3차례에 걸쳐 싣는다. 국민 여론 조사를 통해 우리 사회 지속가능성에 대한 인식도 분석한다. 이어 2부는 제러미 리프킨, 리처드 세넷 등 주요 연사의 사전 인터뷰 기사를 마련한다. 김소연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수석연구원 dandy@hani.co.kr 한겨레에서 보기: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911701.html 

‘고위공직자, 도덕성 보다 능력’…국민 69%는 동의 안했다

1000명에게 물었다 ‘사회적 쟁점’ 어떻게 생각하나?인사청문회 도입 검증 강화에도사회·경제 기득권에 부정적 인식72% “그 자리 차지할 자격 없다”한일관계 회복과 역사 청산 놓고‘과거사 선해결’ 3배 이상 많아‘자사고 필요’ 부정답변 15%포인트 많아   한국 사회는 갈등이 많은 곳이다. 한국의 사회갈등지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중 3위(2016년 기준)로 멕시코, 터키 다음으로 높다. 물론 갈등이 꼭 나쁜 것은 아니다. 사회적 공론화를 통해 접점을 찾아낸다면 우리 사회 민주주의는 한층 성숙할 수 있다. 하지만 과도한 갈등은 사회 통합을 저해하고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켜 국가 경제 전반에도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 우리 사회가 지속가능하려면 수많은 갈등을 피해갈 수 없다. 환경위기와 불평등, 복지 등 대부분 입장 차이가 나뉜다.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우리 사회가 주요 쟁점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여론을 파악하는 일이 중요하다.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은 여론조사 전문기관 글로벌리서치에 맡겨 전국 성인 1000명을 상대로 패널을 이용한 온라인 방식으로 9월25~27일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국민의식’ 조사(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3.1%)를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여러 갈등에 대해 국민들의 의견을 물었다.   우선 최근 한달 이상 우리 사회의 가장 뜨거운 쟁점을 꼽으라면 단연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 문제다. 보수·진보의 갈등을 넘어 진보 세력 안에서도 입장 차이가 커 사회적 피로도가 극에 달한 상태다. 검찰개혁을 위해 조국 장관만큼 능력 있는 고위공직자가 없다는 의견부터 사모펀드 투자, 자녀 대학 입시 과정의 불공정 행위 의혹, 횡령·배임한 태광그룹 회장 탄원서 등 법 위반 여부 이전에 도덕성에 문제가 심각하다는 지적도 있다.  어느 정권이든 고위공직자 임명 과정에서 도덕성과 업무능력 문제는 늘 쟁점이 돼왔다. 국민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대통령이 고위공직자를 임명할 때 도덕성이 다소 약하더라도 능력이 받쳐주면 괜찮다’는 항목에 69.5%가 부정적이라고 답했다. 즉, 국민 10명 중 7명은 도덕성을 고위공직자의 핵심 요소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2000년 김대중 정부 때 도입된 인사청문회는 여러 논란에도 고위공직자 도덕성의 기준으로 높여왔다. 우리 사회에선 아직 기득권에 대한 인식이 상당히 부정적이다. ‘사회·경제적 상위 계층은 그 자리를 차지할 자격이 충분하다’에 72.1%가 부정적이라고 밝혔다.  ‘한-일 관계 회복’ 대 ‘역사 청산’, 무엇이 우선? 동아시아 평화를 위해 한일 갈등과 남북관계 개선도 우리에겐 큰 과제다. 한국 대법원의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판결에 대한 일본의 무역 보복과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종료까지 최근 한일 관계가 역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중심에는 언제나 역사문제가 있다. 한일 관계와 관련 응답자의 75.6%는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서라도 역사 문제 해결이 선행 돼야 한다’고 답했다. 24.4%만 ‘일단 한일 관계 개선 뒤 역사 문제 해결’을 선택했다. ‘과거사 선해결’이 3배 이상 많은 셈이다. 과거사 해결을 원하지만, 앞으로 한일간 역사문제가 잘 해결될 것이라고 보냐는 질문에 75.9%가 비관적이라고 전망했다. 아베 총리 등 과거사를 반성하지 않는 일본 자민당이 장기집권 하면서 문제 해결이 어렵다는 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남북관계의 핵심인 통일을 두고는 입장이 팽팽했다. ‘남북한 격차가 크고, 비용이 들지만 통일이 필요하다’는 항목에 57.8%가 긍정적, 42.2%는 부정적이라고 밝혔다. 대부분의 연령대에서 긍정 의견이 많았지만, 20대만 절반이 넘는 52.9%가 부정적이라고 했다. 통일이란 의제가 청년 세대에겐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반드시 이뤄내야 할 목표는 아닌 셈이다. 북미 정상회담까지 이뤄지지 등 어느 때보다 한반도 평화체제에 대한 기대가 높은데도 남북관계 전망을 묻는 질문에 불투명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앞으로 10년 뒤 남북한 관계의 전망을 묻는 질문에 ‘별 차이가 없을 것’이라는 응답이 46%로 가장 높았고, 좋아질 것 43.3%, 나빠질 것이라는 응답은 10.7%에 그쳤다.  기울어진 운동장, 특목고·자사고는 어떻게? 사회분야는 복지와 증세, 특수목적고·자산고 등 찬반이 가장 뜨거운 분야다. 먼저 ‘복지 수준을 높이기 위해 세금을 더 낼 의향이 있다’는 항목에 절반 이상인 58.3%가 동감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부정적 답변은 20대(60%)와 50대(66.9%)와 세금을 많이 내야 하는 중산층 이상(63.2%)이 높았다. 복지가 확대되면서 몇년 전까지만 해도 “복지 위해 세금을 더 낼 수 있다”는 의견이 절반을 넘어 우세했는데, 조금 주춤한 분위기다. 교육 문제와 관련해 ‘여러 논란에도 특수목적고나 자율형사립고가 필요하다’에는 동감하지 않는다는 부정적 답변이 57.4%로 동감한다(42.6%)보다 14.8%포인트 높았다. 특목고에 대한 부정적 답변은 20대(59.5%), 50대(63.4%), 계층별로는 중하층 이하(64.5%)에서 많았다. 특목고, 자사고는 일반고에 견줘 비싼 등록금에 명문대 진학률이 높아 ‘기울러진 운동장’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경제·환경 분야에서는 최저임금, 분양가 상한제, 친환경 에너지 등의 쟁점을 살폈다. ‘자영업자·소상공인들이 다소 힘들어도 최저임금은 지금보다 더 많이 올라야 한다’는 항목에 ‘동감하지 않는다’가 52.4%로 동감한다(47.6%)보다 4.8%포인트 높게 나타났다. 소득주도성장의 핵심 정책인 최저임금이 문재인 정부 들어 16.4%, 10.9% 등 두 자릿수 인상이 되면서 사회적 논란이 커졌다. 큰 폭의 최저임금 인상은 임금 격차 축소라는 긍정적인 영향과 함께 고용 불안이라는 과제도 남긴 탓이다. 가뜩이나 경영상황이 좋지 않은 영세·중소업체들이 최저임금 인상으로 고통을 호소하는 등의 사회적 분위기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분양가 상한제는 다소 부작용이 있다고 해도 집값 안정화를 위해 필요하다’에는 66.5%가 긍정적이라고 답했다. 정부는 서울 강남 재건축 아파트의 과열 분위기를 억제한다며 충분한 검토를 거쳐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도입을 판단할 것이라고 밝힌 상태다. 분양가 상한제 찬성은 주택 실구매 연령인 30대(70.7%), 40대(71.8%)에서 찬성이 높았다. 국민 대토론회까지 열었던 원전 문제와 관련해서는 ‘전기요금이 다소 올라가더라도 원전을 줄이고, 친환경 에너지를 사용해야 한다’에 긍정이 65.2%로 부정적 의견(34.8%)을 큰 폭으로 앞섰다.  국회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에 오른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대해서도 찬성이 많았다. ‘국민의 대표성 확대 등을 위해 국회의원 지역구 의석을 줄이고, 비례대표 의석을 늘리는 방식으로 선거제도를 바꿔야 한다’에 동감한다가 54.5%로 동감하지 않는다(45.5%)보다 10%포인트 높았다.  김소연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수석연구원 dandy@hani.co.kr한겨레에서 보기: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911702.html 

세계기업 200여곳 “100% 재생에너지로” ··· 탄소제로화 거센 물결

페이스북, 구글, 애플 등 에너지전환 적극적기후위기 대응은 기업에 중요한 미래 생존전략협력업체에도 동참 요구, 무역장벽 될 우려 커중· 일기업도 “100%에 동참”, 한국기업은 없어환경보호 뿐 아니라 성장과 생존문제로 인식해야미국 캘리포니아 멘로파크에 자리 잡은 페이스북 본사 옥상 모습. 태양광 패널을 통해 3.6 메가와트의 전기를 생산하고, 공원을 조성해 강한 햇빛을 차단함으로써 100% 재생에너지로 가동될 수 있게 했다. 페이스북 제공페이스북 본사가 있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멘로파크 지역. 지난달 23일 페이스북이 초창기부터 사옥으로 사용하던 ‘클래식’이란 구역을 찾았을 때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 ‘좋아요. ’입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설립된 지 15년 만에 25억명이 사용하는 세계 최대의 소셜네트워크로 커간 회사답게 사옥을 계속 짓고 있었다. 페이스북 웨이라 이름 붙여진 바닷가 도로를 따라 유리로 외관을 꾸민 빌딩들이 줄지어 있었고, 새로 짓고 있는 곳도 여럿이었다. 기자를 안내한 인프라 홍보담당자 멜라니 로 (Melanie Roe)는 “본사의 모든 시설이 친환경적으로 지어지고 운영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실재 이곳 60여개 건물의 모든 전기는 3.6 메가와트(MW) 규모의 옥상 태양광 같은 재생에너지에서 나온다. 물도 순환시스템을 통해 75% 이상 재사용된다. 이곳뿐 아니라 미국, 유럽, 아시아 등에 퍼져있는 데이터센터와 사옥에서 적지 않은 전기를 사용하는 페이스북은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에 적극적이다. 최고경영자 마크 주커버그는 올 4월 데이터센터를 지원하는 6개 태양광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라고 공개했다. 이 가운데는 서부 텍사스에 4억1600만 달러(4982억원)를 들여 미국 최대 규모로 짓고 있는 프로스페로 태양광 발전소 (379MW)의 파트너 투자가 포함돼 있다. 에너지·환경·입지선정 총괄이사인 보비 홀리스 (Bobby Hollis)는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지금까지 모두 4기가와트(GW)의 재생에너지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며 “내년 말에는 전 세계 모든 사옥과 데이터센터에서 100% 재생에너지 전기를 사용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9월 말 유엔에서 열린 기후 행동 정상회의에서 스웨덴의 청소년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16)는 “대규모 멸종을 앞두고 있는데 당신은 돈과 영원한 경제성장이라는 꾸며낸 이야기만 늘어놓는다”고 질타했다. 기후변화 대신 ‘기후위기’로 바꿔써야 한다는 말이 나올 만큼 지구생태의 위기는 심각하게 다가오고 있다. 지구가 파국에 이르는 기온 상승이 0.5도 남았다는 것이 권위 있는 유엔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IPCC) 보고서의 결론이다. 인류가 살아남으려면 향후 세계 전력량의 70~85%를 재생에너지로 생산하는 등 온실가스 배출을 10년 내에 45% 줄이고, 2050년에는 0%를 달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심각성이 더해감에 따라 2050년까지 탄소 제로(0) 목표를 선언하는 국가도 늘고 있고, 내연기관차 판매를 중단하겠다는 업체와 정부의 발표도 잇따르고 있다. 글로벌 기업들 적극적으로 에너지 전환에 나서 페이스북의 사례는 기업이 더는 기후변화의 방관자에 머물러 있지 않다는 걸 보여준다. 페이스북만 아니라 주요 글로벌 기업들은 기후변화에 대응해 화석연료와 빠르게 결별하고 있다. 공업 및 상업용 전기수요는 전체 전력사용의 3분의 2에 이른다. 이런 노력은 ‘알이 100’ (Renewable Energy 100) 이란 국제 캠페인을 통해 결실을 거두어가고 있다. ‘알이 100’은 기업이 자체발전이나 구매를 통해 사용전략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조달하는 것을 약속하는 민간 캠페인이다. 2014년 국제환경단체 ‘기후그룹’과 탄소정보공개프로젝트(CDP)의 제안에서 출발해 8월 현재 194개 기업이 참여하고 있다. 페이스북, 구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스타벅스, 월마트, 베엠베 등 글로벌 거대기업 다수가 참여하고 있다. 참여 기업의 전력 수요를 모아놓으면 세계 22위인 타이와 맞먹는다. 기후그룹의 샘 키민스 대표는 지난 7월 한국을 방문한 자리에서 대부분의 기업이 100%를 달성하겠다고 한 연도가 2026년이라고 밝혔다.  샌프란시스코시에서 북동쪽으로 80여 킬로미터 떨어진 알타몬트 패스의 풍력발전 단지. 5천여개의 풍력 발전기가 있는 이곳은 80년대 초 석유 위기 시기에 지어져 한 때 미국 내 최대의 풍력단지였다. 이곳은 근처 실리콘밸리의 구글 같은 업체가 전기 구매 계약을 체결함에 따라 발전의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 이미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스타벅스 등 20여 기업이 2017년 말 현재 100% 목표를 달성했다. 9월 말 구글은 확장하는 데이터센터 수요에 맞춰 20억 달러의 투자가 예상되는 18개의 태양광 및 풍력 전력 구매계약(1.6 GW)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 최고경영자도 그 주 2024년까지 10만대의 배송용 전기벤을 구매해 배치하고,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100% 사용, 2040년 탄소배출 제로를 달성하겠다고 발표했다. 스웨덴의 이케아는 2020년까지 28개국 336개 매장에서 소비하는 에너지보다 많은 재생에너지를 생산하기로 약속했다. 완성차 업체인 베엠베는 2020년까지 사용하는 에너지의 3분의 2 이상을 재생에너지로 대체하겠다고 밝혔다. ‘알이 100’의 초기에는 미국과 유럽 기업이 주도했으나 지난해부터 중국, 일본, 인도 등 아시아 기업의 가입도 늘고 있다. 특히 일본은 2017년 3개에서 1년 사이에 13개로 늘었다.  주요 글로벌 기업이 에너지 전환을 열심히 하는 것은 사회적 책임(CSR) 이행이나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자는 것일 수 있다. 수지 측면에서 불리한 것도 아니다. 기술발전으로 재생에너지 발전단가가 싸져 여러 나라에서 ‘그리드페리티’(전기생산에서 화석연료와 신재생에너지의 발전단가가 같아지는 균형점)를 달성해 재생에너지는 그 자체로 경쟁력이 생겼다. 시장조사기관인 블룸버그 NEF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태양광 발전단가는 85%, 풍력 발전단가는 50%가 떨어져, 세계 3분의 2 지역에서는 석탄이나 천연가스 발전단가보다 싸졌다. 하지만 이들 기업의 보폭은 이런 정도의 목표를 뛰어넘고 있다. 인류 최대 ‘메가트랜드’라 할 수 있는 기후변화에 대응해 기업 문화와 전략을 바꿈으로써, 규제의 위험은 피하고, 시장의 변화를 선취해 기업의 경쟁력과 지속성을 확보하려는 것이다.  ’알이 100’ 확산이 기후변화 대응에 청신호인 것은 에너지 전환을 정부와 발전사업자의 공급확대에서 기업과 수요자가 견인하는 쪽으로 뒤집은 것이다. 기업이 요구함에 따라 각국의 정부와 정치권도 서둘러 에너지 전환에 불편한 제도를 개선하게 돼 신재생에너지 투자는 늘어나고 가격이 내려가는 현상이 벌어진다. 김승완 충남대 교수 (전기공학)은 “기업이 재생에너지 사용을 선언하고 태양광이나 풍력이 직접 투자하거나, 전략회사에 재생에너지 공급을 요구함으로써 수요와 재생에너지 증가가 선순환되도록 설계된 캠페인”이라며 “에너지 전환의 패러다임을 바꿔 놓은 것”이라고 평가했다.  미국 캘리포니아 마운틴뷰에 있는 구글의 본사 구글 캠퍼스. 저녁에도 많은 직원이 불을 켜 놓고 근무를 하고 있다. 마운틴뷰 구글 캠퍼스에서 저녁 무렵 직원들이 불을 켜 놓고 배구를 하고 있다. 이곳 구글 본사의 모든 전기는 재생에너지로 조달된다. 무역장벽 우려에도 불구 한국기업 움직임 더뎌 주목할 것은 이 캠페인에 참여한 글로벌 기업들이 부품과 소재협력업체에도 재생에너지로만 생산한 제품을 납품할 것을 요구하는 추세이다. 자신들만의 전환으로 끝나지 않고 확산하는 것에 가치를 두기 때문이다. 실재 2020년까지 공급사슬 전체를 재생에너지로 운영하겠다는 계획을 가진 애플의 담당 임원이 올여름 삼성전자와 하이닉스, 정부, 국회 등을 방문해 자신들의 ‘크린에너지’ 정책을 설명하고 부품 협력업체도 신재생에너지 사용에 동참할 것을 요구했다. 애플의 방침에 따라 100% 재생에너지 사용을 약속한 부품 협력업체가 세계에서 40여개에 이른다. 베엠베, 폭스바겐 등 유럽의 자동차 업체와 북미의 아이티 업체도 2016년 부터 국내 베터리 생산업체에 재생에너지를 사용한 베터리 납품을 요구하고 있다. 엘지화학 관계자는 “일부는 전환이나 전환계획을 요구하고, 프로젝트 수주의 조건으로 신새쟁에너지 사용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밝혔다. 이상훈 한국에너지공단 신재생에너지센터장은 “아직 강제성을 띠지는 않지만, 이런 움직임이 확산될 경우 무역장벽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국내기업들도 수출기업을 중심으로 에너지 전환의 필요성은 느끼고 있지만 아직 국제적인 흐름에 비춰 소극적인 게 사실이다. 아직 알이100에 참여한 국내기업은 한 곳도 없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6월 미국, 중국, 유럽 등 해외사업장에서 2020년까지 전력사용량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실재 1년 사이에 재생에너지 사용이 빠르게 늘어 미국 오스틴 반도체 사업장 등 미국 내 사업장은 지난해 말 전력사용량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전환했다. 하이닉스도 해외사업장에서 2022년까지 100% 재생에너지 전력을 사용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하지만 국내에서의 에너지 전환은 더디기만 하다. 삼성전자 전체 전력의 65%를 사용하는 국내사업장은 재생에너지 비율이 0.4% (2018년 기준)에 불과하다. 재생에너지 사용을 의도적으로 확대함으로써 태양광, 풍력발전 확산의 기폭제를 만들어가는 글로벌 산업의 트랜드는 한국에선 여전히 생소한 이야기이다.  미국 캘리포니아 쿠퍼티노에 있는 애플 본사. ‘인피니티 루프’란 별칭을 가진 애플 사옥은 옥상에 태양 전지판을 달아 1년 중 9개월은 추가 냉난방 전력이 없이도 운영할 수 있다. 애플도 현재 모든 사업장에서 재생에너지를 사용하고 있다. 기업이 직접 장기구매계약 할 수 있는 제도 개선 시급 이런 데는 △산업용 전기요금보다 재생에너지 가격이 여전히 비싸고 △기업 내부에 에너지 전환에 대한 공감대가 약하며 △재생에너지 사용을 늘릴 제도적 기반이 취약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2017년 말 ‘재생에너지 3020 이행계획’을 통해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비중을 20%까지 늘리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국내 재생에너지 비중은 2017년 말 현재 8% 수준으로 선진국에 비해 낮은 실정이다. 논란이 있지만 국내 재생에너지 설치 잠재력은 건축물 옥상, 염해 농지 등 우선 공급 가능한 면적만으로도 충분한 편이며 해상 풍력도 잠재력이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컨설팅업체 삼성 KPMG에 따르면 2018년 기준 킬로와트시(kWh) 당 정산단가는 태양광 97.9원, 풍력 105.8원으로 유류( 179.8원), 엘엔지 (121원), 무연탄 (104.6원) 보다 낮거나 비슷하고, 유연탄(81.8원), 원자력(62.1원) 보다 높은 수준이다. 재생에너지라고 무조건 비싸다는 인식은 벗어날 때가 됐지만 그런데도 재생에너지 전기가 경쟁력을 가지는 규모의 경제에 이르려면 몇 년은 더 걸릴 것으로 예상한다. 전기요금이란 ‘인센티브’가 작동하지 않으면 탄소세 부과와 같은 ‘페널티’가 기업을 움직이게 할 수 있으나 그러지도 못한 실정이다.  수익을 생각하면 기업이 망설이는 게 이해가 되지만, 명확해지는 기후변화의 위협을 생각할 때 좀 더 적극적인 자세를 가질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의 이진선 기후에너지캠페이너는 “애플, 구글, 페이스북 같은 기업은 재생에너지를 효과적으로 조달하기 위해 앉아 기다리기보다 전력회사나 정부에 서한을 보내 요구했다”며 “전력회사는 큰 고객이 요구를 들어주게 되고, 정부도 없는 정책을 만드는 쪽으로 움직였다”고 말했다.  페이스북 최고경영자인 마크 저커버그가 올 4월 6개의 태양광발전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고 공개하며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태양광 발전소 사진. 저커버그 페이스북 ‘닭이냐 달걀이 먼저냐’의 딜레마를 돌파하려면 기업이 자체 태양광, 풍력을 설치하는 외에 재생에너지를 구매할 방법이 없는 제도를 시급히 손봐야 한다. 지난해 말부터 해외동향에 민감한 수출기업을 중심으로 에너지 전환을 위한 제도를 마련해 달라는 요구가 나옴에 따라 산업부는 녹색 요금제를 고안해 올 연말 시범실시할 계획이다. 이는 기업이 인증서를 구매해 그 부분만큼 재생에너지 사용으로 인정받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기존 재생에너지 발전량을 기준으로 요금을 설계하는 것으로 기업이 직접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와 장기계약을 맺는 기업구매제도(PPA)에 비해 재생에너지 보급 확대에 기여하는 정도가 약하다. ‘알이 100’에 열심인 페이스북, 애플, 구글 같은 기업들은 태양광, 풍력발전에 직접 투자하거나 장기 직거래계약을 통해 재생에너지 비중을 빠르게 늘려가고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한전 중심의 독점 구조를 깨야 하는 일이어서 쉽지 않은 과제이다. 기업의 직접 전기구매 필요성이 높아지자 국회 김성환 의원(더불어민주당)이 지난 7월 이를 가능케 하는 전기사업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야당의 비협조로 이 법은 상임위 문턱도 넘지 못했다. 이상준 에너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우선 제도를 통해 돌파구를 마련해야 기업의 인식개선이나 그리드페리티 달성도 빨라진다”며 “기업 피피에이가 장기과제라면 녹색 요금제에서 출발해 한전 등이 중간역할을 하는 ‘그린테리프’ 등 다양한 선택을 기업에 제공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페이스북이 짓고 있는 미국 내 데이터센터 중 한곳. 건설 전부터 재생에너지 조달 계획을 세우고, 유휴 부지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한다. 페이스북 제공기후변화에 대응한 에너지 전환은 이제 기업의 장기적 생존 전략이 있느냐 아니냐의 문제로 전환되고 있다. 이는 국가 경제로 봐서도 일자리나 산업경쟁력의 문제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수출품목이고 고용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자동차 역시 전기차의 충전 인프라를 구성할 신재생에너지 발전비중의 확대와 맞물려 있다. 기업, 시민단체, 정치권, 학계를 망라한 시민단체 에너지 전환 포럼의 홍종호 교수(서울대 환경대학원장)는 “기후변화 대응은 환경문제를 넘어 성장과 생존의 문제라는 점을 들어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며 “큰 그림이 없다는 비판을 받는 정부도 기업 피피에이나 전기차 의무판매제처럼 분명한 시그널을 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기업이 기후변화를 경영의 디엔에이로 녹여내 대응해야 시대다. 글로벌 기업들은 이미 저만치 가고 있다.   멘로파크(미국) / 글· 사진 이봉현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bhlee@hani.co.kr  한겨레에서 보기: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911699.html 

“기업의 지속가능성에 에너지 전환은 필수”

[인터뷰] 보비 홀리스 페이스북 총괄 이사“기후변화는 우리가 대응할 매우 중대한 이슈, 한국기업도 의지를 갖고 나서면 방법 찾을 것보비 홀리스 페이스북 글로벌 에너지·환경·입지선정 총괄이사페이스북은 2011년 기후변화에 대응해 재생에너지 사용 확대를 약속했고, 현재는 1년여 뒤인 2020년 말까지 14개에 이르는 글로벌 데이터센터와 사옥=에서 재생에너지 사용 100% 이행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 과정에서 혼자만의 에너지전환에 그치지 않고 다른 기업의 동참을 끌어낸 점이 주목된다. 연면적 2만7천여평에 이르는 데이터센터가 들어설 유타주의 이글 마운틴에서 로키 마운틴 전력과 ‘스케줄 34’라는 재생에너지 구매 제도를 만들어 냈고, 앨라배마·조지아 같은 주에서도 비슷한 구매 제도를 디자인해 다른 기업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바비 홀리스 글로벌 에너지·환경·입지선정 총괄 이사(사진)는 “경쟁자일지라도 재생에너지 확대를 꾀할 수 있다면 우리가 만든 제도에 들어오는 것을 환영한다”고 말했다. 홀리스 이사는 전 세계 사옥 및 데이터센터의 입지, 에너지 전략을 이끌고 있다. ―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에 어려움은 없나? “회사가 빠르게 커가고 있어 이에 맞춰 에너지 조달계획을 세우는 게 쉽지는 않다. 데이터센터 입지를 선정할 때 다양한 요소를 보는데, 에너지 측면에서는 전력 수요, 기존의 지역 인프라, 날씨 등 다양한 점을 살핀다. 이 가운데 전력조달은 중요한 고려사항이다. 보통 새로운 데이터센터가 가동되기 18개월~2년 전에 재생에너지 공급 계약을 체결한다.” ― 왜 에너지전환에 앞장서는가?  “기후변화는 우리가 대응할 매우 중대한 이슈이다. 지속가능성이란 목표를 향해가는데 전력 에너지전환은 필수적이다. 페이스북 사용자는 우리가 좋은 기업 시민이 되길 원하며, 복잡한 이슈를 이해하고, 지역사회에서 할 일에 대해 잘 알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와 함께 재생에너지 사용이 회사와 최고경영자의 중심에 깊숙이 자리 잡은 가치이길 기대한다고 본다.”  ― ‘계약가격제’ 같은 거래제도를 창출해 다른 기업의 참여를 유도하고 있는데.  “우리는 발전회사와 솔루션을 적극적으로 찾는다. 아시아의 여러 나라도 그렇지만 미국의 여러 주에서도 거대 발전회사가 한 가지 종류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구조를 갖고 있어, 크고 작은 전력 소비자와 지역사회가 재생에너지를 채택하기 쉽지 않다. 우리는 주 정부, 전력회사와 지속적인 협상을 벌여 재생에너지 구매가 가능한 제도를 만들어 낸다. (그간 에너지전환이 어려웠던) 다른 기업은 우리가 창출한 계약가격으로 재생에너지를 구매할 수 있다. 특히 우리는 데이터센터가 있는 지역의 전력망 안에 구매한 전기가 들어오게 함으로써 그 지역의 일자리 창출과 투자가 늘어나도록 하고 있다.”  ― 협상이 쉽지 않을 텐데 그렇게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페이스북의 사명은 공동체를 만들고 세계가 가까워지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는 에너지전환의 측면에서 우리 주변과 파트너십을 맺어 좀 더 지속가능한 세상을 위한 솔루션을 개발하는 것이다. 우리는 대화의 상대이자 다리 역할을 하고자 한다.”  ― 한국은 재생에너지가 가격이 비싸서 기업들이 에너지전환에 소극적인데.  “기술이 빠르게 발달해 태양광과 풍력은 세계 여러 곳에서 비용 효율적인 선택이 됐다. 5년 전 재생에너지가 얼마나 비쌌던 가를 생각해 보면 많은 인식이 과거의 것이 됐다. 이게 지금 많은 사람이 열린 마음으로 솔루션을 찾으러 나오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전문성과 노하우를 가진 이들이 열린 마음과 의지를 갖고 대화하면 방법을 찾을 수 있다고 믿는다.”  멘로파크(미국)/글·사진 이봉현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bhlee@hani.co.kr한겨레에서 보기: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911700.html

[2018 아시아미래포럼 관련] [주주통신원의 눈] 우리 삶의 화두가 된 ‘불평등’ 문제 / 김종선

올해로 아홉번째를 맞은 ‘2018 아시아미래포럼’이 지난달 30~31일 이틀간 열렸다. 한겨레신문이 주관한 이번 포럼의 주제는 ‘대전환: 불평등, 새로운 상상과 만나다’였다. 한겨레가 ‘불평등’ 문제를 화두로 제시한 것이다. 특히 이번 포럼에는 불평등 문제의 세계적 권위자인 토마 피케티 프랑스 파리경제대 교수와 국내외 전문가, 기업인, 학자, 활동가들이 대거 참여했다. 첫날 주요 인사의 강연은 물론이고 둘째 날 각각의 세션도 자리가 가득 찼다. 몇년 전 은퇴 후 <한겨레:온> 주주통신원이 되어 2016년부터 3년 연속 참석한 나에게 이번 포럼은 남다른 감회를 안겨주었다. 대학 시절 당시 가발공장 노동자가 많이 살던 서울 뚝섬 근처에서 자취생활을 했다. 그 시대 ‘생각 있는’ 대학생들이 그러했듯 친구들과 함께 야학을 만들어 공장 일 하며 하루하루 사는 청소년들을 가르쳤다. 가난을 벗어나는 일도 차별받지 않는 것도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는 것도 모두 ‘교육’의 힘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소신에서였다. 그러다 1980년 광주 민주화운동으로 친구들이 잡혀가 고문받고 죽는 슬픔을 겪은 뒤 유학을 떠났다. 공부를 마치고 1985년 귀국했지만 80년 광주의 흔적이 사라지기는커녕 연일 시위 집회와 최루탄 가스가 되어 학교와 거리를 덮고 있었다. <한겨레> 창간 해인 1988년 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자는 심정으로 학교 선생님이 되었다. 지금은 부동산 재개발로 원주민이 밀려나고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며 신흥 고가 아파트 단지들이 자리를 잡았지만 당시 우리 학교 주변에는 어렵게 사는 사람이 대다수였다. 나의 수업 방식도 어떻게 하면 그런 환경에 놓인 아이들이 세상을 바르게 이해하고 자각할 수 있겠는가에 초점을 맞췄다. 그래도 그때는 어렵게 살았지만 아이들의 표정은 밝았고 미래에 대한 꿈도 꿀 수 있었다. 하지만 30년이 지난 지금 정말 세상이 완전히 달라졌다. 피케티 교수와 리처드 윌킨슨 영국 노팅엄대 명예교수는 우리 사회가 자산·교육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음을 지적하고 다양한 해법을 제시했다. 교사 재직 시절 학생들과의 많은 상담을 통해 아이들이 가난과 차별은 물론 부익부 빈익빈, 무전유죄 유전무죄의 사회 현상에 상처받고 좌절한 예를 많이 보아온 나로서는 불평등이 개인의 삶은 물론 사회관계의 질을 악화시킨다는 강연자들의 한마디 한마디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차별받고 소외된 이들에게 등불이자 희망으로 30년을 뛰어온 ‘한겨레’가 이번에 준비한 포럼은 그래서 더 반갑고 주주로서 자랑스럽다. 탐욕의 권력을 몰아낸 촛불 시민들의 소망을 담아 출범한 문재인 정부가 뿌리 깊은 기득권 세력의 집요한 저항에도 불구하고 ‘소득주도 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라는 3대 정책목표를 실행해가는 시점에 매우 시의적절한 선택이었다. 문재인 정부의 성공 여부는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불평등’ 문제를 얼마나 잘 해결하느냐에 달렸다고 본다.  <한겨레>는 신문이 직면한 여러 현실적인 어려움 속에서도 30년간 인간과 사회를 향한 따뜻한 시선과 의지를 세워왔다. 그런 연장선에서 삶의 기본 조건으로서의 ‘불평등’을 주제로 세계적인 포럼을 열고 성황리에 마친 것을 함께 기뻐하며 축하하는 마음이다. 김종선 전 마포고등학교 교사 haohutu@hanmail.net한겨레에서 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69279.html#csidx019608dcd8d53eda38b158d24aeb52d  

[2018 아시아미래포럼 관련] [유레카] 불평등의 심리학 / 이창곤

 왜 적잖은 사람들이 끼니를 채우고도 먹는 것을 멈추지 못하는가?미국의 정신의학자 로저 굴드는 인간에게는 몸속 위장이 아닌 ‘유령위장’이 따로 있다고 본다. 그는 비만 환자들을 접하면서, 식탐은 배고픔만이 아니라 무기력증에서도 비롯된다는 것을 발견했다. <허기사회>의 저자 주상윤은 이를 ‘밥그릇의 허기’라고 이름 짓고, 이런 정서적 식욕은 경제적 결핍 및 배제나 관계적 결핍 때문이라고 파악했다. 그는 우리 사회는 이미 밥을 먹었는데도 허기를 느끼는 ‘정서적 허기’로 가득 차 있다고 진단했다.리처드 윌킨슨 영국 노팅엄대 명예교수는 지난주 열린 제9회 아시아미래포럼의 기조강연에서 “불평등한 사회일수록 고소득자들은 우월감을 느끼고, 저소득자들은 자신을 가치없는 사람이라고 여기게 된다”며 불평등이 정신건강에 끼치는 여러 악영향을 경고했다. 예컨대 불평등한 나라나 지역일수록 우울증과 비만 등이 발병할 우려가 크고, 스트레스가 높게 나타나며, 학교 내 집단 괴롭힘도 자주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의 아내이자 공동연구자인 케이트 피킷 요크대 교수는 영국 런던의 한 지하철 노선을 따라 중심부에서 외곽지역으로 갈수록 해당 지역 주민들의 기대수명이 점차 줄어드는 연구 결과를 제시했다. 거주지에 따라 건강과 수명에 격차가 나타남을 보여준 것이다. 같은 포럼에 참여한 아시아개발은행 수석 칼럼니스트 사와다 야스유키도 토론에서 고소득자에 견줘 가난한 사람들한테서 스트레스 관련 호르몬인 코르티솔의 분비가 높게 나타난 실험 결과를 소개했다.이들 학자가 밝힌 연구 결과의 공통점은 무얼까? 불평등한 사회가 빚어내는 갖가지 경험은 사회구성원들에게 생물학적으로 몸은 물론 정신과 심리에도 뿌리내려 뚜렷한 흔적을 새긴다는 것이다. 불평등의 ‘생물학적 뿌리내림’이라고 할 수 있다.기실 불평등 사회는 불가피한 필연의 산물이 아니다. 사회구성원이 선택한 체제와 정책, 즉 정치의 결과다. 우리가 다른 상상, 다른 정치적 선택을 한다면 바꿀 수 있으며 적어도 낮출 수 있다. 문제는 ‘몸과 마음에 불평등의 경험이 착근된 사람들에게 어떻게 새로운 상상과 다른 정치를 선택하게 할 수 있을까’다. 바로 이 점에서도 우리는 불평등에 대한 사회구성원들의 감수성을 비롯한 심리적 측면을 더 많이 이해할 필요가 있다.이창곤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장 겸 논설위원 goni@hani.co.kr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68742.html#csidx5ac4295b8e2f431a9c8dc0a219a6203  

[2018 아시아미래포럼 관련] [왜냐면] “평등한 것이 이득이다” / 신영전

 신영전한양의대 교수·사회의학 지난주 한겨레신문사가 주최한 ‘아시아미래포럼’에서 토마 피케티 프랑스 파리경제대학 교수는 세계 상위 1%가 1980~2016년 성장의 과실을 약 27% 챙겨간 데 반해, 하위 50%는 겨우 12%를 차지하는 데 그쳤으며,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세계 상위 1%의 부 집중도는 2050년에는 약 39%로 높아질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을 제시했다. 이 불평등한 사회가 만들어낼 디스토피아의 모습은 리처드 윌킨슨 영국 노팅엄대 명예교수가 실증적인 수치로 보여주었다. 상대적으로 부유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평등의 정도가 낮은 사회일수록 그 사회에 속한 이들의 기대수명, 영아사망률, 학력수준, 자살률, 살인율, 약물중독, 수감자율, 상호신뢰도 등 대부분의 사회 지표들이 나빠진다는 것이다. 이것을 미국 50개 주에 적용해도 마찬가지 결과를 보였다. 왜 그럴까? 미국 하버드대학 이치로 가와치 교수는 소득불평등이 국민의 건강과 같은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경로를 다음과 같은 세가지로 요약한다. 첫째는 소득 불평등이 인적 자본에 대한 저투자를 야기하고, 둘째는 사회조직을 분열시키고 셋째, 이로 인해 생겨난 좌절과 같은 직접적인 심리학적 통로를 통해 좋지 못한 건강상태를 야기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렇게 암울한, 불평등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피케티 교수를 비롯하여 이 회의에 참석한 국내외 학자들의 대답은 서로 조금씩 다른 듯하지만 결국 한가지였다. 이른바 우리 공동체의 정치구조를 역동적으로 바꾸어내는 것이다. 캐시 조 마틴 미국 보스턴대 교수는 노동세력을 포함한 시민사회의 참여와 연대를 통한 광범위한 정치세력화와 투명성과 신뢰에 기반을 둔 정치적 리더십의 구축을 통해서만 그것이 가능하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여전히 의문은 남는다. 그러한 정치적 역동성을 어떻게 만들어낼 것인가? 무엇보다 이러한 변화를 만들어낼, 실증적이고 견고한 과학적 ‘사실’은 무엇일까? 아마도 그것은 추상적 논리가 아니라 실제로 건강하고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낸 나라들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세계화의 광풍 속에서 여러 가지 도전을 맞이하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민주주의 수준, 남녀평등 수준, 인간개발지수, 국가별 경쟁력, 국민들 스스로 행복하다고 답하는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 엄마들이 가장 살기 좋은 나라, 무엇보다 잘살면서도 불평등이 가장 낮은 나라 바로 그런 나라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곳은 유럽의 북쪽이다. 그들의 행복 비결을 찾기 위해 만났던 그곳 학자들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우리가 평등을 추구하는 것은 그것이 우리에게 이득”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평등이란 인간의 존엄을 위해 무엇을 희생하고라도 달성해야 할 ‘당위’로만 여겼던 내게 그들의 대답은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이었다. 그래, 맞다. “평등한 것이 이득이다.” 1000원 내고 페트병에 든 물을 각자 사 먹는 것보다 500원을 세금으로 내고 어디서나 안전한 식수를 마실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좋고, 혼자 내 노후를 준비하느니 함께 준비하는 것이 좋다. 또 아이도 나 혼자 키우는 것보다 사회가 함께 키우는 것이 나와 아이에게 모두 “좋을 뿐만 아니라 이득”임에 틀림없다. 얼마 전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도 비슷한 말을 했다. “복지는 공구(공동구매)”라고. 결론적으로 북유럽 국가들은 평등한 사회가 그들에게 이득이었기에 그것을 선택했고, 어느 나라보다 평등한 사회를 만듦으로써 마침내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국민들이 건강하고 행복한 나라가 된 것이다. 늘 비결은 이렇게 간단한 진실 속에 있는 법이다. 어느새 오이시디 국가 중 가장 불평등한 국가로 치닫고 있는 한국 사회에 “평등한 것이 이득이다”라는 말이야말로 우리 사회가 가장 절박하게 받아들여야 할 진실인 셈이다. 아니, 여기에서 더 나아가, 미국 인권운동가 오드리 로드의 말처럼 우리의 미래 생존 여부는 우리가 얼마나 평등해질 수 있는가에 달려 있을지도 모른다.한겨레에서 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because/868932.html#csidxdb1ce71cccbb576a99e3d3a51d6df75  

[2018 아시아미래포럼 관련] 박용만, ‘기업활동 규제 완화-취약계층 직접 분배’ 빅딜 제안

대한상의 회장, 전국회장단회의서 제시 “생명·안전 등 빼곤 규제 없애고 세수 초과분 소득 낮은 곳 보전” 최저임금보다 출산 대폭 지원 찬성 부자증세 긍정적…법인세 인상 반대 기업의 복지국가 강화안으로 주목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이 5일 광주에서 열린 전국 상의 회장단 회의에 앞서 출입기자들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사진 대한상의 제공경제단체 대표 격인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가 규제개혁과 (정부의) 직접적 분배 확대를 핵심과제로 제시하고, 분배 재원 마련을 위한 부자 증세에도 전향적인 태도를 밝혔다. 개혁·진보 진영이 요구하는 분배 확대 및 부자 증세와 보수·경제계가 요구해온 규제개혁(완화)을 동시에 추진하는 이른바 ‘빅딜’식 접근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은 5일 광주에서 열린 ‘2018 전국 상공회의소 회장단 회의’에서 “우리가 할 일은 중장기 미래를 예견하고 올바른 선택에 나설 수 있게 국가역량을 집중하는 것”이라며 “이를 위해 10~20년 중장기 시계의 경제 밑그림을 그리고, 어젠다를 세워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국 상의 회장단 회의는 1년에 한번씩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망라한 18만 상공인 대표가 한자리에 모이는 행사다. 박 회장은 “가장 중요한 것은 혁신기반의 재구축”이라며 “누구나 자유롭게 혁신활동을 벌일 수 있도록 생명·안전 등의 필수규제를 제외한 나머지는 원칙적으로 폐지하는 과감한 규제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혁신과 변화의 과정에서 소외되는 이들에 대한 배려도 잊지 않아야 한다”며 “분배 방법은 민간의 비용부담을 높이기보다는 직접적인 분배를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많다. 사회안전망 확충과 재원 조달에 대한 고민과 공론화를 거쳐 큰 그림을 갖고 분배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회장이 제시한 민간의 비용부담을 높이는 분배방식은 중소기업과 자영업자가 반발하는 ‘최저임금 인상’ 정책을 의미한다. 또 직접적인 분배는 이날 여야정 상설협의체가 합의한 저출산 해결을 위한 예산 확대와 같은 방식을 뜻한다. 박 회장은 이날 회의에 앞서 연 출입기자 간담회에서 “예상보다 더 걷힌 세수를 이용해 소득이 낮은 곳을 보전하는 게 직접적 분배 정책”이라며 “조세를 통한 사회안전망의 취약점을 개선하는 분배정책을 하면 경기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정부의 재정확대에 찬성했다. 상의 관계자는 “내부 논의에서는 출산장려를 위해 신생아를 낳으면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매달 50만~100만원을 지원하는 획기적 방안까지 검토 대상으로 나왔다”고 말했다. 박 회장은 이날 회의에서 “미래를 위해 꼭 해야 하는 일이라면 이해관계를 떠나 외면하거나 반대하지 않고 모든 역량을 한데 모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이는 분배를 위한 재원 조달 방안으로 부유층에 대한 소득세 증세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는 상의의 입장과 관련된 것으로 해석된다. 상의 관계자는 “법인세 증세는 기업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어 곤란하지만 최상위 계층 중심의 소득세 증세는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 회장의 주장은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둘러싼 논란을 타개할 해법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한겨레>가 최근 주최한 아시아미래포럼에 참석한 캐시 조 마틴 미국 보스턴대 교수는 “덴마크의 경우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지속성장을 견인하는 포용전략 차원에서 사용자를 대표하는 경제단체가 생산·분배 구조 쇄신을 위해 힘을 합쳤다”며 “덴마크 중도우파 정부의 긴축정책에 대해 사용자단체가 복지국가 강화를 요구하면서 사회적 타협에 기초한 불평등 극복 포용전략이 성공할 수 있었다”고 소개했다. 곽정수 선임기자 jskwak@hani.co.kr한겨레에서 보기: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868898.html#csidxd3710dc5051b041a2a5f486c1218b3b  

[토요판 커버스토리] 피케티 “불평등에 눈감은 정치, 그 블랙박스 열고 싶어”

 [토요판] 커버스토리‘불평등 연구자’ 토마 피케티1971년생인 토마 피케티 프랑스 파리경제대 교수는 스스로를 ‘포스트냉전세대’라 부른다. 포스트냉전세대인 자신이야말로 오히려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자유롭게 지적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게 그의 강한 믿음이다. 피케티 교수가 지난달 30일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며 다양한 표정을 짓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 300년 자본주의 역사에 담긴 불평등의 동학을 담아낸 저서 <21세기 자본>으로 파장을 불러일으킨 토마 피케티 프랑스 파리경제대 교수가 4년만에 한국을 다시 찾았다. 그가 새로 던진 화두는 ‘불평등의 정치’였다. 지난 30일 <한겨레>는 그를 만나 불평등에 대한 해법을 물었다. ‘90% 팩트(사실)와 10% 정치’. 5년 전인 2013년 <21세기 자본>을 출간해 단숨에 ‘스타 경제학자’라는 별명을 얻은 토마 피케티 프랑스 파리경제대 교수는 이 책의 내용을 크게 둘로 나눠 설명하곤 했다. 전체 분량의 90%는 300년 동안 자본주의가 걸어온 실제 역사이고, 마지막 10% 분량에 소개된 정책 제안은 독자가 판단할 몫이라고. 자신은 오로지 데이터에 충실하게 불평등 현실을 드러내는 쪽에만 힘을 실었다는 뜻이 담겼다. 그로부터 5년. 피케티의 발걸음은 ‘10%’ 쪽으로 성큼 옮겨가 있는 듯 보인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파리경제대의 세계불평등연구소에서 지난해 연말 펴낸 <세계 불평등 보고서 2018> 작업을 주도적으로 이끌긴 했으나, 개인적 관심사는 정치 영역으로 무게중심을 이동한 지 오래다. 그는 1948~2017년 프랑스·영국·미국의 선거 데이터를 분석한 ‘브라만 좌파 대 상인 우파’라는 논문을 올해 초 발표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불평등한 현실 자체보다는, 불평등을 만들어내고 불평등을 해소하지 못하게끔 가로막는 정치를 분석 대상으로 삼은 것이다. 현재 독일과 일본 등 7개 나라의 선거 결과를 추가로 분석하는 작업이 진행 중이다. 정치를 연구하는 경제학자. 데이터를 지속적으로 보강·확대할지언정 불평등 연구의 방법론과 분석틀은 빈틈없이 완성했다는 자부심과 자신감의 표현일까? 아니면 불평등을 해소하는 데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는 현실 정치(세력)에 대한 분노와 실망감을 반영한 것일까? 머릿속을 맴도는 궁금증을 안은 채, 2014년 9월에 이어 4년 만에 한국을 다시 찾은 피케티를 지난달 30일 만났다. 피케티는 지난달 30~31일 이틀간 한겨레신문사가 주최한 제9회 아시아미래포럼 첫날 행사에서 기조강연을 하려고 한국을 방문했다. 이날 오전 그의 기조강연 시간엔 약 600석의 행사장이 빼곡하게 들어찼고, 미처 자리를 잡지 못해 서 있는 방청객도 많았다. 인터뷰는 행사장인 서울 용산 서울드래곤시티호텔에서 기조강연과 점심식사를 마친 뒤 진행됐다. 지난달 30일 4년 만에 한국을 찾은 토마 피케티 프랑스 파리경제대 교수가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실질적인 정책 변화 없지 않나” “미안한데, 그건 묻지 말아달라.” 다소 어색한 분위기를 피하려 ‘당신 책이 엄청난 인기를 끄는 이유가 뭐라 생각하냐’며 무심코 던진 첫 질문에 피케티의 반응은 단호했다. 한국 독자들의 열띤 반응(11만부 판매)에 대한 생각을 가볍게 물어도 “4년 전에 다 했던 얘기다. 되풀이해서 말하고 싶진 않다”며 손사래를 쳤다. 그의 단호한 태도에 이해되는 구석이 없진 않다. 지난해말 기준으로 <21세기 자본>은 43개국에서 번역 출판돼 약 250만부가 판매됐다. 이렇다 보니 온갖 가십성 기사도 끊이지 않는다. 미국의 <월스트리트 저널>은 아마존 킨들버전에서 가장 많이 검색된 문장 5개가 모두 앞부분 26쪽까지에 들어 있다며 정작 사람들은 전체 분량의 단 2.4%만을 읽었을 것이라고 조롱하듯 추정하기도 했다. ―불평등 확대가 현대 자본주의에 심각한 위험이 되리란 진단이 등장한 지 10년도 훌쩍 넘었다. 요즘은 국제통화기금(IMF)이나 세계은행,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주류 성향의 국제기구들조차 불평등 문제를 진지하게 고려하라는 정책 권고를 잇달아 내놓고 있다. 불평등 문제를 바라보는 분위기가 확실히 변한 건가? “천만에! 국제노동기구(ILO)라면 모를까, 나머지 국제기구는 죄다 보수적이다. 입으로는 불평등에 관심 있다고 떠드는데, 진짜 관심이 있는 건지 의심스럽다. 실질적인 정책 변화가 없지 않나.” 피케티는 대표작 <21세기 자본>이 분배 문제를 경제학의 중심 의제로 다시 돌려놓으려는 시도라고 누누이 강조한다. 현대 주류 경제학이 분배를 경제학의 연구 대상에서 사실상 깔끔히 지워버린 현실을 강하게 비판한 것이다. 약 150년 전 출간된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에서 따온 듯한 제목을 붙인 이유도 이런 사정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43개국 250만부 팔린 ‘21세기 자본’ 분배 문제 경제학 중심의제로 올려 300년간 역사 데이터 분석 토대로 자본주의 불평등 동학 존재 밝혀내  기술혁신 과소평가 등 한계도 뚜렷 ‘불평등과 젠더 관계 외면’ 비판도 “출산율 낮으면 상속 중요성 더 커져 여럿에 줄 것 한명에게 몰아주는 셈”  프랑스·영국·미국 선거 결과 다룬 ‘브라만 좌파 대 상인 우파’ 논문 화제 “나의 관심사는 불평등 심화되는데 재분배 요구로 이어지지 않는 현실”  <21세기 자본>의 핵심은 20여 나라의 300년간의 역사적 데이터를 분석해 자본주의 내부에 불평등을 확대하는 동학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는 점이다. 피케티는 20세기의 일부 예외적인 기간을 빼면 자본수익률(r)이 경제성장률(g)을 언제나 웃돌았다는(r>g) 결론을 얻었다.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률을 웃돈다는 얘기는 자본 소유자들이 경제 전체 평균보다 더 빠른 속도로 이윤을 챙겨간다는 뜻이다. 한 나라의 부가 늘어나는 방법은 두가지다. 일을 해 벌어들인 소득을 저축하거나, 아니면 과거에 축적된 부를 불려나가거나. 분석 대상이 된 모든 나라에서 과거의 부, 물려받은 부의 비중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게 피케티의 결론이다. 불평등이 확대되는 근본 원인이자, 땀과 노력보다 핏줄과 태생이 더 중요한 세습사회의 귀환이다. <21세기 자본>이 세상에 나온 뒤 찬사와 비판이 동시에 쏟아졌다. ‘피케티 신드롬’이란 말도 등장했다. “앞으로 10년간 가장 중요한 경제학 책이 될 것”(폴 크루그먼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이라는 예견과 ‘21세기 마르크스주의자’ ‘사회주의자’ 식의 딱지 붙이기가 공존했다. 피케티의 작업에 한계가 없는 건 아니다. 전통적인 경제이론과는 달리 ‘자본’ 개념에 금융자산, 주식·채권 등을 모두 넣어 혼란을 불러일으키고 기술 발전의 의미를 과소평가하는 등 적잖은 문제점도 드러냈다. 자연스레 여러 각도에서 비판이 제기됐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2014년 ‘피케티의 오류’를 조목조목 짚는 기획기사를 내보내기도 했다.(하지만 같은 해 파이낸셜 타임스는 <21세기 자본>을 ‘올해의 책’으로 선정했다) ―학문적 엄밀성을 결여한 비난이나 오해를 제쳐놓는다면, 진짜 뼈아프다고 느낀 비판이 있었나? 있었다면 어떤 비판이었나? “특별히 뼈아픈 대목은 없었다. 책에 대한 반응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지 않나. 이제 와서 <21세기 자본>을 다시 쓴다고 해도 똑같이 쓸 거다. 물론 5년의 시간이 지났으니 새로운 나라나 이슈는 조금 추가할 수 있을 테지만.” 지난달 30일 서울 용산 서울드래곤시티호텔에서 한겨레신문사 주최로 열린 제9회 아시아미래포럼 개회식에서 토마 피케티 프랑스 파리경제대 교수가 기조강연을 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얼치기 수학’이라는 비판 피케티는 1990년대 20대 중반의 나이에 미국의 대학(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짧은 교수 생활을 했다. 2년 만에 프랑스로 돌아간 이유를, 그는 훗날 “미국 경제학의 수학적 추상성에 환멸을 느껴서”라고 밝혔다. 그의 <21세기 자본>은 복잡한 수학모델을 거의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역사적 서술에 집중했다. 그는 책 출간 뒤 한 외신 인터뷰에서 “어머니는 두꺼운 학술책을 읽지 않는데 이 책을 다 읽고 이해했다”며 “복잡한 수학모델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소득과 부, 불평등과 자본이라는 주제를 쉽게 전달할 수 있다는 증거”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올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로머 미국 뉴욕대 교수는 2015년 한 논문에서 우리말로는 ‘얼치기 수학 흉내 내기’쯤으로 번역될 ‘mathiness’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내며 피케티를 포함한 일부 연구자들의 작업을 비판해 화제가 된 적 있다. 겉으로는 수학모델을 거부한다면서 실제로는 정확성이 떨어지는 방법론을 사용했다는 비아냥의 의미로 읽힌다. ―학부에서 수학을 전공한 당신 입장에선 상당히 불쾌할 수도 있을 법하다. “(짐짓 놀랐다는 표정을 지으며) 글쎄… 나를 겨냥한 비판은 아닌 것 같다.” 그를 향해 ‘젠더의 렌즈’가 빠져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불평등과 젠더의 관계라는 문제의식을 처음부터 빠뜨렸다는 비판이다. “‘고루한(old-fashioned) 남성 경제학자’일 뿐”이란 혹평을 쏟아내는 일부 페미니즘 경제학자들도 있다. ―억울한가? 지나친 비판이라는 생각이 드나? “불평등 연구의 방향이 젠더 문제를 포괄하는 쪽으로 가야 하는 건 분명 맞다. 다만 내 책(<21세기 자본>)엔 제약이 많았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다. 내 책 분량이 1만페이지라도 된다면 모를까. 겨우 1천페이지(프랑스어판) 정도인데….” ―어떤 제약을 말하는 건가? 자료상의 제약이라는 뜻인가? “역사적으로 여성이 재산에 대한 권리를 가지게 된 건 얼마 안 된다. 19세기 프랑스에서 여성은 재산을 소유한 적이 없다. 앞으로는 연구가 진척될 수 있겠으나, 내 책에서 던지는 질문은 ‘19세기에서 21세기까지 부와 재산의 집중도가 어떻게 달라지는가’이다. 젠더와 관련된 불평등은 주된 관심사가 아니었다. 양해해달라.” ―한국은 물론이고 성평등 정도가 높다는 미국이나 유럽에서조차 ‘유리천장’이란 말이 있을 정도다. 여성의 잠재력을 적극 활용한다면 성장 능력을 더 키울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당신의 용어를 빌려 말한다면, 경제성장률(g)이 높아져 결과적으로 자본수익률(r)과 경제성장률의 격차가 줄어들면 불평등이 완화될 수 있다는 결론도 가능할 텐데? “성별 불평등은 전세계적 현상이다. 하지만 이런 얘기는 할 수 있다.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가 늘어난다 치자. 성장률이 일시적으로 오를지는 모르나 영구적이지는 않다. 그보다는 출산율 저하가 더 심각한 이슈다. 출산율이 낮다는 얘기는 유산 상속의 중요성이 더 커진다는 뜻이다. 여럿에게 나눠줘 분산할 걸 한 사람에게 몰아주는 셈이니까.”  부모는 ‘68혁명’ 때 극좌 정치조직 활동 최근 그의 최대 관심사는 단연 불평등에 맞서는 정치적 대응이다. 왜 민주주의는 불평등 해소에 실패했는가, 불평등이 확대되는데도 왜 강력한 재분배와 복지국가 요구가 유권자들 사이에 불붙지 못하는가 등. 피케티는 인터뷰 당일 오전 아시아미래포럼에서 한 ‘불평등: 현재와 미래’라는 제목의 기조강연에서도 이와 관련한 최근의 연구 결과를 상세하게 소개했다. 세계화의 진전과 교육의 확대로 유권자 구성이 점차 변화하면서 서구 주요 나라의 정치지형이 고학력 엘리트(브라만 좌파) 대 고소득·고자산(상인 우파)의 대립구도로 점차 변했다는 게 요지다. 불평등을 해소하려는 정치적 노력이 전반적으로 줄어든 배경이다. ―고학력 엘리트냐, 고소득·고자산 엘리트냐는 흥미로운 분석이다. 다만 경제적 지위에 따라 교육 기회마저 달라진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고학력 집단과 고소득·고자산 집단을 대립시키는 게 과연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지 의문도 든다. “결국은 실증의 문제다. 분석 대상을 넓혀가는 중이다. 좀더 지켜보자. 나의 주된 관심사는 불평등 심화가 재분배 요구로 이어지지 않는 분명한 현실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당신의 최근 작업은 불평등 연구라기보다 ‘불평등 정치’의 연구라는 느낌이 든다. 경제학자로서 정치 영역에 이토록 많은 관심과 에너지를 쏟는 이유가 궁금하다. “같은 얘기다. 정치를 블랙박스라 생각해봤다. 불평등이 이 정도로 심해졌는데도 왜 정치적 대응이 미온적인지 늘 궁금했다. 정치라는 블랙박스를 꼭 열어보고 싶었다.” 피케티는 현실 정치와 비교적 거리를 두지 않는 편이었다. 2007년 프랑스 대통령 선거에선 세골렌 루아얄 사회당 후보의 경제자문 일을 맡았고, 2012년엔 사회당 소속 프랑수아 올랑드 후보를 지지하는 공개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제러미 코빈이 이끄는 영국 노동당, 스페인의 좌파정당 포데모스의 정책자문단에도 그의 이름이 올라 있다. 불평등 문제에 대한 원초적 관심, 나아가 현실 정치에 대한 ‘애정’을 그의 개인사와 묶어서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피케티의 아버지는 기술자, 어머니는 초등학교 교사였다. 두 사람은 68혁명 당시 ‘노동자 투쟁’(Lutte Ouvri?re)이란 이름의 극좌 트로츠키주의 정치조직에서 함께 활동했다. 하지만 피케티는 “(불평등 연구는) 이념적 신념이 아니라 순수한 학문적 동기에서 출발했다”고 여러차례 강조해왔다. 흥미로운 점은 피케티가 과거 영국 <가디언>과 한 인터뷰에서 ‘글로벌 자산세’와 관련한 질문에 “나는 시장의 힘을 믿는 시장주의자”라고 말하면서 “(글로벌 자산세 도입은) 자본주의 체제에 매우 실질적 변화, 곧 영구혁명”이라고 말한 점이다. ‘영구혁명’은 러시아혁명 당시 활동가 레온 트로츠키의 핵심 정치이론이자 그의 대표작 이름이다. 가로축은 전세계 인구를 소득 수준에 따라 100개의 집단으로 나눈 것을, 세로축은 각 집단의 평균적인 소득증가율을 뜻한다. 신흥국들의 부상으로 전세계 중하위 집단의 증가율은 높았으나, 주로 미국과 서유럽의 중하위 계층이 포함된 전세계 중상층의 증가율은 낮았다. 전체 윤곽이 코끼리 모양을 띤다 하여 ‘코끼리곡선’이라 이름 붙였다.“글로벌 금융등록제, 충분히 가능” ―문제는 ‘어떻게’다. 불평등에 맞서는 가장 중요한 해법은 뭔가? “결국 세금이다. 소득세 누진율을 더 올려야 한다. 미국이 연방 소득세 최고세율을 91%까지 올렸을 때도 미국 자본주의는 붕괴하지 않았다. 누진성이 지금보다 훨씬 높았던 1950~70년대 시기에 생산성 증가율이 지금보다 오히려 더 높았다.” ―<세계 불평등 보고서 2018>에서 말한 ‘글로벌 금융등록제’(financial register)가 현실에서 제대로 작동 가능하다고 보나? “획득한 정보를 남용하지 않으리라는 신뢰만 사람들에게 확실하게 심어준다면 충분히 잘 작동할 수 있다고 본다. 개별 국가의 행정체계랑 다를 게 하나도 없다.” 피케티는 전세계 소수의 최상위 계층이 보유한 자산에 물리는 ‘글로벌 자산세’의 기초를 닦기 위해 금융자산의 소유권을 빠짐없이 기록하는 ‘글로벌 금융등록제’ 도입을 주장하고 나섰다. 토지와 부동산처럼 금융자산에 대해서도 일종의 ‘등기’ 제도를 도입해 재산 도피와 세금 탈루를 원천적으로 차단하자는 얘기다. 전세계 조세회피처에 숨겨진 자산이 세계 총생산의 10%를 넘는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글로벌 차원의 탈세가 각국 정부한테서 약 3500억유로(450조원) 규모의 조세수입을 부당하게 앗아간다는 보고서도 나왔다. 피케티는 현재 대부분 나라에 존재하는 증권예탁기관의 역할을 강화한다면 글로벌 금융등록제가 원활하게 기능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대부분 나라에서 증권예탁기관은 민간기관이라 정보 제공을 강제하는 데 어려움이 있지 않나? 또 다른 문제도 있다. 대부분의 은닉 자산이 서류상 회사에 등록돼 있다. 형식상의 주인과 실제 소유주가 다른 경우도 많다. 한계가 분명하다는 반론도 있는데? “기술적으로 전혀 복잡하지 않다. 반대 주장은 이데올로기의 문제일 뿐이다. 글로벌 등록제 도입이 반갑지 않은 사람들의 목소리일 뿐이다.”  “결국은 세금…누진세율 더 높여야” “소득세 91%까지 올렸을 때도 미국 자본주의 붕괴하지 않았다” 금융자산에도 ‘등기’제도 도입 주장  한국사회 불평등 대책 조언은 교육 접근성 확대와 과세 투명성 “최근 한반도 화해 분위기 놀라워 냉전 벗어나 불평등 논의할 적기”  “드러난 문제만 제대로 고친다면 세상은 더 나은 방향 갈 수 있다” “어느 선까지 불평등 수용할지 결정하는 건 결국 정치의 몫”  피케티한테선 경제 논리가 사회의 운명을 좌우한다는, 말하자면 ‘경제 결정론’과는 확실하게 선을 그으려는 분위기가 강하게 느껴졌다. 그는 20세기 동안 일시적으로 불평등이 완화됐던 조건은 전쟁, 혁명, 공황 등 세가지였다고 말하면서 “독특한 환경”이란 표현을 썼다. 하지만 역시 그의 입에서 나온 얘기의 끝은 ‘정치’였다. “전쟁이 불평등을 완화한 게 결코 아니다. 전쟁이 정치구조를 변화시켰을 뿐이다.” ―불평등과 맞서는 일은 한국 사회의 최대 과제다. 불평등 해소 대책과 관련해 한국 사회에 조언을 한다면? “과세 등 정책 전반의 투명성을 높이고 교육 접근성을 확대하라는 것, 두가지다. 교육 분야에서 더 많은 공공재를 제공해야 한다.” ―한국에서도 불평등, 특히 부동산 가격 급등에 따른 젊은 세대의 불만이 높다. 해법이 뭘까?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많은 나라에서 공통적으로 벌어지는 현상이다. 무엇보다 조세 체계가 젊은 세대에게 우호적이지 않은 것 같다. 사회의 소중한 자원들이 젊은 세대로 원활하게 흘러들도록 조세 체계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피케티는 인터뷰 전날인 지난달 29일 저녁 아시아미래포럼 준비위원회가 마련한 환영만찬에서 한국 사회에 인상적인 메시지를 전했다. 그는 인사말을 통해 “4년 전 한국에 왔을 땐 정치적 긴장감 같은 게 느껴졌고 냉전적 사고에서 내 책에 대한 공격도 있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2014년 9월 <21세기 자본> 국내 번역본 출간을 기념해 방한한 바 있다. 이어 그는 “최근의 한반도 화해 분위기가 놀랍고 매우 감동적”이라며 “지금이야말로 한국이 냉전에서 벗어나 불평등 문제를 진지하게 논의할 적기”라고 말했다.  ‘포스트냉전세대’라는 자의식 어느덧 대화는 끝자락에 이르렀다. <21세기 자본>의 첫 구절은 1789년 프랑스혁명 인권선언 제1조에서 끌어온 문구다. ‘사회적 차별은 오직 공익에 바탕을 둘 때만 가능하다.’ 인권선언 제1조의 이 문구 앞에는 ‘모든 사람은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태어났다’는 문장이 있다. ―인권선언 제1조 문구 일부를 <21세기 자본>의 첫 구절에 담은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 같다. 그런가? “사람들이 평등에 대한 기대를 품고 있다는 메시지를 꼭 전하고 싶었다고나 할까. 인권선언 제1조는 사실 두 문장으로 나뉜다. 첫째 문구에서 평등한 권리를 말하면서, 둘째 문구는 특정 상황에선 불평등이 존재할 수 있다는 뜻을 담고 있다. 200년도 훨씬 전에 나온 글이지만, 여러 의미에서 제1조는 매우 흥미롭다.” ―정확히 무엇이 흥미로운가? “현대사회뿐 아니라 모든 사회에서 어느 정도의 불평등은 수용하는 분위기였다고 생각한다. 단, 공동의 이해가 있다는 전제에서 말이다. 시대에 따라 불평등은 경제가 아니라 정치적·이데올로기적 이유에 따라 늘어나기도 하고 줄어들기도 했다. 과연 어느 선까지 수용 가능할까, 그 선을 결정하는 게 중요하다. 내 연구작업의 의미도 여기에 있다.” 지난달 30일 토마 피케티 프랑스 파리경제대 교수가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1971년생인 피케티는 스스로를 ‘포스트냉전세대’라 부른다. 1989년 18살의 청년 피케티가 파리고등사범학교에 들어간 직후 냉전의 상징이던 베를린 장벽이 한순간에 무너졌다. 청년 피케티는 지체없이 혼돈의 동유럽을 마음껏 여행하며 사회주의의 음울한 현실을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봤다. 젊은 날의 이런 경험 때문일까. 피케티는 그간 기회가 있을 때마다 포스트냉전세대인 자신이야말로 오히려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자유롭게 지적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고 거듭 강조해왔다. 흑백 논리만을 강요하는 냉전의 잣대를 들이대지 말고 오로지 ‘자본주의의 문제’로 불평등을 진지하게 바라보자는 얘기다. 자신에게 덧씌워진 ‘색깔론’을 벗어던지고 싶은 바람도 분명 있었을 터다. ―내년이면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지 30년이다. 30년 사이 불평등은 훨씬 확대됐다. 줄어들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자본주의 사회의 냉혹한 현실에 20년 가까이 매달려온 학자로서, 만일 30년 전 동유럽의 사회주의 현실을 둘러보던 10대 후반의 청년으로 돌아간다면 어떤 생각이 들 것 같나? “(한참을 생각하다가) 글쎄… 30년 전 내가 자본주의에 정확히 무엇을 기대했는지, 어떤 것을 예상했는지 모르겠다. 뭐라 답하기 힘든 질문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있다. 결코 현재가 실망스럽거나 아쉽거나 하지는 않다. 그동안 세상에 대해 많이 배웠다. 축적한 지식이 이롭게 사용되도록 노력하고 싶다. 연구자로서 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성을 계속 강조할 뿐이다.”  “내가 비관주의자라고?” ―이제껏 당신이 비관주의자일 거라고 짐작해왔다. 오전 기조강연에서 자신을 ‘합리적 낙관주의자’라 말해 조금 놀랐다. “내가 비관주의자라고? 전혀 아니다. 완전한 오해다.” ―눈앞의 불평등에 분노하고 불평등을 줄이려는 노력이 부족한 현실에 비판적이면서도 미래를 낙관하는 근거가 뭔가 궁금하다. “글쎄… 2세기 전과 현재를 비교해봐라. 세상은 더 좋아졌다. 식민주의도, 노예제도도, 공산주의도 없지 않나. 드러난 문제를 고친다면 세상은 좀더 나은 방향으로 갈 수 있다. 난 이 얘기를 하고 싶을 뿐이다. 자유무역이나 자본 이동도 그 자체로선 나쁜 게 아니다. 재분배라는 보다 큰 시각에서 바라보자는 얘기다. 자유무역이나 자본 이동 하나에만 매달리는 건 문제다. 시각을 바꿔야 지속 가능하고 평등한 발전이 가능하다.” 피케티는 오전 기조강연을 마치면서 “다음에 만날 땐 지금과는 다른 정치지형이라면 좋겠다”고 스치듯 말했다. 불평등을 해소하려는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노력이 턱없이 부족한 오늘날의 전세계 정치지형 일반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낸 표현으로 들렸다. 불평등이라는 어둡고 칙칙한 주제에 매달린 인터뷰를 끝내면서도 그가 내뱉는 이야기의 색조는 여전히 곱고 밝았다. 얼굴 가득한, 다소 시큰둥한 표정과 낙관적 메시지를 분주히 전하는 빠른 입놀림. 어울릴 듯 말 듯 묘한 대조였다. 절망스러운 현재를 끝낼 희망의 끈을 끝까지 놓지 말아야 한다는 듯이. 최우성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morgen@hani.co.kr한겨레에서 보기: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868649.html#csidx75191cdc9566813aeae984cb370db7a  

[윌킨슨 교수 부부와 건보공단 이사장 대담] 불평등은 ‘대기오염’과 비슷...상·하위계층에 다 해로워

김용익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오른쪽부터), 리처드 윌킨슨 영국 노팅엄대 명예교수, 케이트 피킷 요크대 교수가 지난 1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대담을 나누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불평등은 사회를 어떻게 병들게 할까. 불평등한 사회일수록 기대수명이 낮아지고, 우울증과 정신질환 유병률이 높아진다. 감옥 수감률과 교도관 등 감시노동자의 비중이 높다. 불평등한 사회에 사는 부유층일수록 자기도취에 빠져 과시적인 소비행태를 보이고, 빈곤층은 좌절감과 절망감이 커져서 사회를 더욱 증오한다. 이는 사회통합과 사회의 계층 간 이동성을 저해한다. 리처드 윌킨슨 영국 노팅엄대 명예교수(사회역학)의 이러한 주장은 세계에 큰 울림을 줬다. 그와 부인 케이트 피킷 요크대 교수(공공보건역학)가 함께 펴낸 <더 스피릿 레벨>, <더 이너 레벨> 등의 저서는 건강불평등 문제를 다룬 역작이다. 윌킨슨 교수 부부는 한겨레신문사가 주최한 ‘9회 아시아미래포럼’ 참석차 방한했다. 지난 1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김용익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이 윌킨슨 교수 부부를 만나 ‘불평등’을 주제로 대담했다. 영국에서 보건학을 공부하고 서울대 의과대 교수를 지낸 김용익 이사장은 유학 당시 경험했던 마거릿 대처 정부의 탄광노조 탄압, 대표적인 건강불평등 보고서로 꼽히는 ‘블랙리포트’, 영국의 국민보건서비스(NHS) 등 다양한 주제로 대화를 이끌어갔다. 학문적인 동지이자 “아내는 요리하는 걸 좋아하고 남편은 먹는 걸 좋아하는” 부부인 윌킨슨과 피킷 교수는 사이좋게 나눠서 답변을 했다. 대담은 건보공단 주최로 열린 윌킨슨 교수의 강연회에 앞서 1시간30분가량 진행됐다.    김용익(이하 김) 한국에서는 오랫동안 ‘불평등’이 금기어였다. 독재정권은 한국 사회가 얼마나 불평등한지 이야기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 불평등 문제는 조금 낯선 주제다. 왜 우리가 불평등을 생각하고 토론해야 하는가? 케이트 피킷(이하 피킷) 영국에서도 굉장히 오랜 기간 불평등이 정치적 의제에 포함되지 못했다. 1990년대 토니 블레어 총리의 노동당 집권 체제에서도 ‘빈곤’은 이야기했지만 ‘불평등’은 거의 언급되지 않았다. 리처드 윌킨슨(이하 윌킨슨) 불평등은 오랫동안 ‘도덕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되었다. 토니 블레어는 불평등이 1930년대의 일이라고 치부했다. 1990년대에는 하위계층도 텔레비전을 소유하고, 중앙난방이 되는 집에서 살았기 때문에 ‘불평등은 우리에게 더 이상 해당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우리가 보기에, 사람들이 느끼는 ‘사회적 지위’는 불평등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변수다. 지배·종속 관계가 심리적·사회적으로 불평등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중요하게 살펴야 한다. 김 한국에서는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부터 불평등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지금은 소득 상위 10%가 전체 부의 절반을 점유하는 등 한국 사회를 짓누르는 심각한 문제가 되었다. 당신은 불평등이 취약계층은 물론이고 중산층이나 상위계층에도 해롭다고 주장한다. 윌킨슨 하위 10%뿐만 아니라 상위 10%도 다 영향을 받는다. 하위계층으로 내려갈수록 영향이 더 크지만, 그렇다고 상위계층이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보다 평등한 사회라면 (중산층이거나 부유층인) 내 수명이 더 길어지고, 자녀의 성취도가 더 올라갈 수 있다. 폭력의 피해도 줄어든다. 피킷 미국 하버드대의 한 동료는 “불평등은 마치 사회적인 오염 같다”고 말했다. 대기오염과 비슷하다. 부유층이 근사한 집과 차를 가졌다 하더라도, 바깥에 나가면 대기오염 물질을 흡수할 수밖에 없다. 불평등한 사회도 마찬가지다. 철조망을 치고 격리된 좋은 공간에 살면서 아이를 좋은 학교에 보낼 수는 있겠지만, 결국 (불평등의) 영향을 피할 수는 없다. 김 불평등한 사회가 일으키는 병적인 사회현상으로는 어떤 것들이 있나? 피킷 불평등한 사회일수록 사회 격차가 더 커진다. 그 결과 사회관계가 저하된다. 이런 사회에서는 시민 참여도가 낮아져 투표율이 떨어지고 조직 참여 수준이 낮아지는 현상이 나타난다. 노인이나 장애인 등 타인에 대한 배려가 줄어들고, 아이들 사이에 왕따가 늘어난다. 상호존중이 없기 때문에 폭력 성향도 증가한다.  리처드 윌킨슨 영국 노팅엄대 명예교수(사회역학). 신소영 기자 윌킨슨 선진국에서는 민주주의의 문제로 나타나지만, 멕시코나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불평등이 심각한 나라에서는 심지어 (국민들이) 서로를 두려워하게 된다. 집에 방범창과 방범문을 설치하고, 교도관·경찰 등 감시 노동자가 증가한다. 하위계층에서는 사망률이 높아지거나 암이나 호흡기질환 발병률이 높아지는 문제가 함께 일어난다. 김 <더 이너 레벨> 등 당신의 저서를 보면, 불평등이 건강을 나쁘게 하는 1차적인 문제만이 아니라 사회 통합과 사회 계층 이동성 등을 저해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런 현상이 얼마나 심각하다고 보는가? 피킷 불평등할수록 사회 이동성이 둔화되는 상관관계는 뚜렷하게 나타난다. 실증연구 결과를 보면, ‘미국은 기회의 땅이다’ ‘미국에 가서 아메리칸드림을 달성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이제는 덴마크나 노르웨이에 가야 통한다고 우리는 이야기한다(웃음). 김 한국에서도 1950~60년대에는 노력하면 계층 상승을 할 수 있다는 꿈이 있었는데, 경제가 발전해 국가 전체의 소득이 늘어난 지금은 오히려 자신이 속한 계층을 벗어날 수 없는 모순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윌킨슨 영국에서도 소득 격차가 확대되면서 사회 이동성이 현저히 감소했다. 이제는 ‘내가 뭘 했느냐’보다는 ‘부모의 소득’이 결국 나를 결정짓는다.   논의는 자연스럽게 불평등이 경제에 끼치는 영향으로 넘어갔다. 윌킨슨 교수는 “불평등이 결국 경제성장도 저해한다”며 “불평등한 국가일수록 특허 출원이 줄어들고 교육 수준이 저하하면서 사람들이 덜 창의적, 덜 혁신적이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사회 내부의 신뢰도가 높고 폭력성이 낮은 국가일수록 기업이 경영을 하기도 더 수월하다”고 덧붙였다. 김용익 이사장은 “굉장히 중요한 지적”이라며 “한국에서도 최근 ‘포용적인 사회라야 경제가 발전할 수 있다’는 논리가 등장했다”고 소개했다.   김 그렇다면 좀 더 평등한 사회로 가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피킷 한가지 답은 없다. 다차원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 크게 두가지를 지적하고 싶다. 첫째, 누진세 도입과 같은 재분배의 문제다. 보다 강력한 복지시스템을 마련하는 게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다. 둘째, 세전소득에 대한 부분인데 경제민주주의를 확립해야 한다. 노동조합을 결속력 있게 만들고, 임원한테 가는 보너스 비중을 낮춘다거나 하는 등의 방식이 가능하다. 윌킨슨 불평등을 조금 억누를 수 있었던 것은 다양한 사회운동의 힘이었다. 스웨덴을 예로 들자면, 사민당이 40년간 장기 집권하면서 불평등이 상당히 해소되었다. 무엇보다 민주주의라는 개념이 경제까지 확대되어야 한다. 유럽의 많은 나라에서는 기업 이사진에 노동자들이 대표성을 갖고 참여하게 한다. 노동자가 기업의 주인이 되어야 생산성이 향상되는 것이 수치로도 확인된다. 최근 불평등 문제에 새롭게 접근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기후변화 때문이다. 폭염, 홍수 등의 문제가 사회 전체를 파괴하고 있다. 수십만명이 숨졌다. 보다 평등한 사회일수록 기후변화와 같은 사회문제에 대해 행동에 더 나선다는 연구 보고도 있다.  김용익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 신소영 기자 김 이제 건강·보건의료 문제로 넘어가서, 건강 형평성을 위한 영국의 노력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듣고 싶다. 참고로, 한국은 영국과 달리 사회보험 방식으로 건강보장을 하고 있다. 하지만 안정된 고용상태를 전제로 하는 사회보험 제도의 특성상, 국민연금만 해도 여전히 많은 국민이 사각지대에 놓이는 등 문제가 생기는 측면이 있다. 피킷 우리는 영국의 국민보건서비스를 굉장히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보편적이고 무상으로 제공되는 건강보험은 계속 유지되어야 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건강보험 제도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연금을 수령하지 못하는 사람, 빈곤 아동, 실직자 등을 위해 더욱 포괄적인 다른 사회제도를 도입하는 게 훨씬 더 효과적이다. 윌킨슨 실제로 빈곤층이 건강보험의 혜택을 더 많이 받는다고 하더라도, 질병 예방이나 치료 등에서 부유층과 비교하면 건강에 격차가 있을 수밖에 없다. 가난한 사람이 부유층과 같은 병을 진단받았더라도 예후가 훨씬 안 좋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김 1980년 영국에서 발간된 ‘블랙리포트’는 건강불평등 구조를 해결하려면 단순히 의료서비스뿐만 아니라 여러 사회요인을 종합적으로 봐야 한다는 깨달음을 주었다. 그 이후 영국에서는 어떤 새로운 접근이 시도되었나? 피킷 1992년과 2010년에도 비슷한 보고서가 발간되었지만, 정부는 사회적인 요인이 아니라 개인의 행동이나 습관을 바꿔야 한다는 이야기만 할 뿐 제대로 된 행동에 나서지 않았다. 윌킨슨 정부는 연구 결과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내가 40년 전에 했던 연구가 건강증진에 관한 것이었는데, 사람의 행동을 바꾸기란 정말 어렵다. ‘금연하세요’ 해서 중장년층이 금연하더라도, 청년층이 다시 흡연을 시작한다. 사회구조적인 요인을 함께 봐야 한다. 보통 현대사회에서 사람들은 의료서비스 덕분에 더 건강해진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내 건강을 좌우하는 것은 나의 사회적·경제적 삶이다. 김 세계적인 차원에서 건강불평등이 개선되었다고 판단하는가? 피킷 많은 국가에서 수명이 연장되고 영아 사망률이 많이 떨어지고 극빈 수준도 낮아졌다. 하지만 가난한 나라의 경우에 많은 건강지표가 개선되었지만, 부유한 나라는 그렇지 않다. 건강진흥 정책이 단순히 건강 부문만이 아니라 교육, 경제 등 사회 모든 부문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다양한 학문이 머리를 맞대야 하고, 국제적인 공조가 필요하다. 윌킨슨 불평등을 해소하면 건강이 증진될 것이라고 둘의 상관관계만 흔히 생각하기 쉽지만, 불평등이 해소되면 학업성취도가 올라가고 감옥 수감률이 낮아지며 폭력이 낮아지고 사회의 응집성은 더 높아진다. 단순히 둘만의 상관관계가 아니다.  케이트 피킷 요크대 교수(보건학). 신소영 기자  윌킨슨과 피킷 교수의 한국 첫 방문 인상은 어땠을까. 윌킨슨 교수는 최근 국제구호기구 옥스팜이 157개국의 불평등 해소 노력을 평가한 보고서를 예로 들면서 “한국은 최근 가장 긍정적 진전이 있었던 국가로 꼽혔다”며 높이 평가했다. 피킷 교수는 “한국은 현재 중요한 순간에 있다. 진보적인 정책을 펼 수 있는 지금, 최대한 많은 변화를 끌어내야 한다”며 불평등 해소를 위한 정부의 지속적인 노력을 당부했다.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http://www.hani.co.kr/arti/society/health/868726.html#csidxa30c7f401e1e1bfa9e927f59d9d6cf0 

[2018 아시아미래포럼] “자치분권에 근거한 균형발전 전략이 포용성장”

【2018 아시아미래포럼】 포용성장과 지역순환경제“협동조합 등 지역민 주도 사업 육성지역주민에게 혜택 돌아가게 해야”“지역, 대기업 투자유지 보다자체적 순환경제 조성 필요”평생학습-사회적금융 지역기금 등지자체 지역순환경제 모델 공개도3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서울드래곤시티호텔에서 한겨레신문사 주최로 열린 제9회 아시아미래포럼 세션4 ‘포용성장과 지역순환경제’ 참석자들이 토론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2018 아시아미래포럼 이틀째인 31일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과 전국 사회연대경제 지방정부협의회(회장 정원오 성동구청장)가 공동주최한 ‘포용성장과 지역순환경제’ 세션에서는 수도권 집중 및 거점산업 위축으로 ‘지역소멸론’이 나오는 상황에서, 지역이 공존과 상생의 자립적 성장 기반을 마련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김용기 아주대 교수(경영학)는 발제에서 “그동안 지역은 대기업의 투자 유치에 주력했으나 지역내 연관산업이 없어 한계가 있었고 수익을 내부화하는 데 어려움이 컸다”며 “지역 내 중소기업의 진화와 혁신을 이뤄가는 ‘지역순환경제’적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밝혔다.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지역불균형 실태에 대한 데이터 수집과 분석 △지역의 혁신과 고용 거버넌스 구축 △지역 내 포용적 금융 모델 확충 노력을 지방정부가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경수 전주시 도시재생현장지원센터장은 “인구가 감소하고 자원이 한계를 노출하는 속에서 과거처럼 돈을 벌어와 필요한 것을 산다는 ‘화폐적 발전모델’은 수명을 다했다”며 “선택, 집중, 경쟁력의 ‘화페적 모델’에서 벗어나 순환, 자립, 분산으로 지역발전이 나아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관계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사회적경제는 지역의 생산과 소비를 연결하고 일자리도 만들어 자립을 가능케 한다”며 “지방정부가 지역에 드나든 자원을 통합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지역경제순환 지표를 활용하고, 정부 부처가 따로따로 진행하는 지역 지원사업을 융합해 내도록 중간지원조직을 혁신해야 하다”고 말했다. 홍사흠 국토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지역산업의 성장 과실이 특정 지역에 집중되고, 불평등 심화에 따라 사는 공간의 분리도 일어나고 있다며 지역 간 격차뿐 아니라 지역 내 불균형도 세분해서 살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협동조합 등 지역민 주도의 사업을 육성하고 이를 지역의 공유자산화해 혜택이 지역주민에게 돌아갈 수 있는 지역경제와 산업 생태계를 조성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민형배 청와대 자치발전비서관은 특강에서 지금까지 경제정책을 중앙정부가 독점한 결과 지역 간 심각한 불균형이 초래됐다고 진단하고 “앞으로 성장기획은 지역 구성원의 민주적 협치와 자기결정권, 즉 자치분권을 근거로 수립·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자치분권에 근거한 균형발전 전략이 포용성장”이라며 “이는 중앙정부가 시혜적으로 내려주는 것이 아니라 지역이 당연한 권리로 확보하는 공적자원 배분 시스템을 확립하겠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사례 발표에서는 4개 자치단체의 지역순환경제 모델이 공개됐다. 곽상욱 오산시장은 잦은 이사로 정주성이 낮은 도시에서 교육을 통해 선순환 경제모델을 만든 사례를 발표했다. 생활권 10분 거리에서 주민이 중심이 돼 복지관, 사설학원 등 유휴공간을 활용해 학습공간(징검다리교실) 248곳을 발굴함으로써 자발적 활동가 1300여명이 나오며 평생학습 생태계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김수영 양천구청장은 제도권 금융에서 소외된 사회적 경제 기업을 위해 사회적 금융 지역기금을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내년 하반기에 조례를 제정하고 2020년부터 2억원에서 시작할 예정”이라며 “기존의 신협 등과 다른 모습으로 도움이 된다면 처음은 2억원이지만 더 늘어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승수 전주시장은 전주의 성매매 집결지 ‘선미촌’을 문화의 힘으로 ‘가장 아픈 공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간’으로 바꾼 사례를 소개했다. 건물을 사들여 공원을 만들고 성매매 여성 지원정책을 펼친 결과 지난해 성매매여성 11명이 사회로 복귀했다. 이제 성매매 공간을 둔 다른 지자체가 도시혁신 사례로 배우기 위해 찾아오는 곳이 됐다는 것이다. 채현일 영등포구청장은 소통, 협치, 혁신을 열쇳말로 숙의 민주주의를 통한 사회적 자본을 확충한 사례를 소개했다. ‘영등포 1번가’라는 소통 시스템을 통해 3개월간 4900여건의 건의를 받아 청소, 주차, 미세먼지 등 주민 생활과 밀착된 문제를 해결했다고 한다. 정건화 한신대 교수(경제학)는 “지금은 혁신적 단체장의 시대이지만 그들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시민사회의 역량 강화가 대안인데, 신뢰 및 협력으로 성공한 사례를 만들어 사회적 자본이라는 인프라를 구축하는 게 절실하다”고 말했다. 그는 “자치와 분권, 분산이 중요한 메커니즘이자 방향이란 점은 명확히 제시돼 있지만 그에 이르는 경로가 명확치 않고 이에 대한 사회적 합의도 없다” 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지역순환경제를 포용성장과 연결하는 것은 차이를 끌어안는 것이고 이는 이해관계의 갈등을 낳는다”며 “혁신과 포용이 그런 갈등을 넘어서는 것이 가능한가, 기존의 행정이 이를 해소하는 과정에서 주민 참여와 자치가 만들어지는 곳이 얼마나 되는 지도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재선 희망제작소장은 “자치분권 관련한 법제화가 국회에서 진척이 잘 안되고 있다”며 “정부 역시 시행령을 바꿔서 할 수 있는 일 조차 하지 않고 있는 미흡한 상황” 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민간영역에 대해서도 “문제를 해결하려는 민간의 절실함이 있는가 하는 것도 생각해 봐야한다”며 “전반적 방식과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논의가 필요한 시점” 이라고 말했다.  이봉현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bhlee@hani.co.kr한겨레에서 보기: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868294.html#csidxfce1aa3ac1471ed92e368e1b91212c9 

[2018 아시아미래포럼] “‘정치하는 엄마들’ 뭉쳐…참여하니 바뀌더라”

【2018 아시아미래포럼】 서울을 바꾸는 실험과 도전‘정치하는 엄마들’-스타트업 등,‘적극적 활동’ 사회변화 사례 소개“모든 개개인이 존중 받아야,모두가 행복해 질 수 있는 시대”제9회 아시아미래포럼 이틀째인 31일 오후 서울 용산구 드래곤시티호텔에서 열린 세션6 ‘전환시대 서울을 바꾸는 실험과 도전’에서 참석자들이 토론을 이어가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31일 오후 열린 2018 아시아미래포럼 ‘세션6: 전환시대 서울을 바꾸는 실험과 도전’에서는 도시에서의 삶을 바꾸기 위한 여러 변화·도전 모델을 소개하고 공유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특히 ‘당사자’와 ‘느슨한 연대’란 키워드를 두고 공감대가 형성됐다. 조경민 서울연구원 초빙연구위원은 ‘서울을 바꾸는 실험과 도전’이라는 제목의 기조발제에서 최근 4개월 동안 서울연구원이 진행해온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서울은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 고민의 궤적을 소개했다. 그는 “시민들이 주도하는 작은 전환들이 중요하기에 (석학이나 전문가들이 아닌) 도전과 변화의 당사자 91명을 만나 변화의 에너지, 변화의 장벽과 극복 방법, 미래사회 키워드 등을 알아봤다”며 “그 결과 변화의 에너지로 민주화나 통일 같은 거대담론 대신 사랑과 분노, 자각, 동료 등 감성적인 요소들을, 장벽 극복 방법으로는 ‘느슨한 연대’를 많이 얘기했다”고 설명했다. 출발부터 목표지향적인 활동이 아니라 ‘사회와 나에 대한 자각→느슨한 연대→사회적 전환’으로 이어지는 맥락이 파악되더란 설명이었다. 지난해 당사자로서의 엄마들이 꾸린 비영리단체 ‘정치하는 엄마들’의 조성실 공동대표는 ‘사회적 모성과 당사자 정치’라는 주제의 발제에서 “지난 대선 때 한 후보가 유아교육자들 모임에 나가 ‘단설유치원 설립을 자제하겠다’고 발표한 뒤 (엄마들의 반발을 사) 지지율이 5~7% 빠졌다. 이를 보며, 정치인들이 왜 이익집단이나 직능집단만 찾아다니는지 고민하게 됐고, 결국 당사자 참여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보통 비영리사회단체들은 사무국을 두고 유급 활동가들이 후원을 받아 활동하는데, 우리는 그런 인프라가 없기에 아이들 재우고 시간 되는 엄마가 성명서를 쓰다 아이가 깨면, 시간이 되는 엄마가 마저 성명서를 완성하고, 또 그다음 엄마가 성명서를 검토한 뒤 발송하는, 일종의 집단모성을 통한 이어달리기식 활동을 해오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외에 공간 공유 스타트업 스페이스클라우드 정수현 대표는 빈 공간 공유에 나선 건물주들 가운데 일부가 “권리금 장사가 아닌 자기 브랜드를 확장하는” 적극적인 공간기획자가 된 사례들을 소개했고, 도시형 플러그인(플러그를 꽂아 사용하는) 태양광시스템 보급 사업을 펼치는 이기관 마이크로발전소 대표는 “송전거리가 짧고 에너지 공정에 시민이 직접 개입하는 의미가 있는” ‘다아이와이(DIY: 스스로 만드는) 태양광’이 에너지 대전환의 실마리가 될 수 있음을 강조했다. 토론자로 나선 이유진 녹색전환연구소 연구원은 “이런 여러 의미있는 실험들이 계속되기 위해서는 재미와 서로에 대한 신뢰가 중요한 것 같다. 공간이건 온라인상 네트워크건 언론을 통해서건 이런 실험들을 도와주는 구조를 많이 만들어주고 격려하고 응원하는 게 우리 모두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김종휘 서울문화재단 대표는 “오늘 ‘느슨한 연대’ 얘기가 많이 나왔는데, ‘촘촘한 연대’의 반대말이 아니라 연대하자고 해놓고 그 안에서 위계가 잡히거나, 속박되거나 개인이 소진되는 문제들을 덮고 ‘연대가 미덕’이라고 강조했던 과거에 대한 반성으로 읽힌다”고 말했다. 좌장으로서 이날 논의를 이끈 이강오 서울연구원 초빙선임연구위원도 “이제는 모든 개개인이 존중받아야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시대다. 그런 점에서 사회와 정부가 시민들을 일반화하지 말고 모든 이들을 (특수성에 맞춰) 특별하게 대우할 수 있는 시스템을 디자인해야 하는 시대에 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외에 안현찬 서울연구원 부연구위원과 안연정 서울시 청년허브센터장도 “개인·동네의 변화가 국가·세계 차원의 변화와 함께 진행되는 ‘동시성’이란 흐름”과 “긴 호흡에서의 이런 전환들을 촉진할 방법에 대한 고민” 등을 강조했다. 이순혁 기자 hyuk@hani.co.kr한겨레에서 보기: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868293.html#csidxee69093b96a2a0a9dc1a68a808c8baa  

[2018 아시아미래포럼] “덴마크, 사용자집단이 긴축정책 맞서 복지확대 요구”

 【2018 아시아미래포럼】 ‘불평등 해소’ 전략과 노사정의 역할“저임금-나쁜 일자리 함정 빠져,저소득층 정책으로 이동할 때”“덴마크 정부, 노동자 숙련에 투자,사회적타협에 기초해 개혁 성공”“노동시장 이중구조-불평등 심화,노조, 임금격차 해소 역할 못해”한겨레신문사가 31일 오전 서울 용산구 드래곤시티호텔에서 연 제9회 아시아미래포럼 이틀째 세션1에서 ‘불평등 해소를 위한 새로운 성장전략과 노사정의 역할, 그리고 사회적 대화’를 주제로 참석자들이 토론을 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문재인 정부가 포용적 사회정책의 중심축으로 ‘혁신성장’을 표방하며 여러 제도와 정책을 기획·집행하고 있지만, 혁신성장 과실의 배분을 둘러싼 ‘분배체제’ 구축방안이 동시에 마련되지 않는다면 지금의 불평등을 오히려 더 악화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디지털·지식기반경제일수록 혁신에 따른 성장의 몫에서 승자독식이 더욱 공고화될 수 있으며, 배분구조를 공평한 방향으로 재구성해야 ‘포용적’ 혁신성장 전략이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31일 서울 용산구 서울드래곤시티호텔에서 열린 2018 아시아미래포럼 둘째날, ‘불평등 해소를 위한 새로운 성장전략과 노사정의 역할, 그리고 사회적 대화’를 주제로 진행된 제1분과세션에서 정무권 연세대 교수(글로벌행정학과)는 불평등 해소 측면에서 볼 때 포용적 혁신성장에서 주목해야 할 지점은 혁신성장의 과실을 어떻게 분배할 것인지에 있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정부가 정책과 제도를 통해 국가 자원을 동원·투입해 혁신성장을 이끌고 있지만 그 성장의 성과를 개발자 등 소수가 독점하면 불평등은 더욱 악화할 것”이라며 “혁신은 정부와 시장보다는 사회적 경제 조직 활용 등 광범위한 시민이 주도하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하고, 소득세 같은 조세 개혁을 통해” 배분구조 교정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는 한 단계 더 높은 역동적 경제사회시스템으로의 전환이 지체되거나 실패하고 있으며, ‘불평등 이중구조’로 대표되는 기존의 강고한 기득권적 사회관계 그리고 기업 간 및 노동자 간 권력관계에서 변동이 함께 일어나야 ‘진정한 포용적 성장체제’에 당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발표·토론자들은 지난 50년간의 숨가쁜 개발연대를 마감하고 불평등·양극화 심화라는 사회구조 격변을 겪고 있는 한국에서 불평등과 정면 대결하려면 어떤 사회경제적 정책이 필요하고, 노사정 주체들이 어떤 선택을 해야 할 것인지를 둘러싸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 대다수 참가자들은 “저임금과 나쁜 일자리 ‘함정’에 빠져 있고, 깊고 오래된 박탈감 속에 시장에서 상처입고 뒤처진 저임금·저소득계층을 보듬고 끌어올리는 쪽으로 경제사회 정책을 재가동하고 또 이동시켜야 한다”고 일치된 목소리를 냈다. 문성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은 “불평등 해소를 위한 정책노선으로 소득주도성장이나 최저임금 인상이 맞느냐 틀리냐는 논란을 이제 중단하고, 대-중소기업 간 불평등 관계, 청년실업, 자동차·조선·철강 등 주력산업의 위기상황 등 구체적이고 실증적인 용어로 경제·사회 지형의 전환 논쟁을 벌여야 한다”며 “우리의 과거 성장을 지탱한 원천이자 동시에 불평등을 함께 수반한 옛 지식과 지혜는 이제 의미를 상실했다. 미래를 향한 상상력을 키우고 도전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포용 성장전략에서 기업과 사용자는 무엇을 할 것인지를 탐색한 캐시 조 마틴 미국 보스턴대 교수(정치학)는 “덴마크의 경우 금융위기 이후 지속성장을 견인하는 포용전략의 경로에서 조직화된 사용자 집단이 생산 및 분배구조 쇄신에 함께 힘을 합쳐 새로운 사회개혁을 도모했다”며 “사용자는 대개 사회정책을 지지하지 않을 것이라고 여기는 건 잘못된 통념”이라고 말했다. 긴축을 지향하는 중도우파 정부의 공격에 맞서 사용자 단체가 복지국가 강화를 요구하고, 이후 외국인 투자자의 신뢰가 고취되고 노동자 숙련 형성 투자가 지속되면서 ‘사회적 타협’에 기초한 불평등 극복 포용전략이 성공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이정희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노동시장 이중구조와 불평등의 추세적 심화 속에 우리 노동조합은 임금·고용 균등화를 위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고용·임금 격차 등 노동시장 불평등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의 기업 규모별 분절이 제1의 요인”이라며 “노조가 임금 불평등을 야기했다고는 할 수는 없지만, 임금을 평준화하는 효과는 크지 않고 기업 간 임금 격차 확대를 억제하는 역할도 못 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명준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은 “지금 경제사회노동위는 노동존중사회와 불평등 해소를 의제로 설정하고 있다”며 “노동과 자본의 균형 잡힌 공존을 지향하고, 끊임없는 미세한 타협과 조정의 경로를 통해 포용사회는 실현될 수 있다”고 말했다. ‘불평등과의 싸움’이 긴급한 당면 과제로 떠오른 지금, 노동부문과 기업부문이 사회경제정책 재편에 함께 참여하는 사회적 대화 체제 구축과 과감한 결단이 더욱 요청되고 있다는 것이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한겨레에서 보기: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868292.html#csidx645061ca6b28e6e8b957f1bdfad1df0  

[2018 아시아미래포럼] ‘가구내 돌봄’ 점점 불가능…“기본적 사회서비스 시급”

 【2018 아시아미래포럼】 불평등, 삶의질 그리고 복지국가“생계비관-돌봄 부담으로 ‘최악 자살률’,현금급여 외 현물급여 확충해야”“소득성장-최저임금 인상 전부 아냐, 사회적임금 등 복지확대 함께가야”2018 아시아미래포럼 이틀째인 31일 열린 <불평등, 삶의 질 그리고 복지국가> 세션에서 이현주 보건사회연구원 소득보장정책연구실장이 발제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2018 아시아미래포럼 이틀째인 31일 오전엔 불평등한 현실을 타개할 근본적인 길이 복지국가에 있음을 다시 한번 일깨우는 자리가 마련됐다.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과 한국보건사회연구원(보사연)이 공동주관한 세션 2 ‘불평등, 삶의 질 그리고 복지국가’에서다. 첫번째 발제를 맡은 이현주 보사연 소득보장정책연구실장은 ‘국가가 경제적으로 고속 성장을 해왔음에도 국민은 왜 불행한가’라는 질문을 통해 해법을 모색했다. 세계 최악인 자살률과 관련해 이 실장은 “생계의 어려움이 원인인 경우가 많고, 장애인 가족이 있거나 부양할 노인이 있는 경우 등 높은 의료비와 돌봄에 부담을 느껴 함께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도 굉장히 많다”며 공적 복지가 취약한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짚었다. 이 때문에 빈곤율은, 시장소득이나 가처분소득 기준으로는 그리 높은 편이 아니지만, 생계유지에 꼭 필요한 의료비·교육비·주거비를 제외한 조정가처분소득으로 보면 매우 심각한 수준이 된다. 최근 불거진 사립유치원 비리 사건이 극명하게 보여주듯, 공공의 영역을 민간이 주도하다 보니 이용자는 ‘을’이 되고 서비스의 질에도 문제가 생긴다. 더 큰 문제는 유례없는 속도로 늘어나는 1인가구로, 앞으로 ‘가구 내 돌봄’이 불가능해진다는 점이다. 이 실장은 이 문제를 풀려면 기본적인 사회서비스와 현물급여 확충이 시급하다고 제안했다. 의료비·교육비·주거비 등의 지출은 가구별 편차가 크기 때문에 현금급여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어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갈등에서 국민들이 힘을 모아 협상력을 갖는 게 중요하다. 삶의 질을 높일 복지 기반을 확충하는 데 사회 전반이 노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두번째 발제자로 나선 김연명 중앙대 교수(사회복지학)는 이런 문제의식에 공감하면서, 문재인 정부의 사회정책 비전, 즉 당면한 불평등 문제를 풀 방법으로 정부가 제시한 ‘혁신적 포용국가’를 설명했다. 김 교수는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국정과제지원단장으로, 이 비전을 만든 당사자다. 김 교수는 “미래국가의 경쟁력은 4차 산업혁명과 기술혁신에 대비해 사회의 포용성을 높이고 혁신 능력을 키우는 게 관건”이라며, 그 두 축인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을 통해 경제정책과 사회정책을 선순환시키는 게 정부의 목표라고 강조했다. “소득주도성장은 최저임금 인상이 전부가 아니다. 사회적 임금, 현금급여, 현물 서비스 등 복지를 확대해 가처분소득을 올리고, 이를 통해 총수요를 늘리는 게 핵심”이며 “혁신성장 역시 규제완화뿐만 아니라, 인적·사회적 자본 확충을 통해 사회 전체의 혁신 기반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국민연금 개편안을 두고 최근 벌어진 ‘사회보험(국민연금) 강화냐, 기초소득보장(기초연금) 강화냐’ 논란을 두고는 “기초연금을 두배로 인상해도 노인의 상대빈곤율은 별로 줄어들지 않는다. 이는 양자택일할 게 아니라, 둘 다 동시에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케이트 피킷 영국 요크대 교수(공공보건역학)는 영국 사례를 소개하면서, 건강 불평등이 개인의 생활습관 문제가 아니라 사회·경제적인 문제임을 강조했다. 조혜정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 수석연구원 zesty@hani.co.kr한겨레에서 보기: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868291.html#csidxaf835fb9b4977d99146dd25f76afcf1  

[2018 아시아미래포럼] “일본, AI-자동화 대응해 겸업-사무실 밖 근무 장려”

 【2018 아시아미래포럼】 디지털 전환과 노동의 미래“일본, 고용시스템 변화시키려 노력,플랫폼 노동 갑질 막을 규제도 추진”“일자리 대체위험 높은 노동자에교육제공-임금손실 최소화 고민을”3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서울드래곤시티호텔에서 한겨레신문사 주최로 열린 제9회 아시아미래포럼 세션5 <디지털 전환과 노동의 미래> 참석자들이 토론을 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디지털 사회로의 전환은 산업 차원의 변화뿐 아니라 고용관계의 변화도 이끌어내고 있다. 기업과 ‘근로계약’을 맺고 지정된 장소에서 지정된 시간만큼 일하고, 임금과 보험 연금으로 이뤄진 대가를 받는 노동자의 수는 줄어들고 있고, 더욱 줄어들 전망이다. 인공지능·자동화로 인한 일자리 감소는 물론, 노동력 역시도 ‘공유’의 개념으로 일컬어지며 디지털 플랫폼에 기반한 ‘플랫폼 노동’ 역시 출현하고 있다. 한겨레신문사가 주최하는 제9회 아시아미래포럼 둘째 날인 31일 오후 열린 ‘디지털 전환과 노동의 미래’ 세션에선 한국·중국·일본 사회가 디지털 전환에 따른 고용노동 체계의 변화 현황과 대안에 대해 논의했다. 그동안 4차 산업혁명 대응에 대한 국외 사례는 미국이나 유럽 위주로 소개됐지만, 이번 포럼에서는 이웃나라인 동아시아의 사례를 직접 살펴볼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 일본 노동법 전문가인 최석환 명지대 교수(법학)는 4차 산업혁명에 발맞춘 일본 정부의 ‘고용노동정책’ 사례를 소개했다. 최 교수의 발표를 보면, 일본은 ‘일하는 방식 개혁’을 목표로 고용시스템을 변화시키려는 노력을 진행해 이미 성과를 내고 있다. 한곳 이상에서 일하는 것을 ‘겸업·부업’으로, 사무실 근무가 아닌 다른 근무를 ‘텔레워크’, 고용관계가 아닌 상태로 일하는 방식을 ‘고용관계에 의하지 않은 일하는 방식’으로 규정하고 대책을 세웠는데, 한 회사에만 종속된 고용 방식을 극복해 원칙적으로 겸업을 가능하도록 장려하고, 사무실이 아닌 공간에서 일할지라도 장시간 노동에서 보호받을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을 제정했다. 또한 ‘고용과 유사한 방식으로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규제를 만들기 위해 계약조건을 명시하고 보수액을 적정화하도록 해, 기업과 플랫폼에 의한 ‘갑질’을 막을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는 상황이다. 최 교수는 “일본은 2007년부터 ‘일하는 방식 개혁’을 목표로 오랫동안 제도를 정비하는 노력을 진행해왔으며, 경제·산업·노동 등 부처를 횡단하는 계획을 바탕으로 디테일한 규제를 만들어왔다”고 평가했다. 왕페이 중국 인민대 노동인사학원 교수는 중국의 음식 배달 플랫폼 사례를 소개하며 “음식 배달 플랫폼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근로계약을 맺은 노동자도 있고 아닌 사람도 있지만, 근로계약을 맺지 않는 사람들은 사회보장제도를 적용받지 못해 문제가 크다”고 짚었다. 같은 대학 저우광쑤 교수는 ‘자동화가 중국 노동시장에 미치는 영향’ 발표에서 2000~2010년 중국에서 자동화율이 높을수록 고용증가율이 낮아지는 경향을 통계로 입증했다. 특히 여성·저학력·고령·농민공은 자동화 때문에 고용이 줄었는데, 일자리가 줄어들면서도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은 늘고 임금은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저우 교수는 “중국 정부에서 인공지능을 위시한 스마트산업 발전을 추진하고 있지만, 노동시장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에 주목해야 한다”며 “자동화로 인해 일자리 대체 위험이 높은 노동인구에 대한 인적자본·기술 교육 대책과 임금 축소와 노동시간 증가에 따른 손실을 최소화할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좌장을 맡은 박제성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기업들은 시장이라는 제도 안에서 영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 ‘플랫폼’을 통해 기업이 시장을 만들어내고 있다”며 “우리가 다루는 모든 기술은 다른 상상력을 담고 있고, 디지털 기술이 담고 있는 상상력을 우리가 온전히 이해해야만 이에 대응하는 법과 제도를 만들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한겨레에서 보기: http://www.hani.co.kr/arti/economy/it/868274.html#csidxe9062043a6f58f898b3a08951f088b9  

[2018 아시아미래포럼] “가짜-왜곡정보 기술적 해결 한계…시간걸려도 사회적으로 해결해야”

 【2018 아시아미래포럼】 ‘디지털 정보 식별성과 소비자 주권’플랫폼과 정부가 지속적으로 협력해이용자 미디어역량 키워낼 필요한겨레신문사가 31일 오전 서울 용산구 서울드래곤시티호텔에서 연 제9회 아시아미래포럼 이틀째 세션3 ‘디지털 환경의 정보 식별성과 소비자 주권’이 끝난 뒤 ‘휴먼테크놀로지 어워드’ 수상자와 시상자 등이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갈수록 늘어나는 허위·왜곡 정보 피해로부터 이용자 권리를 지키는 현명한 방법은 무엇일까. 아시아미래포럼 이틀째인 31일 세션3은 사람과디지털연구소 주관으로 ‘디지털 환경에서의 정보 식별성과 소비자 주권’을 주제로 서울드래곤시티호텔 백두홀에서 진행됐다. 김재영 한국소비자원 책임연구원은 디지털에서 정보 비대칭성이 증가하면서 기업·전문가 집단과 일반 이용자 사이의 정보 비대칭 현상이 새로운 소비자 권리 침해로 이어지는 문제를 지적했다. 정보 의존도가 높아졌지만 정보의 의도와 속성이 드러나지 않아 불법 정보, 가짜 정보가 늘어나고 있다. 김 연구원은 문제 해결을 위해 정보 접근성과 투명성이 요구되고 있지만, 투명성 증가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현실을 지적했다. 2013년 미국 노스웨스턴대가 진행한 ‘투명성의 시대와 비밀’ 포럼에서는 정보 투명성 자체를 추구한 결과 발생한 다양한 역효과 사례를 다뤘다. 히로시마 원전 사태와 2009년 미국 항공기 폭파 방지 실패 사건은 가공되지 않은 날것의 정보가 오히려 혼란을 초래한 사례로 거론된다. 정보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장치가 역설적으로 의사결정 과정을 불투명하게 만드는 결과로 이어진 것이다. 이는 투명성 증가 자체는 해법이 아니며, 정보의 목적과 의도를 파악하여 능동적으로 정보를 수집하고 처리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김범수 연세대학교 정보대학원 교수는 ‘가짜 정보 이슈와 식별, 그리고 대응’ 주제발표에서 허위·왜곡 정보에 대한 다양한 기술적 접근의 특징과 한계를 소개했다. 그래픽과 네트워크 분석을 통해 이상 패턴과 비정상적 확산 추이를 탐지하고 분석하는 데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지식그래프 등의 기술이 활용되고 있으나 가짜 정보 생성과 확산 기술 또한 그에 맞춰 대응하고 진화하며 물고 물리는 게 현실이다. 김 교수는 “가짜 정보 대응은 기술적 방법과 함께 비기술적 방법이 병행되어야 한다”며 “플랫폼과 정부의 책임있고 지속적인 협력과 장기적 관점에서 이용자의 미디어 역량을 강화하고 지원하는 유럽연합의 노력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전문가의 노력만이 아니라 최종적 판별 능력을 행사하는 이용자 개개인의 참여가 중요하기 때문에 개인 간의 협력과 지원을 확대해야 함을 강조했다. 김성욱 네이버 서비스정책실장은 ‘디지털 허위 정보와 지적 방어 능력’ 발제를 통해, 애초에 사실로 여겨지며 국내에서 큰 사회적 반향을 불러왔지만 나중에 왜곡된 허위 정보라는 게 밝혀진 사례를 여러 건 예시했다. ‘세모자 성폭행 사건’ ‘세월호 당시 7시간의 진실’ ‘사카린 유해성’ 등은 애초 유통된 정보가 상당한 시간이 지난 뒤에 비로소 사실이 아님이 드러난 사례다. 서비스 플랫폼 사업자 차원에서도 가짜 정보의 문제를 식별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는 얘기다. 특히 정보가 진실 100%, 허위 100%의 형태로 유통되는 게 아니라 대부분 부분적 허위를 포함한 회색지대에 존재한다는 사실은 문제의 복잡성을 더한다. 김 실장은 무조건 정보를 수용하는 대신 항상 회의하고 의심하는 태도가 이용자 권리를 지키는 방법의 하나라고 말했다. 이원태 정보통신정책연구원 디지털사회정책그룹장은 종합논평에서 “입법을 통해 허위 정보 문제를 해결하려는 게 매력적이고 단기적 효과를 내는 것처럼 보이나 그 유혹을 이겨내야 한다”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법적 해결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대응하는 수밖에 없다는 쪽으로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이 그룹장은 언론사들이 팩트체크 기능을 강화하고, 비기술적 전문가들의 집단지성을 모으고, 이용자들의 비판적 사고력을 강화하는 게 사회적 차원의 대응이라고 제시했다. 당장 디지털 환경에서 이용자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방법을 묻는 청중들의 질문에 대해서 전문가들은 약관 ‘전체 동의’를 절대 하지 말고 선택 동의는 제외할 것과 소셜 로그인을 사용하지 말 것을 권고했다. 구본권 사람과디지털연구소장 starry9@hani.co.kr한겨레에서 보기: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868178.html#csidx73e78a9e49d7ba4b37bc786120a2a42  

[2018 아시아미래포럼 인문특강] “가짜뉴스 성행…비영리 언론이 민주주의 구현”

2018 아시아미래포럼 인문특강카제 교수 ‘미디어 구하기’“가짜뉴스가 성행하는 세상에서, 민주주의를 살리기 위해선 언론의 민주화가 선행돼야 한다.” 쥘리아 카제 프랑스 파리정치대 교수는 30일 ‘2018 아시아미래포럼’ 인문특강 ‘미디어 구하기-지속가능한 미디어 모델을 찾아’에서 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언론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이를 제대로 구현해낼 ‘비영리 언론기관’ 모델을 제시했다. 카제 교수는 “정보를 가지고 있는 유권자의 1표와 갖고 있지 않은 유권자의 1표는 다르다”며 민주주의에서 언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2016년 미국 대선에서 뉴스 구독자 수가 낮은 주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많은 표를 얻은 점을 예로 들며 “전통적 뉴스매체가 부재한 디지털 세계에서는 투표율이 하락하고 극단적 성향의 정당이 득세한다”고 주장했다. 또 그는 “뉴스 기사의 4분의 1이 4분 안에 재생산되고, 온라인 콘텐츠의 3분의 2가 오리지널 뉴스를 그대로 복사해 붙인 정보”라며 “언론은 자유롭고 중립적인 고품질 정보를 독자들에게 제공해야 하고, 이를 위해 양질의 취재를 위한 충분한 노력과 시간을 투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때문에 그는 ‘비영리 언론기관’ 모델이 언론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봤다. 시민들이 주주로 참여하되 투자금은 회수할 수 없고, 수익은 반드시 조직에 재투자하는 모델이다. 그는 “<한겨레>가 비영리 언론기관의 모델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며 “언론이 독립적으로 뉴스를 생산하고 진실된 뉴스를 소비하게 할 수 있도록 언론의 민주화가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한겨레에서 보기: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868061.html#csidxcf5cb770a5ce470a48a2eed8996cd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