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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대신 지구를 구제하라’…“공공은행으로 ‘그린뉴딜’ 이끌어야”
관리자 . 2019.10.11

2019 아시아미래포럼 - 지속가능한 미래를 말하다

1부 ③ 금융패러다임 대전환 

 

2008년 금융위기 뒤 양적완화

미, 4조5천억달러 쏟아부었지만
대부분 거대 민간은행 배만 불려
사회 지속가능성 향상에 걸림돌

미 대선 화두로 떠오른 ‘그린뉴딜’
100% 재생에너지 사용 등 목표
‘돈 전달경로 새판짜기’ 공감 커져
정부 소유 공공은행 설립 힘 받아

금융부문이 지속가능발전을 이끄는 견인차가 되려면 공공은행처럼 현행 방식과는 다른 ‘돈의 전달 경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사진은 화석연료 사용 금지를 주장하는 시민단체 ‘화석 없는 캘리포니아’가 캘리포니아 공공은행 설립을 주장하는 시위를 벌이는 모습.   ‘화석 없는 캘리포니아’ 누리집 갈무리
금융부문이 지속가능발전을 이끄는 견인차가 되려면 공공은행처럼 현행 방식과는 다른 ‘돈의 전달 경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사진은 화석연료 사용 금지를 주장하는 시민단체 ‘화석 없는 캘리포니아’가 캘리포니아 공공은행 설립을 주장하는 시위를 벌이는 모습. ‘화석 없는 캘리포니아’ 누리집 갈무리


미국 서부 샌프란시스코와 오클랜드를 연결하는 약 7㎞ 길이의 ‘베이브리지’.

1936년 개통된 유서 깊은 이 다리는 1995년부터 대대적인 보수공사에 들어갔다. 두고두고 공공건설사업의 ‘반면교사’ 사례가 될 만한 공사였다. 애초 예상했던 공사비용은 2억5천만달러. 하지만 여러 차례 설계변경을 거친 끝에 2013년 다리 동쪽 구간이 새로 개통되기까지 투입된 건설비용은 65억달러나 됐다. 진짜 이야기는 이제부터다. 순수 건설비용 이외에 이자 및 파이낸싱 관련 부대비용을 합하면 전체 사업비는 무려 130억달러로 불어났다. 캘리포니아 주정부가 월가의 대형 은행들에서 비싼 이자를 물며 돈을 빌려 자금을 댔기 때문이다. 사회기반시설 공사도 영리를 추구하는 이들 은행 눈엔 단지 엄청난 이윤을 챙길 사업 기회였을 뿐이다.

2015년 유엔이 17개 항목으로 구성된 ‘지속가능발전목표’(SDGs)를 공식 발표하면서 경제와 사회, 환경이 조화된 지구촌을 만드는 과정에서 금융이 떠안아야 할 역할과 책임에 더욱 눈길이 쏠리고 있다. 현대 자본주의 체제의 혈관 노릇을 하는 금융 패러다임의 대전환 없이는 지속가능발전이란 목표가 한낱 꿈에 그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속가능금융’, ‘기후금융’ 등의 용어는 주류 국제금융질서에 빠르게 자리잡는 중이다. 운용자산만 우리 돈으로 1100조원이 넘는 세계 2위 연기금인 노르웨이국부펀드(GPFG)가 ‘화석연료 없는 세상’ 캠페인에 나서 화석연료와 관련된 기업과 산업엔 투자하지 않는 것도 대표 사례다. 이런 이유로 노르웨이국부펀드는 2017년 봄 한국전력을 투자금지기업으로 지정해 발표했다.

 

■ ‘그린뉴딜’, 지속가능금융의 시험대 
금융부문이 지속가능발전을 이끄는 견인차가 될 수 있을지를 가늠할 중요한 잣대는 단연 1년 뒤 치러질 미국 대통령 선거전의 핵심 화두로 떠오른 ‘그린뉴딜’이다. 현재 버니 샌더스(버몬트주 상원의원), 엘리자베스 워런(매사추세츠주 상원의원) 등 민주당 내 주요 대선주자들은 미국 사회의 틀을 근본적으로 뜯어고칠 해법으로 저마다 그린뉴딜을 외치고 있다. 올해 2월 같은 당의 청년 정치인 오카시오코르테스(하원의원)가 의회 결의안 형식으로 야심 찬 그린뉴딜 계획을 발표한 영향이 컸다. 2030년까지 미국의 온실가스 배출을 없애고 100% 재생에너지를 사용하며 고용구조를 친환경 산업 중심으로 완전히 뜯어고친다는 게 뼈대다.

 

관건은 최대 16조달러에 이른다는 막대한 재원을 어떻게 마련하느냐다. 현재로선 증세가 첫손에 꼽힌다. 1000만달러 이상 자산가에게 세율 70%를 물리거나(오카시오코르테스), 상속세(샌더스), 부유세(워런) 등의 방안이 거론되는 중이다. 하지만 그린뉴딜과 같은 거대한 사회전환 프로젝트를 단지 세금만으로 조달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지속가능발전이라는 이름값에 걸맞게 현재의 방식과는 다른 새로운 해법을 찾아야 하는 이유다. 35개 나라를 대상으로 1000억달러 규모의 빚을 탕감해주는 ‘주빌리 2000 운동’을 이끌었던 국제금융 전문가 앤 페티포는 지난달 출간된 <그린뉴딜>에서 “그린뉴딜의 의미는 금융을 사회와 생태계의 논리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이라며 “출발점은 현행 금융시스템의 작동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데서부터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린뉴딜이란?

 
100% 재생에너지를 사용하고 친환경 산업 중심으로 고용구조도 재편하자는 산업전환 프로젝트로, 1930년대 루스벨트 대통령이 추진한 뉴딜 정책에서 따왔다. 2008년 영국에서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처음 제시된 이래, 내년도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민주당 주요 대선주자들이 적극적으로 주장해 핵심 화두로 떠올랐다.

 

■ “중앙은행 발권력 활용” 목소리도
2008년 시작된 글로벌 금융위기는 현행 금융시스템의 한계를 세계적으로 적나라하게 드러낸 계기였다. 미국만 놓고 봐도 급한 불을 끄겠다며 세차례 양적완화 조치로 쏟아부은 돈이 무려 4조5천억달러다. 하지만 대부분 거대 민간은행 구제에 들어간 이 돈의 ‘생산성’은 매우 낮은 편이다. 은행들은 정부의 도움으로 수익성을 되찾았을지언정, 정작 돈이 자산시장 주변만 맴돌 뿐 실물부문으로 흘러들지 않은 탓에 기대했던 경기부양 효과를 내지 못해서다.

 

그 배경엔 민간은행의 신용(화폐) 창출 기능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현행 금융시스템의 근본적 한계가 자리잡고 있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시중 통화량 가운데 중앙은행이 발행한 본원화폐가 차지하는 비중은 고작 3~4% 정도다. 나머지는 모두 민간은행이 대출을 통해 무에서 만들어낸 신용화폐(빚)다. 이처럼 고삐 풀린 은행의 신용 창출 기능은 정작 사회엔 막대한 빚만 안겨주며 거듭해서 위기를 낳고 있다. 영리를 추구하는 민간은행에 절대적으로 기댄 현행 금융시스템은 지속가능하지 않을뿐더러, 사회 전체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데도 걸림돌이 되는 셈이다. 지속가능발전과 금융 패러다임의 대전환이 결국엔 ‘한 몸’임을 알 수 있다.

 

이와 관련해 대안적 금융질서를 연구하는 엘런 브라운 공공은행연구소장은 “사회를 지속가능하게 만들려면 중앙은행의 발권력을 거대 민간은행을 살리는 일 대신 다른 일에 쓰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말 그대로 ‘은행을 구제할 게 아니라 지구를 구제하자’는 얘기다. 예를 들어 중앙은행의 발권력을 활용해 경제와 사회, 환경에 보탬이 되는 지속가능발전 프로젝트에 필요 재원이 더 원활하게 흘러들도록 하는 ‘그린 양적완화’도 고려해봄 직하다. 금융위기 당시 미국과 유럽 등이 시행한 양적완화와 형식은 비슷하지만, 내용과 파급효과는 상당히 다르다.

 

■ ‘공공은행’ 설립 움직임 활발 
그린뉴딜을 비롯해 지속가능발전목표가 구체적 성과를 거두려면 현행 방식과는 다른 ‘돈의 전달 경로’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커지면서 관심을 끄는 게 공공은행(퍼블릭 뱅크)이다. 현재 미국 내 여러 지방자치단체에서 공공은행 설립 움직임이 중요한 정치현안으로 등장한 것도 이런 사정과 무관하지 않다. 공공은행이란 지방정부나 중앙정부가 직접 소유한 은행으로, 초기 자본금은 공채 발행이나 크라우드펀딩, 혹은 중앙은행 장기대출 방식으로 조달할 수 있다. 공공은행의 존재 이유는 사회 구성원 모두의 혜택이므로, 민간은행과는 달리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다양한 프로젝트에 자금을 무한 공급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데 유리하다. 실제로 1930년대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딜정책을 뒷받침한 것도 재건금융공사(RFC)라는 이름의 공공 신용대출기관이었다. 최상위 소득계층에 높은 세율을 물리자는 주장에 가려 잘 알려지지는 않았으나, 오카시오코르테스가 발표한 그린뉴딜 계획에도 공공은행 설립 방안이 담겨 있다. 공통분모는 결국 돈의 전달 경로 다시 짜기다.

 

전국에 흩어진 공공은행들이 튼튼한 네트워크를 이룰 경우 금융 생태계 전반에 미칠 효과는 적잖을 전망이다. 예를 들어 미국의 경우 연방정부로부터 초기 자본금을 얻어 국법 은행으로 탄생한 공공은행이 주법 은행에 낮은 이자로 대출해주고, 이 돈이 다시 기초지역 단위 사회적 금융기관들에 고루 스며드는 구조를 그려볼 수 있다. 페티포가 “공공은행의 존재 없이는 사실상 그린뉴딜이 무의미하다”고 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현대 자본주의는 빚으로 쌓아 올린 성장 구조로 짜여 있다. 그 뼈대를 이루는 게 민간은행의 신용 창출 기능에 기댄 현재의 금융시스템이다. 경제와 사회, 환경이라는 가치가 한데 어우러진 지속가능한 미래도 이미 분명한 한계를 드러낸 현행 화폐의 생산 및 유통 구조를 뜯어고치지 않고선 찾아오기 힘들다. 출발점과 종착점에 금융 패러다임의 대전환이 서 있다.

 

 

지난 3일(현지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에선 상징적인 내용의 주법 하나가 탄생했다. 시 정부나 카운티 정부 등 지방정부가 공공은행을 직접 설립하는 걸 허용하는 법안이 주 의회를 통과한 데 이어, 개빈 뉴섬 주지사가 공식서명 절차를 끝냈기 때문이다. 이로써 캘리포니아에서도 지방정부 소유의 공공은행이 세상에 등장할 길이 마련됐다. 영리를 추구하는 민간은행과는 다른 논리구조와 가치를 담은 새로운 금융의 가능성이 활짝 열린 셈이다.

 

민주당에서 야심 차게 들고나온 ‘그린뉴딜’ 프로젝트가 내년도 미국 대통령 선거전을 일찌감치 달구고 있는 가운데, 미국 곳곳에선 공공은행 설립 운동이 한창이다. 캘리포니아의 샌프란시스코와 로스앤젤레스(LA)를 비롯해 뉴욕과 워싱턴 디시 등의 열기가 특히 뜨겁다. 엘에이의 경우, 지난해 11월 공공은행 설립 요구안이 주민투표에 부쳐졌으나, 찬성표가 과반수를 약간 밑돌아 부결된 바 있다. 공공은행 설립을 주장하는 쪽에선 계속 지지세를 넓혀나갈 계획이다.

 

이처럼 최근 들어 공공은행 설립 바람이 유독 강하게 부는 건, 지속가능한 미래를 만들기 위해선 필요한 돈이 적재적소에 제때 흘러드는 게 중요하다는 공감대가 커져서다.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수익성과 주주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데 매달려야 하는 민간은행의 한계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점도 빼놓을 수 없다. 금융부문의 근본적 변화 없이는 지속가능한 미래가 찾아오지 않는다는 깨달음이라 할 수 있다.

 

다른 지역에선 풀뿌리 시민운동의 형태로 공공은행 설립 움직임에 탄력이 붙는 것과는 달리, 워싱턴 디시의 경우는 의회 스스로 적극적으로 공공은행인 ‘그린뱅크’ 설립을 주도해 눈길을 끈다. 워싱턴 디시 전역에 탄소 배출을 줄이고 재생에너지 사용을 강제하는 내용의 ‘클린에너지 옴니버스법’이 지난해 제정된 영향도 컸다.

 

공공은행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 올해로 정확히 탄생 100년이 되는 미국의 노스다코타은행은 공공은행의 상징적 사례로 꼽힌다. 100년의 실험이 공공은행의 존재 이유를 분명하게 증명해주는 까닭이다. 이 지역의 농부들에게 신용을 원활하게 제공하기 위해 1919년 탄생한 노스다코타은행은 주 재정을 관리하는 은행으로 지정된 데 이어 지역주민을 위한 공공사업 자금줄 구실을 톡톡히 해냈다. 주주 가치 극대화라는 명분 아래 최고경영자가 엄청난 규모의 연봉을 챙겨가는 대형 민간은행과 달리, 노스다코타은행장의 연봉은 연 25만달러로 제한돼 있다. 금융위기 기간을 포함해 16년 내리 흑자 기록을 이어가고 있는 것도 눈길을 끈다.

 

 

최우성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morg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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