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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경쟁 ‘플랫폼 노동자’ 보호 어떻게

[2019 아시아미래포럼] 디지털 플랫폼 노동의 확산과 사회적 보호제도의 진화둘째날 세션 5전세계 1억명 이상 일하지만사회적 보호·복지 ‘사각지대’우버·배달 노동자들 대책 촉구“유럽은 운영자에 의무 부과 추진”노동절인 5월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린 라이더유니온 출범식에서 참석자들이 ‘안전하게 일하고 싶다’ 등의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스마트폰을 중심으로 한 ‘디지털 플랫폼 경제’는 우리 사회를 빠르게 변화시키고 있다. 음식을 배달시키고, 여행을 위해 숙소 예약을 하고, 택시를 탈 때도 스마트폰 앱을 이용하는 것이 일상이 됐다. 앱을 활용한 공유경제나 플랫폼 기업도 승차, 숙박, 가사, 배달, 간병, 이사 등 다양한 영역으로 확산되면서 새로운 산업을 만들고 있다. 인터넷으로 소비자와 공급자를 연결하는 플랫폼 산업은 접근성, 편리성, 저렴한 가격 등의 장점으로 전세계적 확대 추세에 있다. 한국만 봐도 성장에 가속이 붙은 상태다. 통계청의 ‘온라인쇼핑동향조사’를 보면, 배달 앱을 통한 거래액(모바일쇼핑, 음식서비스 항목)은 2017년 2조3543억원에서 지난해 4조7799억원으로 1년 사이 두 배로 증가했다.플랫폼 경제의 눈부신 성장 뒤에 기존 제도로 품을 수 없는 노동 형태가 생겨나면서 사회적 쟁점이 되고 있다. 플랫폼 노동은 일자리가 아니라 일감으로 경쟁하고, 노동자는 어디에 고용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노동법의 보호와 사회복지 혜택에서 벗어나 있다. 진입 장벽이 낮아 플랫폼 노동자 수는 계속 늘어나지만 무한경쟁으로 수입은 적고, 위험에도 고스란히 노출돼 있다. 한국고용정보원 분석을 보면, 우리나라 플랫폼 노동자는 최대 54만여명으로 전체 취업자의 2% 수준으로 추정된다. 세계은행은 2020년에 전세계 플랫폼 노동자가 1억1200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견디다 못한 플랫폼 노동자들의 저항도 일어나고 있다. 세계 곳곳의 우버 기사들은 노동 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우버의 미국 증권거래소 상장일에 우버 앱, 또 다른 차량 공유업체 리프트의 앱을 끄는 항의시위를 했다. 국내에서도 노동절인 올해 5월1일 앱으로 일감을 받는 배달 노동자들이 국회 앞에 모여 노동조합(라이더유니온) 결성식을 열었다. 라이더유니온은 지난 7일에도 서울 종로구 대통령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가 위험을 떠안고 일하는 라이더들의 문제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다”며 터무니없이 높은 보험료 인하 같은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플랫폼 산업이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는 그 속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어떻게 보호해야 할지 본격적으로 고민해야 할 때다. 아시아미래포럼 둘째 날인 24일 한국노동연구원이 함께하는 ‘디지털 플랫폼 노동의 확산과 사회적 보호제도의 진화’ 세션이 열린다. 이 자리에서 플랫폼 노동자에 대한 노동법적 보호와 사회보장제도 적용 방안이 논의된다. 장지연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플랫폼 경제시대의 사회보장제도’라는 발제문에서 “임금·노동 조건의 하향화 압력, 고용 불안, 차별, 사회적 고립, 장시간 노동, 법적 지위의 모호성 등”이 빚어지고 있다며 “플랫폼 노동에 대한 사회적 보호가 필요하다는 것은 분명하다”고 밝혔다. 유럽 등 선진국에서도 플랫폼 노동의 경우 산업재해에 대한 책임, 교육훈련의 의무를 플랫폼 운영자에 부과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고, 단체협상과 단체행동의 권리 부여, 사회보험 적용을 위해 보험료를 누가 부담할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도 이뤄지고 있다. 이 세션에서는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원장이 좌장을 맡고 스테인 브루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선임이코노미스트가 ‘자영업자와 임금노동자 사이 회색지대에 대한 노동시장 규제’에 대한 내용을, 엔초 베버 독일 레겐스부르크대 교수가 ‘디지털 사회보장’이란 주제로 발표한다. 토론자로는 이성종 플랫폼노동연대 대표, 정미나 코리아스타트업포럼 정책팀장, 이호근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김근주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이 나선다. 김소연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수석연구원 dandy@hani.co.kr한겨레에서 보기:http://www.hani.co.kr/arti/economy/heri_review/913524.html

격차 해소 위한 ‘확장적 복지’ 방안 모색

[2019 아시아미래포럼] 격차사회와 포용국가둘째날 세션 2아직 뿌리 못 내린 포용국가 정책소득분배 악화·부문별 격차 여전세원 발굴· 재정확충 공론 모으고영국· 일본의 실태와 정책 살펴봐한국은 세계에서 7번째로 ‘30-50클럽’(인구 5천만명 이상-1인당 국민총소득 3만달러 이상)에 가입한 나라지만, 소득·교육·지역·노동 등 여러 분야에서 격차가 확대돼 국민의 행복 수준은 국가 수준을 크게 밑돌고 있다. 한국 사회는 과연 격차 문제 해결에 성공할 수 있을까. 서울 포이동 구룡마을 뒤로 고층 아파트가 보인다. <한겨레> 자료사진한국은 2017년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3만1734달러(한국은행 2019년 6월 기준연도 개편 통계)로 3만달러를 넘어섰다. 이로써 세계에서 7번째로 ‘30-50클럽’(인구 5천만명 이상-1인당 국민총소득 3만달러 이상)에 들어선 국가가 됐다. 앞서 30-50클럽에 진입한 여섯 나라인 미국·독일·영국·일본·프랑스·이탈리아는 모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이자, 주요7개국(G7) 멤버들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신생 독립국 가운데 선진국 진입 지표의 하나인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 달성은, 한국이 최초이자 유일하다.  하지만 ‘삶의 질’을 보여주는 다른 지표들은 한국 사회의 우울한 단면을 보여준다. 노인자살률과 노인빈곤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 가입국 가운데 최고이고, 양극화 심화와 청년실업 속에 사회적 위화감이 확대되고 있다. 2017년 문재인 정부 출범 뒤 공공부문 비정규직 축소 등이 진행되고 있다지만, 불평등이 개선될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수도권과 지방의 지역 격차 또한 심해지고 있다.아시아미래포럼 이틀째인 24일 오전에 열리는 한국보건사회연구원(보사연) 주관 ‘격차사회와 포용국가’ 세션에서는 이런 한국 사회 격차 문제의 현황과 해소 방안을 논의한다. 김태완 보사연 연구위원이 ‘한국의 격차실태와 포용복지’를 주제로 발제하고, 로버트 페이지 영국 버밍엄대 사회정책학 교수와 김명중 일본 닛세이기초연구소 박사가 각각 영국의 사회 격차 현황과 국제적 추세, 일본의 사회 격차 해소 방안 등을 소개한다. 김 연구위원은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운’ 사회를 표방하며 출범한 문재인 정부가 내세운 ‘포용’이 얼마나 현실 속에 뿌리내리고 있는지를 짚는다. 안타깝지만, 큰 틀에서의 변화는 아직 없다. 올해 다소 둔화했다지만, 소득분배는 지난해 더욱 악화했고 노동시장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 남녀 사이 격차 또한 여전하다. 도시와 농촌의 격차, 소득분위별 사교육비 격차가 늘면서 계층사다리의 붕괴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국민 행복 수준은 여전히 국가 수준(경제력 기준 세계 11~12위)을 크게 밑돌고 있다.  해결책은 자명하다. 확장적 복지가 첫손에 꼽힌다. 국민연금 개혁과 기초보장제도 보장성 강화, 공공형 일자리 확대를 통한 노인빈곤 해소가 시급하고, 청년·여성·이주노동자 등 배제계층의 노동시장 접근성 개선도 주요하게 고려할 사항이다. 이와 함께 △지역 △노동시장 △교육 △남녀 등 부문별로 적극적인 격차 해소 정책도 시급히 시행해야 한다. 김 연구위원은 지역 균형 발전을 위해서는 지방분권 강화와 더불어 수도권 주요 대학의 지방이전 독려와 재정지원이, 노동시장 격차 해소를 위해서는 정규직-비정규직, 대기업-중소기업 임금 격차 해소와 더불어 기업별 복지에서 국가 복지로의 점진적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확장적 복지와 부문별 격차 해소 정책을 힘 있게 추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새로운 세원 발굴, 그리고 누진세 및 보유세 강화 등을 통한 재정 확충이 필수지만, 한국적 정치 현실에서 공론을 모으기란 쉽지 않은 과제다. 로버트 페이지 교수는 영국 재정연구소(IFS)의 ‘21세기의 불평등’ 보고서 등을 인용해 1970년대에 3%였던 상위 1% 가구의 소득 점유율이 8%까지 올라가고, 최고경영자 평균 급여는 20년 전보다 3배 늘어, 노동자 평균의 145배에 이르는 등 영국의 격차 확대 양상을 소개한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진보진영에서는 소득재분배와 부유세 강화 등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지만, 실제 유권자들의 지지 확보는 생각보다 어려운 ‘숙제’임도 강조할 예정이다. 김명중 박사는 흔히 ‘20년 뒤 한국의 모습’으로 얘기되는 일본의 격차 문제를 소개한다. 2012년 아베노믹스가 본격화하며 일본의 실업률과 빈곤율이 낮아졌지만, 실질임금 상승률은 경제성장률에 크게 못 미치고 비정규직이 크게 늘고 있다. 이에 일본 정부는 비정규직에게도 건강보험과 복지연금보험 가입 문호를 확대하는 등 격차 축소에 노력하고 있지만 “일본 정부의 재분배 정책도 세대 간 조정에 편향돼 있어 새로운 빈곤과 소득불균형이 악화할 가능성이 있다”는 게 김 박사의 시각이다. 토론자로는 주은선 경기대 교수(사회복지학)와 윤홍식 인하대 교수(사회복지학), 김재진 조세재정연구원 부원장, 김문길 보사연 연구위원 등이 나서며, 조흥식 보사연 원장이 좌장을 맡는다. 이순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수석연구원 hyuk@hani.co.kr한겨레에서 보기:http://www.hani.co.kr/arti/economy/heri_review/913525.html 

소소한 실험을 거대한 전환점으로

[2019 아시아미래포럼] 전환도시 서울, 시민의 실험둘째날 세션 6부동산 장벽 넘어선 ‘공유 공간’쓰레기 관찰기로 시작된 프로젝트작은 실천과 도전 정신이 만든198개 참신한 시민 발상 나누기서울시 25개 자치구 가운데 11곳에서는 ‘미래세대를 오늘의 시민으로’ 만드는 청소년의회가 구성돼 있다. 꿈지락네트워크 제공올해 아시아미래포럼 둘째 날인 24일엔 ‘전환도시 서울, 시민의 실험’이란 제목의 포럼이 열린다. 서울연구원이 주관하는 이 세션은 서울의 모습을 바꿔나가는 시민들의 도전과 실험의 기록을 널리 공유하는 자리다. 서울 시민이 직접 써내려간 ‘전환 리포트’라 할 만하다.‘전환’은 지속 가능한 발전의 모범도시인 서울시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커다란 가치를 부여한 주제어이다. 지난해엔 시민이 앞장서는 대의를 강조하는 데 무게를 실었다면, 올해엔 한 걸음 더 나아가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시민의 전환적 실험과 도전 현장의 사례를 널리 알리는 데 힘을 쏟았다. 체인저 19인과 시민연구위원 6명이 힘을 합쳐 실험사례 발굴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전환이란 이름에 걸맞은 사례 198개가 모였다. 이들 현장 사례를 하나로 연결하는 다섯 개의 열쇳말은 △당사자성 △혁신성 △지역성 △협력 네트워크 △일상의 변화 등이다.  포럼 현장에선 대표적인 전환 사례 4개가 소개된다. 박영민 해빗투게더 협동조합 이사가 발표할 지역 자산화 실험은 관심을 끌 만하다. 서울 마포 지역에서 열심히 활동하던 우리동네나무그늘협동조합, 삼십육쩜육도씨 의료생활협동조합, 홍우주 사회적협동조합 등 세 곳은 똑같은 문제에 맞닥뜨렸다. 끝 모르고 치솟는 부동산 가격이 넘기 힘든 거대한 장벽으로 앞길을 막아섰기 때문이다. “우리가 해왔던 모든 활동과 실험, 실천과 도전은 부동산 앞에서 멈춰 섰다”는 게 이들의 하소연이다. 해법은 없는 걸까? 이들은 힘을 합쳐 공간을 마련하는 길을 찾았다. 복합예술 공간과 공동사무실, 코워킹 스페이스 등을 두루 갖춘 새로운 터전을 마련하는 일에 뛰어든 것이다. 지역 자산화란 지역 주민이 공간을 공동 소유하면서 장기적이고 자율적인 사용권을 갖는 것을 말한다. 세계적으로 젠트리피케이션의 대안으로도 불리는 지역 자산화가 과연 지역사회를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생생한 이야기를 들어볼 기회다.  ‘청소년의회’ 활동의 의미를 전해줄 인권을찾았당 사례도 무척 흥미롭다. 현재 서울 시내 25개 자치구 가운데 청소년의회가 구성된 곳은 11개에 이른다. 특히 금천구는 청소년의회 활동이 가장 활발한 지역이다. 지자체 최초로 지역에 거주하는 청소년들이 직접 투표권을 행사해 의회를 꾸렸다. 역시 지자체 최초인 청소년예산결산특별위원회가 설치돼 구청의 청소년 관련 예산을 심의하고 있다. 지난 7월엔 20명으로 구성된 제4대 의회가 구성됐다. 금천구 청소년의회에서 활동 중인 인권을찾았당은 학교 현장에서 청소년 인권이 왜 중요한지, 작은 실험만으로도 얼마나 많은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지 일깨워준다. 양천구 목2동의 난장이마을은 흔히 ‘모기동’으로 불린다. 공식 행정 지명은 아니고 주민들이 부르는 이름이다. 이곳에서 활동하는 플러스마이너스1도씨는 예술의 경계를 짓지 않고 지역 의제, 생활사, 사건, 대화, 수다 등을 고루 어루만지면서 예술로 발현될 수 있도록 돕는 활동을 벌인다. 삶과 장소에서 일과 놀이를 굳이 구분 짓지 않겠다는 것으로, 이들은 자신의 활동에 도시의 유효기간 연장을 위한 실험적 실천이라는 그럴듯한 가치를 부여한다. 쓰레기덕후의 가상마을 만들기 프로젝트도 눈길을 붙들어 매기에 충분하다. 서울 시민 한 사람이 하루에 버리는 쓰레기는 약 0.94㎏. 1년이면 어림잡아 350㎏에 육박한다. 평범한 청년들 몇명이 어느 날 재미있는 실험을 해봤다. 각자의 쓰레기 관찰기를 작성하기로 한 것. 사진을 찍고 기록으로 남겼다. 이른바 ‘쓱싹쓱싹! 제로 웨이스트 프로젝트’는 이렇게 시작됐다. 일상의 작은 실천은 커다란 변화를 불러왔다. 매장 내 일회 용기를 규제하자는 ‘플라스틱 어택’ 프로젝트로 이어졌고, 결국 온라인 쓰레기 덕질로 발전했다. 소소한 일상의 현장이 거대한 전환의 발화점이 될 수 있음을 이보다 더 생생하게 증명해줄 수 있을까. 최우성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morgen@hani.co.kr한겨레에서 보기:http://www.hani.co.kr/arti/economy/heri_review/913522.html 

‘기후 위협’ 눈총받는 한국 ‘그린 뉴딜’ 설계를

[2019 아시아미래포럼] 인류세 시대: 한국사회의 녹색 전환둘째날 세션1이산화탄소 배출 증가량 OECD 1위유엔 국가별 기후변화 대응 하위권인류세 논쟁이 된 기후 위기 원인과녹색 포용사회 위한 정치 과제 제안아시아미래포럼 분과 세션1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서 경제적 이윤보다 생명을 우선시하는 지속가능한 삶을 추구하는 녹색 전환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다. 사진은 지난 9월21일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시민단체들의 기후위기 집회 모습. 조현경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시민경제센터장이산화탄소 배출 세계 7위, 이산화탄소 배출 증가량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위. 다른 나라의 얘기가 아니다. 기후위기를 얘기할 때 한국에 따라붙는 부끄러운 수식어들이다. 영국의 시민단체 기후행동추적(CAT)이 세계 국가 중 기후변화 대응 정책이 미흡한 나라로 지목한 4개 나라에도 한국은 그 이름을 올렸다. 이뿐 아니다. 지난해 유엔기후변화 당사국총회가 발표한 국가별 기후변화 대응지수(CCPI)에서도 한국은 조사 대상 60개국 중 57위를 차지하는 불명예를 차지했다. 이렇듯 국제적으로 눈총받는 우리나라의 기후위기 문제이지만 국내에서는 늘 고용, 투자 등 성장 중심의 발전 패러다임의 과제에 밀린다. 지난달 21일 광화문에서 열린 대규모 집회와 같이 기후위기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움직임이 거세지고 있지만 정부와 정치인, 기업들의 대응은 아직도 미온적이기만 하다.이번 아시아미래포럼에서는 성장과 발전 중심의 경제 패러다임이 끌어온 한국 사회의 문제점을 짚어보고, 생태적 한계 안에서 경제,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추구하는 녹색 전환에 대해 살펴보는 자리가 마련된다. 다소 생소한 녹색 전환의 개념과 이행 과제를 집중적으로 살펴본다. 둘째 날 오전에 환경·정책영향평가연구원과 함께 여는 ‘인류세 시대, 한국 사회의 녹색 전환’ 세션은 최근 서구사회를 중심으로 화두로 떠오르는 인류세 시대를 논의의 중심으로 끌어온다. 박범순 카이스트 인류세연구센터장은 국제적 화두인 인류세 담론의 의미와 배경을 짚어보고 이를 통해 우리 사회 미래상을 그려 보인다. 인류세는 인류가 지구 지층에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다는 의미를 담은 지질학적 용어다. 노벨 화학상 수상자인 파울 크뤼첸이 2000년에 언급한 이래로 기후위기와 함께 서구사회에서 중요한 개념으로 다뤄지고 있다. 박 센터장은 인류세를 둘러싼 논쟁을 통해 기후위기를 불러온 원인이 무엇인지 반추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기후위기의 원인이 인류에게 있다는 비판에서 나아가, 자연을 통제해왔던 지금까지의 문명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계기로 삼자는 의미가 담겨 있다. 그는 인간의 개입을 줄여 생태계 복원에 성공한 네덜란드 오스트파르더르스플라선(Oostvaardersplassen) 국립공원 사례를 예로 들며, 우리나라의 비무장지대도 자연과 문명이 융합된 새로운 개념의 땅으로 조성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홍기빈 칼폴라니 사회경제연구소장은 사회적 기초와 생태적 한계 사이의 균형 방안을 담은 새로운 경제학 모델을 소개한다. 영국 경제학자 케이트 레이워스는 <도넛경제학>에서 지구 생태계의 한계 안에서 사회적 최저선을 넘어서는 복리를 함께 누리는 경제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을 제시했다. 홍 소장은 사회와 환경을 포용하면서도 균형을 유지하는 <도넛경제학>의 경제 모델이 가진 의미를 짚어보고, 한국적 맥락에서 어떻게 적용할지를 제시한다.  슈테판 아우어 주한독일대사는 유럽 정치권에서 약진하는 녹색당 사례를 통해 녹색포용사회를 위한 민주주의 정치제도의 과제를 발표한다. 녹색당은 지난해 독일, 오스트리아, 노르웨이 등 유럽 정치권에서 많은 득표를 하며 주요 정당으로 약진하고 있다. 슈테판 아우어 대사는 생태주의 가치와 소수자·난민 포용 등 인권정책을 일관되게 주장해온 녹색당의 활동을 소개하고, 연동형 비례대표제 등 이를 뒷받침한 유럽의 정치제도가 한 역할을 통해 녹색포용사회와 정치제도의 연계성에 대해 논의한다.  이상헌 녹색전환연구소장은 녹색 전환의 개념과 전략을 설명하고, 세부 이행과제를 제시한다. 녹색 전환은 성장 중심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이 지구 환경을 교란한 현실을 인식하고,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 경제적 이윤보다 생명을 우선하는 삶을 추구하자는 개념이다. 이 소장은 최근 불평등, 양극화 심화, 기후위기 대응 미흡 등 한국이 처한 현실의 해답은 녹색 전환에서 찾아야 한다며, 경제·사회·환경 분야별 이행과제에 대한 구체적인 사회적 논의를 해나가자고 제안한다. 그는 아울러 미국 민주당 경선 주자들이 제안하는 그린뉴딜 정책을 예로 들어, 국내에서도 기후위기 대응 방안이자 일자리 창출 대안으로서 한국형 그린뉴딜 모델을 설계하고 추진하기 위한 제도적 기반 마련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 밖에도 사회 분야에서는 공유자원에서 발생한 이익을 기본소득과 같은 제도를 통해 전 사회가 공유하는 방안 등을 함께 제안할 예정이다.  토론자로는 리처드 세넷 영국 런던정경대 명예교수를 비롯해 문태훈 지속가능발전위원회 위원장, 하승수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 구도완 환경사회연구소장, 김해창 경성대 교수(환경공학)가 나서며, 최병두 한국도시연구소 이사장이 좌장을 맡는다.   박은경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연구원 ekpark@hani.co.kr한겨레에서 보기:http://www.hani.co.kr/arti/economy/heri_review/913533.html 

지속가능한 미래를 밝히는 소수자의 하모니

[2019 아시아미래포럼] 한빛 예술단오후의 화음유엔, “지속가능한 비전 찾는데 장애인 참여 중요”음악으로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벽을 허무는 구실이아름 보컬, 15분간 눈 감아야 보이는 음악 선사한빛예술단 모던팝밴드 블루오션의 보컬 이아름씨. 한빛예술단 제공소리로 세상을 밝히는 사람들이 있다. 시각장애로 앞을 볼 수 없지만 음악으로 사람들과 소통하는 한빛예술단원들이 그들이다. 시각장애인 40여명으로 꾸려진 한빛예술단은 2003년 창단된 뒤 해마다 국내외에서 120여회의 공연을 해왔다. 2018년 강원도 평창에서 열린 장애인올림픽(패럴림픽) 개막식·폐막식 무대에도 오르는 등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예술단은 오케스트라를 넘어 앙상블, 중창단, 모던팝밴드 등 다양한 구성으로 음악을 선보이고 있다. 단원들은 악보를 볼 수 없어 연주를 위해 악보를 통째로 외운다고 한다. 엄청난 노력과 소통, 배려 없이는 만들어낼 수 없는 하모니다. 한빛예술단의 연주는 어쩌면 기적의 연속이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장애와 발전에 관한 유엔 대표 보고서’(2018)에서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비전을 찾는 데 장애인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사회가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는 장애인, 비장애인이 더불어 살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음악으로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벽을 허무는 한빛예술단의 구실이 중요한 이유다. 한빛예술단 모던팝밴드 블루오션의 보컬 이아름(29)씨가 23일 아시아미래포럼 오전 프로그램을 마무리하면서 약 15분간 눈을 감아야 보이는 음악을 들려준다. 이씨는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인 <슈퍼스타케이 시즌4>에 참가하고, 인디밴드 ‘브로콜리 너마저’의 객원가수로도 활동했다. 신은재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원 eunjae.shin@hani.co.kr한겨레에서 보기:http://www.hani.co.kr/arti/economy/heri_review/913521.html 

‘세대비관론’ 번진 불평등 앓이 …정치로 균형 잡기

【2019 아시아미래포럼】 경제·사회·환경의 균형 안에서피어나는 삶을 위한 상상력특별세션노동자 소득·고용의 양극화 심화환경 파괴로 일자리 증발 위기기득권층에 포섭된 정부 신뢰도 하락국가 간 협력도 안돼 정책 전환 더뎌의사결정 민주화·참여 예산 증액과지대추구 방지·노동 환경 구축 시급스웨덴의 16살 환경운동가인 그레타 툰베리는 최근 위기 신호들에도 오직 성장만을 추구하는 기성세대와 각 나라 정부 지도자를 향해 직설적인 공격을 퍼부었다. 새로운 경제·사회시스템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데 많은 이가 동의하지만 실제 변화는 더딘 이유는 뭘까. 경제·사회·환경의 균형 속에서 ‘피어나는 삶’이 가능한 날은 과연 언제쯤 올까. <한겨레> 자료 이미지 대량생산과 대량소비, 인구 증가와 환경 파괴, 도시화와 불평등의 확대….  20세기 유산 속에서 지속가능한 세상을 위한 시스템 전환을 준비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온 지 오래지만 실제 변화는 더디기만 하다. 세계 각국은 여전히 국내총생산(GDP) 성장 경쟁과 ‘우상향하는 성장의 그래프’ 신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불평등의 확대와 기후변화의 심화, 변화하는 산업구조 속에서 많은 나라가 청년실업 등으로 홍역을 앓고 있는데도 사회·경제적 패러다임 전환은 왜 찾아보기 힘들까?포럼 첫날 오후의 특별 세션 ‘경제·사회·환경의 균형 안에서 피어나는 삶을 위한 상상력’에서는 이 문제를 깊이 있게 다룬다. 이상헌 국제노동기구(ILO) 고용정책국장이 ‘레토릭(수사) 넘어: 왜 더 나은 사회를 위한 경제, 사회, 환경적 전환의 진전은 느려졌는가’라는 발제문을 통해 최근 더욱 심화한 구조적 문제들의 현황을 들여다보고, 그 원인과 탈출구를 조심스레 모색한다.우선 현실. 21세기는 또 다른 ‘자본의 시대’다. 글로벌 국내총생산에서 노동이 차지하는 몫은 2004년 53.7%에서 2017년 51.4%로 줄어들었다. 노동 안에서 편중도 심화했다. 국제노동기구 추정자료(2019)를 보면, 전세계 노동자(급여소득자) 상위 10%는 전체 임금의 48.9%를 받아갔지만 하위 50%의 몫은 6.4%에 그쳤다. 선진국 클럽이랄 수 있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평균 고용률은 1990년 65%에서 2017년 70% 수준으로 높아졌지만, 노동시장 양극화에 따라 ‘중간층’은 크게 줄었다. 또 산업화에도 불구하고 비공식 고용이 크게 늘었다.   지속가능 분야는 어떤가. 유엔은 ‘일자리를 위한 기후행동’(2019.9) 보고서에서 녹색경제로의 전환이 일자리 수백만개를 창출하고, 열 스트레스(기후변화로 인한 온도상승) 증가로 일자리 8천만개가 사라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를 반영하듯 북미와 유럽 등을 중심으로 ‘세대 비관론’이 확산하고 있다. ‘지금 우리 나라의 아이들이 자라서 경제적으로 부모세대보다 어떨까’라는 질문에, 미국에서는 ‘나빠질 것’이란 답이 58%로 ‘나아질 것’(37%)이란 답을 압도했다. 캐나다에서는 그 차이가 69%-24%로 더 벌어졌다. 스페인, 영국, 이탈리아 등 유럽 주요국에서도 ‘나빠질 것’이란 답변은 70%를 오르내렸지만, ‘나아질 것’이란 답은 20%대에 턱걸이했다. 프랑스에서는 ‘나아질 것’이라는 답변 비율이 9%에 그쳤다.  위기는 고조되는데 정책 전환은 왜 지지부진한 것일까. 이상헌 국장은 두 가지를 지목한다. 먼저 불평등에 맞설 법적 개입이나 정치적 결정을 끌어낼 도시 저소득층의 정치적 영향력 축소, 그리고 문제 해결 주체에 대한 신뢰의 위기가 그것이다. 실제 세계 각국에서 기득권층에 포섭돼 지대 추구나 독점을 용인하는 정부에 대한 믿음이 줄어들고 있다. 다자주의가 퇴조하면서 세계가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국가 간 협력 또한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21세기 자본>의 저자 토마 피케티 파리경제대 교수가 최근 지적한, 교육 수준이 높은 엘리트인 ‘브라만 좌파’와 수입·재산이 많은 ‘상인 우파’ 사이 대결로 변질된 정치의 장에서 덜 가진 다수가 소외되는 ‘새로운 현실’도 걸림돌 가운데 하나다.  그럼 어떻게 해답을 찾을까? 문제가 복잡하고 어려울수록 그 해결은 단순한 것일 수 있다. 우선 사회적 자원 배분을 결정하는 정치에서 ‘균형’을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 개인 능력과 목소리를 끌어내는 것에 정책의 초점을 맞추고, 의사결정의 ‘민주화’ 및 ‘참여’ 예산을 대폭 늘리는 방안이 대표적이다. 금융·부동산 시장 등에서 지대 추구를 막기 위한 정교한 제도 설계, 안전과 건강을 최우선시하는 노동환경 구축도 시급하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좌장으로 세션을 이끌어가며, 세계적인 도시사회학자인 사스키아 사센 미국 컬럼비아대 석좌교수와 노나카 도모요 로마클럽 집행위원이 토론자로 참여해 전 지구적 불평등 해소 방안의 중요성, 지속가능한 경영과 기업 경쟁력 강화 등에 대해 논의한다. 서울 성수동에 소셜벤처를 위한 공동공간 헤이그라운드를 연 정경선 루트임팩트 최고상상책임자(CIO)와 정원오 전국 사회연대경제 지방정부협의회장(서울 성동구청장)도 각종 사회문제 해결을 끌어낸 사회혁신 사례, 도시 안 격차문제 해결 등에 관한 제언을 내놓을 예정이다.   이순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수석연구원 hyuk@hani.co.kr한겨레에서 보기:http://www.hani.co.kr/arti/economy/heri_review/913520.html  

기후위기로 비틀린 도시, ‘열린 시스템’이 더욱 절실한 이유

[2019 아시아미래포럼] 기후변화와 도시의 정치·사회적 영향기조강연: 리처드 세넷 런던정경대 명예교수기후변화가 부른 도시의 무질서적응과 개방적 자세 필요‘어떻게 협치를 끌어낼 것인가’도시가 직면한 사회·정치적 과제기후변화에 따라 날로 그 규모와 강도가 커지고 있는 풍수해는 도시를 어떻게 설계하고, 운영해 갈 지 고민하게 한다. 사진은 지난 9월 허리케인 도리안이 엄습했을 때 카리브해의 섬나라 바하마의 프리포트에서 한 소녀가 강아지와 함께 구조되는 모습. AP/ 연합리처드 세넷 런던정경대(LSE) 명예교수는 ‘석학’이라는 이름이 어울리는 르네상스형 학자이다. “하도 사통팔달해서 어떤 모임에서든 다른 참석자를 모두 합쳐도 그의 박식함을 따라가기 힘들다.” <제3의 길> 저자인 앤서니 기든스가 세넷을 평가한 말이다. 사회학뿐 아니라 건축, 디자인, 음악, 예술, 역사, 문학, 정치, 경제 등에 두루 조예가 깊다. 국내에 번역된 그의 저서 <장인>, <투게더>, <신자유주의와 인간성의 파괴>, <불평등 사회의 인간 존중> 등이 다루는 주제만 봐도 그의 생각의 폭과 깊이를 알 수 있다. <겁 없이 울어댄 개구리>를 포함해 소설책도 세 권 냈다.  세넷은 아시아미래포럼 첫날인 23일 오전 기조 연사로 무대에 올라 ‘기후변화와 도시의 정치·사회적 영향’을 주제로 강연한다. 76살 노학자가 한국 청중과 처음 대면하는 자리다. 그는 <한겨레>에 보낸 이메일에서 “기후변화는 오늘날의 도시가 직면한 가장 긴박한 문제”라며 “이런 환경적 도전이 도시 내부의 사회·정치적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는지를 얘기하고 싶다”고 밝혔다. 사회학자로서 세넷은 도시를 건설하는 방법과 그 속에서 주민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연결하는 연구를 좋아했다. 바둑판 모양의 도로, 수직으로 올라간 빌딩 등 직선의 도시에서 ‘굽은 나무’로 태어난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초점을 맞추었다. 세넷은 ‘빌’(Ville)과 ‘시테’(Cit?)라는 개념 틀로 이를 분석하고 설명한다. ‘빌’은 물리적 장소로서의 도시이며, ‘시테’는 그 속에서 사람이 어떻게 거주하느냐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엉성하게 설계된 뉴욕의 어느 터널에서 빚어지는 차량 정체는 ‘빌’의 문제이지만, 수많은 뉴욕시민이 아침부터 일어나 터널을 지나 달려야 하는 무한경쟁은 ‘시테’의 문제이다. 최근 국내에 번역돼 출간될 예정인 그의 책 <짓기와 거주하기: 도시를 위한 윤리>(김영사)에서도 이런 틀로 도시를 들여다본다. 세넷이 보기에 ‘빌’과 ‘시테’는 비대칭이어서 고통스럽다. 예를 들어, 서울역 새 청사를 아무리 현대적으로 만들어도 노숙인은 저녁이면 여전히 골판지로 텐트를 친다. 그래서 세넷은 ‘열린 도시’(Open City)의 미덕을 강조한다. 이는 복잡성, 모호성 그리고 불확실성을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것으로, 칸트가 말한 “인간이란 ‘비틀린 재목’으로는 곧은 물건을 절대 만들어낼 수 없다”는 통찰에 바탕을 두고 있다. 도시는 “수십개의 언어를 쓰는 다양한 성분의 이민자로 가득하기에” 또 “그 속의 불평등이 너무나 확연하기에” 비틀려 있다. 도시를 바라보는 세넷의 이런 접근법은 그가 1970년대에 쓴 <무질서의 효용>(다시.봄)에서부터 일관된 흐름이다. 이 책에서 그는 “질서정연하지만 단조로운 삶을 살 것인가, 무질서하지만 생기있는 삶을 살 것인가”라고 물으며 “다양성과 창조적인 무질서를 구성원 스스로가 통합해 가는 도시, 살면서 만나는 갖가지 시련과 도전에 적절하게 대처하는” 도시를 만들자고 제안한다.리처드 세넷. <한겨레> 자료사진  세넷에게는 기후변화도 도시의 비틀림 가운데 하나이다. 그 격동과 불확실성은 어느 도시에서든 파열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2014년 10월9일치)에 한 기고에서 세넷은 2012년 10월 말 자메이카와 쿠바, 미국 동부 해안에 상륙해 해변은 물론 내륙에도 큰 타격을 준 대형 허리케인 샌디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샌디는 폭풍의 강도나 영향이 미친 범위에서 그 앞의 어떤 허리케인보다 무시무시했다. 언론은 기후변화가 몰고 온 재앙이라고 보도했다. 폭풍이 지난 뒤 바닷가 주민들은 살던 곳을 떠나기보다는 재건을 원했다. 지역사회도 이를 위해 벽을 세우고 둑을 쌓는 비용을 낼 의사가 있었다. 하지만 ‘디자인을 통한 재건’(Rebuild by Design)이란 프로그램이 내린 과학적 결론은 이런 대응책은 지속가능하지 않고, 일부 지역은 급속도로 해체되고, 주민은 흩어지며, 어떤 곳은 버려진 지역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세넷은 이를 ‘완화’(mitigation)와 ‘적응’(adaptation)의 차이라 규정한다. 둑을 쌓아 사람들을 집으로 돌아오게 하는 재건이 도시를 계속 유지하려는 ‘완화’ 전략이라면, ‘적응’ 전략은 도시의 많은 것을 해체하려는 것이다. 기후변화에의 ‘적응’은 인간이 통제하기 어려운 힘 때문에 도시 형태의 통일성이 변할 수 있다는 얘기다. 기후위기는 근대 이후 인간이 자연을 대한 방식인 ‘통제’(control)를 까다롭게 만든다. “예측 불가능함”을 특징으로 하는 자연의 변덕은 우리에게 미래를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도록 강제한다. 이때 필요한 것이 “열린 시스템”의 논리다. ‘적응’하기 위해 도시는 더는 정연할 수 없다. 정치적으로 볼 때 ‘완화’와 ‘적응’의 차이는 한 도시가 토론과 투표로 무언가를 결정하는 것과, 자연의 힘에 순응해 정책을 정하는 것 사이의 간극이다. 그는 “자연은 비민주적이다. 투표와 포용은 기후변화라는 사실을 바꿀 수 없다”며 “집단의지는 적응 전략과 무관하다”고 말한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세넷은 기후변화가 불러온 도시의 무질서를 인정하고 적응해 가되 좀더 개방적인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런 삶이 가능하도록 ‘협치’(governance)를 어떻게 끌어낼 것인지가 도시가 직면한 사회적·정치적 과제이다. 세넷은 “일부 지역은 물을 제한 급수하는 법을 제정하고, 홍수에 노출된 일부 지역을 포기하는 전략을 세우며, 더는 석탄을 태워서 발전할 수 없으므로 전기를 제한 송전할 수도 있는” 생각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분명한 것은 우리가 오래된 습관을 고치는 걸 미룰수록 문제는 더 악화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세넷은 1943년 1월1일 미국 시카고에서 공산주의자 아버지와 노동운동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세넷은 아버지 얼굴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가 태어나고 몇 달 뒤 스페인 내전에 참전한 아버지가 그곳에서 만난 여전사와 사랑에 빠져 모자를 두고 떠나갔기 때문이다. 그는 생활보장 대상자로 흑인 빈민, 전쟁 부상자들과 함께 공동주택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다. 매카시즘이 극성을 부리던 당시, 좌파 아버지를 둔 그의 가족은 감시 대상이었다. 20대에는 미국 신좌파 운동에 참여했으나 이 운동이 반지성주의로 치닫는 데 실망해 한때 우파로 전향했다 돌아오기도 했다. 세넷은 13살에 첼로 연주회를 열 정도로 음악에 재능을 보였다. 하지만 불행히도 19살 무렵 첼리스트의 꿈을 접어야 했다. 손목뼈에 난치병이 생겨 더는 활을 당길 수 없게 돼서였다. 좌절의 나날을 보내던 세넷에게 하버드대 한 사회학 교수가 입학을 제안하면서 사회학도로서 새로운 인생이 열린다. 1960년대에는 한나 아렌트에게 배우기도 했다. 첼리스트를 꿈꾸었던 사회학자 세넷은 활 대신 펜을 쥐고 <장인>(21세기 북스)이란 책을 써 내려간다. 인류 문명을 직조해왔으나 이제는 잊히고 있는 ‘생각하는 손’을 다룬 이 책은 헤겔상, 스피노자상을 수상한 세넷의 대표작이 됐다. 이후 세넷은 여러번 팔목 수술을 받은 덕에 다시 첼로를 켤 수 있게 됐고, 가끔 동호인들과 연주를 즐긴다고 한다.  △리처드 세넷 1943년 미국 시카고에서 출생 하버드대 미국문명사 박사 뉴욕대 인문학 교수 현 런던정경대(LSE) 사회학 명예교수 현 유엔 도시와 기후변화 프로젝트 선임자문관 주요 저서: <무질서의 효용>, <살과 돌>, <신자유주의와 인간성의 파괴>, <불평등 사회의 인간 존중>, <뉴 캐피털리즘>, <장인>, <투게더>, <짓기와 거주하기: 도시를 위한 윤리> 이봉현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bhlee@hani.co.kr한겨레에서 보기:http://www.hani.co.kr/arti/economy/heri_review/913517.html 

환경 위협에 더 취약한 빈곤층, 이대로 둘 건가

[2019 아시아미래포럼] 환경 위기와 건강 불평등기조강연: 마르코 마르투치 세계보건기구 아·태 환경보건센터장유럽 기후변화 요인 사망자 보니소득 상하위 위험률 격차 ‘5배’환경·건강 불평등 구조 파악 시급국가 아우른 세계적 조치 필요석탄화력발전소 등이 유발한 미세먼지가 건강에 큰 위협이 되고 있다. 미세먼지 수치가 높아진 날 서울 반포한강시민공원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가 뿌옇게 보이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화석연료는 우리를 죽이고 있습니다.” 환경 시민단체 활동가의 구호가 아니다. 지난해 8월 폴란드 카토비체에서 열린 유엔기후협약회의(COP24)에서 세계보건기구(WHO)가 ‘건강과 기후변화’ 특별보고서를 발표하며 서두에 올린 말이다. 세계보건기구는 일찍이 기후변화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주목하고 관련된 연구와 국제사회의 인식을 높이는 노력을 해왔다. 1991년 독일에 설립된 유럽 환경보건센터를 시작으로 대륙별로 연구센터를 설립해 구체적인 데이터를 모아 분석해 나가고 있다. 올해 서울에도 아시아태평양 지역 최초로 세계보건기구 산하 아시아태평양 환경보건센터가 설립됐다. 아태 환경보건센터장을 맡은 마르코 마르투치 박사는 세계보건기구에서 이십년 넘게 환경문제와 건강의 관계를 연구해온 질병 역학 전문가다. 23일 아시아미래포럼 첫날 연사로 나서 ‘기후변화가 인류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주제로 강연한다. 그는 유럽 환경보건센터에서 유럽 전역의 기후변화 관련 데이터를 모으고 건강과의 연계성을 분석하는 작업을 주도해왔다. 미세먼지 등 대기오염, 매립지, 해양오염 등 환경 분야별 데이터를 정량화하고 분석하는 대규모 프로젝트였다. 우리가 매일 아침 확인하는 미세먼지 예보 기준도 이 프로젝트에서 처음 제시됐다. 마르투치 박사는 <한겨레>와 한 서면 인터뷰에서 “각국 정부는 환경문제가 심각하다는 건 알고 있지만, 얼마나, 어떤 문제가 발생할 거라는 것은 잘 모르고 있다”며 “국가·지역별로 기후위기와 건강과 관련된 데이터를 정량화하고 평가·비교하는 연구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밝혔다.마르투치 센터장의 최근 연구 주제는 기후변화와 건강 불평등의 문제로 넓혀지고 있다. 그는 저소득 계층이 기후변화 등 환경 위협에 더 취약하다며 시급히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가 공동연구에 참여해 올해 6월 나온 ‘유럽의 환경 건강 불평등’ 보고서의 결과도 이런 주장을 뒷받침해준다. 유럽에서 기후변화와 같은 환경 요인으로 숨진 사람들을 분석해보니 소득 하위 계층이 상위 계층보다 사망 위험이 5배 높다는 결과가 나왔다. 마르투치 센터장은 “기후변화에 책임이 상대적으로 적은 계층이 오히려 더 많은 건강 위협에 놓인 ‘환경 불평등’의 대표적 사례”라며 “기후변화에 취약한 집단을 찾아내는 등 환경 불평등의 구조를 파악하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환경 불평등은 국가 안에서뿐 아니라 국제관계에서도 쉽게 목격된다. 해수면 상승 등 기후변화로 생존의 위험에 처한 남태평양 제도 국가들이 그에 합당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세계보건기구는 9월 열린 유엔 기후행동 정상회의에서 각국 정상에게 개도국의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재정지원 등 국제적 협력을 요청했다. 마르투치 센터장도 “기후변화에 따른 환경과 건강 불평등은 지역과 정부, 국가 등 전 지구적 단계에서 조치를 취해야만 해결이 가능한 문제”라며 국내외 협력을 바탕으로 한 실천을 강조했다. 박은경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시민경제센터 선임연구원 ekpark@hani.co.kr한겨레에서 보기:http://www.hani.co.kr/arti/economy/heri_review/913513.html

‘축출의 현장’ 글로벌 대도시에서 연대와 재생 동력 찾아야

[2019 아시아미래포럼] 왜 지구적 불평등 해소에서 출말해야 하나기조강연: 사스키아 사센 컬럼비아대 석좌교수20%엔 달콤하나 80%엔 쓰디쓴대도시의 불평등 임계치 넘어서새계경제 연결망 갖춘 다양성은‘다른 얼굴의 도시’ 만들 자양분사스키아 사센 컬럼비아대 석좌교수는 2014년에 나온 최근작 <축출 자본주의>에서 21세기 세계화와 도시, 불평등을 연결하는 분석틀을 발전시켰다. 사진은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빈민가 모습. 위키미디어 코먼스사스키아 사센 미국 컬럼비아대 석좌교수는 도시를 열쇳말 삼아 세계화와 불평등 문제에 오래도록 매달려온 진보 성향의 대표적인 도시사회학자다. 올해 아시아미래포럼 첫날 오후 기조강연 세션에서 ‘왜 지구적 불평등 해소에서 출발해야 하나’를 주제로 연단에 선다. 그는 자본주의적 세계화가 도시와 이민, 국가 등의 주제와 구체적으로 어떻게 관련을 맺는지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여왔다. 그의 남다른 생애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1947년 네덜란드에서 태어난 사센은 가족을 따라 아르헨티나와 이탈리아 등지를 옮겨다니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의 폭넓은 시야, 도시문제에 대한 깊은 관심, 이민과 불평등에 대한 원초적 탐구열 등은 다양한 지역을 두루 경험한 독특한 성장 환경에서 싹텄다. 게다가 사센은 모국어인 네덜란드어를 비롯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독일어, 영어 등 6개 국어에 능통할뿐더러 러시아어와 일본어까지 습득했다. 여러모로 글로벌 도시 연구의 대가다운 풍모다. 1994년 초판이 나온 <세계경제와 도시>(국내 번역서는 2016년 출간)는 대표작으로 꼽힌다.글로벌 도시의 현실을 불평등과 연결지으려는 사센의 학문적 노력은 198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꽃을 피웠다. 국경을 넘나드는 서구의 대기업을 중심으로 세계화의 장밋빛 환상이 널리 퍼지던 시절이다. 하지만 그가 어려서부터 체험하고 지켜본 글로벌 대도시의 현실은 ‘국경 없는 세계’라거나 ‘세계는 평평하다’ 따위의 장밋빛 담론과는 한참 거리가 멀었다. 지구적 차원에서 확대되는 불평등은 여러 나라의 주요 대도시 안에서도 계층 간 격차의 골을 더욱 깊게 패게 했다. 거대 기업과 금융부문 주도로 이뤄지는 세계화, 그리고 그와 연관된 도시개발이 아닌 대안적 도시 발전 모델에 대한 관심도 자연스레 커졌다.이러한 사센의 문제의식은 특히 2014년에 나온 최근작 <축출 자본주의>(국내 번역서는 2016년 출간)에서 한 단계 발전된 형태로 드러나 있다. ‘축출’(expulsion)은 그가 21세기 세계화와 도시, 그리고 불평등을 연결하는 핵심 개념이다. 그는 ‘복잡한 세계경제가 낳은 잔혹한 현실’이란 부제를 단 이 책에서 지구적 차원의 근대성은 결국 모든 종류의 체계적 축출에 의해 특징지어진다는 독특한 명제를 한층 발전시켰다. 거대 글로벌 기업 주도로 세계 곳곳의 광물자원과 수자원 등이 무한정 파헤쳐지지만, 그 혜택은 안락한 삶을 누리는 글로벌 대도시의 소수 계층에게 고스란히 돌아갈 뿐이다. 이 과정에서 대도시 내부의 계층 간 격차가 더욱 벌어지는 것은 물론, 멀리 떨어진 지구촌 곳곳의 전통적 삶의 방식이 파괴되어 간다. 축출은 자연과 환경을 넘어 대다수 도시민의 삶을 공격하는 세계화의 또 다른 얼굴일 뿐이다. 미래세대와 이주노동자 역시 축출의 광풍에서 자유로운 건 아니다.사스키아 사센과연 무엇을 해야 할까? 사센 교수는 이번 포럼 기조강연을 통해 이런 세상은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한국 독자들에게 전한다. 두 가지 이유에서 그렇다. 우선 최근 기후위기에 대한 공동 대응에서 알 수 있듯이 미래세대를 중심으로 지금 같은 삶에 대해 ‘아니요’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또 한편 대부분의 선진국 대도시 안에서도 불평등이 임계치를 넘어서고 있다는 징후가 뚜렷하기 때문이다. 그는 특히 지구촌을 넘나드는 금융자본에 휘둘리는 부동산시장의 냉혹한 현실을 눈여겨볼 것을 주문한다. 여러 나라의 대도시에서 삶의 거처인 집이 단지 투자와 자산 증식의 대상으로 탈바꿈하면서 고작 상위 20% 계층만이 달콤한 열매를 누리고 있다. 나머지 80%를 배제하는 이런 얼굴의 세계화는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사센의 관심은 이제 ‘다른 방식으로 도시를 재구성하기’로 확대된다. 도시란 분명 축출의 현장이지만, 동시에 연대와 재생의 터전이다. 세계화에서 건져내야 할 소중한 가치이기도 하다. 세계경제의 연결망에 깊숙이 포섭된 글로벌 대도시에서부터 외려 변화의 싹은 커나갈 수 있다. 세계적으로 몰아치는 경제민족주의와 포퓰리즘의 광풍에 맞서 ‘다른 얼굴의’ 도시를 만들어낼 동력도 여기에서 찾아야 한다. 글로벌 대도시만의 다양성은 도시재생의 또다른 자양분이다. 이번 아시아미래포럼에서 그가 한국 독자들에게 전할 메시지에 유독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사스키아 사센 1947년 네덜란드에서 출생. 이탈리아와 아르헨티나에서 성장 노터데임대 사회학 석·박사 시카고대 사회학과 교수 현 컬럼비아대 도시계획학 석좌교수 주요 저서: <노동과 자본의 모빌리티>, <글로벌 시티: 뉴욕·런던·도쿄>, <세계경제와 도시>, <축출 자본주의> 등 다수최우성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morgen@hani.co.kr한겨레에서 보기:http://www.hani.co.kr/arti/economy/heri_review/913512.html 

패권각축 동아시아, 지속가능한 평화 찾자

[2019 아시아미래포럼] 동아시아의 새로운 질서와 평화기획세션신도 에이이치“세계 질서의 축, 아시아로 이동”사회·경제적 관계 ‘일대일로’ 중심빈곤 해소 등 ‘신뢰의 질서’ 강조중국은 물론 한국· 일본 참여 요구왕후이“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새 기점”복합적 요소 작용 갈등 해법으로‘전면적 평화’ 추진 동력 한국 주목중국의 일대일로 국제협력 정상회의 마지막 날인 4월27일 오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주재하는 원탁 정상회의가 열렸다. 이날 회의에는 37개국과 국제기구 지도자 40명이 참석했다. 연합뉴스 동아시아가 심상치 않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이 계속되고, 한국 대법원의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판결에 대한 일본의 무역보복과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종료 결정 등 갈등이 장기화되고 있다. 중국과 홍콩 사이의 범죄인 인도 조례인 ‘송환법’에서 시작된 홍콩 시위는 복면금지법 철회, 행정장관 직선제 등을 요구하며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홍콩 정부의 폭력적인 진압으로 사태가 더욱 심각해지는 등 동아시아 곳곳에서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  동아시아는 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70년 동안 미국을 중심으로 중국, 일본의 패권 경쟁의 장이었다. 과거사를 지우고 다시 우경화의 길을 가고 있는 일본, 일본과 역사 갈등을 겪고 미국의 견제를 받으면서도 폭발적인 경제성장으로 아시아의 일인자로 우뚝 선 중국, 그리고 두 나라에 대한 전략을 수정해가며 동아시아를 영향력 아래 두려는 미국, 북한 핵폐기 등 한반도의 평화체제를 만들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한국. 이렇듯 오랜 시간 갈등과 긴장 관계를 이어오고 있는 동아시아 나라들이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새로운 평화의 길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아시아미래포럼 첫날인 23일 오후 신도 에이이치 일본 쓰쿠바대 명예교수와 왕후이 중국 칭화대 교수(인문학부)가 ‘동아시아의 새로운 질서와 평화’라는 주제로 대담을 한다. 동아시아의 과거와 현재를 돌아보고, 새로운 길을 찾아보자는 취지다. 신도 교수는 미국 외교, 아시아지역 통합, 국제정치경제학 전문가로 현재 국제아시아공동체학회 대표, ‘일대일로’ 일본연구센터 센터장도 맡고 있다. 신도 교수는 1979년 ‘미국이 일본 본토 점령을 끝낸 뒤에도 오키나와에 대한 군사점령을 계속해주기를 희망한다’는 등의 내용이 담긴 히로히토 일왕의 메시지를 발굴한 논문 ‘분할된 영토’를 잡지 <세카이>에 실어 파문을 일으켰다. 논문이 ‘천황’을 직접적으로 겨냥하고 있어, 성역 없이 연구하는 신도 교수의 성격을 엿볼 수 있다.  신도 교수는 최근 ‘팍스 아메리카나’, 즉 미국 주도의 세계질서가 끝났고, 세계의 축이 아시아로 옮겨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중국의 ‘일대일로’(육상·해상 실크로드)를 염두에 둔 말이다. 일대일로는 2013년 시진핑 주석이 카자흐스탄을 방문해 처음 제기한 구상으로 고대 실크로드처럼 내륙과 해양에 다양한 길을 만들어 유라시아와 아프리카 대륙을 하나로 연결하자는 것이다.  신도 교수는 ‘일대일로’를 중심으로 아시아의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군사적 동맹이 아닌 사회·경제적 관계를 바탕으로 신뢰를 쌓아 빈곤을 해소하고 테러 가능성을 낮추며, 지구 환경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가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 중국뿐만 아니라 일본·한국의 적극적 참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신도 교수와 대담할 왕후이 교수는 중국 ‘신좌파 그룹’의 대표적 이론가로, 시진핑 정부 국정철학에 이론적 토대를 제공하는 진보 지식인으로 평가받는다. 신좌파는 낡은 형태의 사회주의에 반대하지만, 중국 정부가 충분히 사회주의적이지 않다고 생각한다. 왕 교수는 서구 세계사의 관점에서 벗어나 중국 및 동아시아의 경험과 독자성에 주목하고 있다.  왕 교수는 동아시아의 갈등이 냉전, 탈냉전 등 여러 복합적인 요소가 동시에 터져 나오면서 발생한 것이라고 진단한다. 홍콩, 대만 문제에 대해 왕 교수는 최근 발표한 글에서 “중국 대륙 쪽에서 더 공평하고, 더 융합적이며 더 문화적 다양성을 존중하고, 사람들에게 창조적 활력을 제공할 수 있는 발전 경로를 개발하지 못한다면 무거운 역사의 부담을 뚫고 나아가기 어려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반도의 변화도 주목하고 있다고 했다. 왕 교수는 “지난해 한반도는 평화로 전환하는 하나의 계기를 얻었다. 이는 동아시아의 전면적 평화를 추진하는 새로운 기점이기도 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 “세계든, 지역이든 모두 순식간에 여러 변화가 일어나는 시기다. 갖가지 힘을 동원해 평화 프로세스를 추진해야 한다”고 밝혔다. 중국, 일본, 한국, 북한, 러시아 등이 새로운 지역 협력을 시작해, 현재 미국 패권이 주도하는 질서를 뛰어넘어야 한다는 제안이다.  포럼은 박명림 연세대 대학원 교수(지역학협동과정)가 좌장을 맡고, 문태훈 지속가능발전위원회 위원장(중앙대 도시계획부동산학과 교수)이 토론자로 참석한다. 문 위원장은 평화 유지와 지속가능한 발전의 연결고리를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견을 펼칠 예정이다. △신도 에이이치 1939년 일본 홋카이도 출생 교토대 법학부 졸업 쓰쿠바대 교수, 와세다대 아시아연구기구 객원교수 현 쓰쿠바대 명예교수, 국제아시아공동체학회 대표, ‘일대일로’ 일본연구센터 센터장 미국 외교, 국제정치경제학, 아시아지역 통합 등 전문가 주요 저서: <현대미국 외교론―우드로 윌슨 국제질서> <분할된 영토, 또 하나의 전후사> <동아시아 공동체를 어떻게 만들까> <일대일로에서 유라시아 신세기의 길> △왕후이 1959년 중국 장쑤성 양저우 출생 베이징 중국사회과학원에서 루쉰 연구로 박사학위 중국사화과학원 문학연구소 연구원, 하버드대 방문교수 현 칭화대 교수 겸 인문사회고등연구소장 주요 저서: <근대 중국 사상의 흥기> <탈정치화의 정치: 짧은 20세기의 종결과 90년대> <절망에 반항하라> <상상하는 아시아의 정치> 김소연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수석연구원 dandy@hani.co.kr한겨레에서 보기:http://www.hani.co.kr/arti/economy/heri_review/913510.html 

대위기의 시대, 공존해야 생존한다

[2019 아시아미래포럼] 대전환: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새로운 합의기획 취지재난영화 방불케 하는 기후변화극단적으로 치닫는 불평등 사회이대로라면 ‘파국의 시대’ 불가피각국 정부·기업·시민사회 협력해난제 극복 ‘합의의 시대’ 써나가야디지털 기술이 바꿀 ‘삶의 질’부터녹색전환·포용금융·공동체 경제 등석학들과 ‘지속가능한 미래’ 설계그래픽 박향미 기자 phm8302@hani.co.kr 산업혁명 이후 근대 세계를 <혁명의 시대>, <자본의 시대>, <제국의 시대>의 3부작으로 정리한 영국의 사학자 에릭 홉스봄은 노년에 현대사를 기술한 책을 추가하면서 <극단의 시대>라 이름 붙였다. 새 천년을 앞둔 시점에서 책을 마무리한 그는 “20세기는 아무도 해결책을 갖지 못한 문제를 남기는 것으로 끝났다”며 “과거나 현재를 연장함으로써 (…) 세번째 천년기를 건설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실패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다시 100년이 지나 2100년 언저리에서 홉스봄 같은 사학자가 새 밀레니얼의 첫 100년을 정리한다면 그 책 제목은 무엇일까? 첫째는 ‘파국의 시대’라 지을 가능성이다. 21세기는 불평등 같은 경제·사회 위기와 기후변화라는 생태·환경 위기를 안고 출발했으나, 인류는 협력보다는 각자도생으로 치달았다. 생산과 소비를 무한히 반복해야 돌아가는 ‘외발자전거 경제’는 그 앞 세기와 달라진 게 없었고, 온실가스 배출은 늘어만 갔다. 대기는 빠르게 더워졌다. 시베리아 동토가 녹으며 메탄가스가 치솟기 시작했고 기후변화는 손쓸 수 없이 가속됐다. 북극과 남극의 얼음층, 알프스 등의 빙하가 녹으며 해수면이 빠르게 올라가 뉴욕, 상하이, 도쿄 같은 바닷가 인구밀집 도시는 살기 어려운 곳이 됐다. 홍수와 가뭄, 식량부족, 대기오염, 창궐하는 전염병, ‘1 대 99’를 넘어 악화하는 불평등 등으로 사회계급, 계층 간 아귀다툼은 심해졌다. 기후변화로 뉴욕 한복판이 얼어붙는 영화 <투모로우>, 경제·사회·환경적 위기가 극단화한 상황을 묘사한 <설국열차>의 내용이 현실이 됐다. 하루하루를 힘겹게 보내는 사람들은 수만년 인류 역사를 400여년 만에 파국에 이르게 한 자신의 몽매함을 한탄한다.두번째는 ‘합의의 시대’라는 제목이 붙는 것이다. 이 책에서 21세기는 세계가 협력해서 난제를 극복한 시대로 규정될 것이다. 많은 것이 극단으로 치닫던 앞 세기와 달리 생명을 주는 지구의 한계 안에서 생산과 분배 방식을 재설계하면서 모두의 ‘피어나는 삶’이 가능해졌다. 2015년 유엔에서 환경과 경제, 사회 분야의 균형 있는 발전을 강조하며 193개국이 합의한 17개 지속가능발전목표(SDGs)가 출발점이었다. 이후 여러 나라는 실정에 맞는 실천 로드맵을 만들어 정부, 기업, 시민사회가 협력해 실천해갔다. 기후변화와 관련해서는 2015년 합의한 파리기후변화협약 및 권위 있는 기상학자들의 모임인 유엔 기후변화 정부간 협의체(IPCC)가 내놓은 경고와 제안이 가이드라인이 됐다. 중국 다음으로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미국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 뒤 파리협약을 탈퇴하는 등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피부에 와닿는 기후의 변화는 부정한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2019년 가을 유엔 무대에 서서 “대규모 멸종을 앞두고 있는데 당신은 돈과 영원한 경제성장이라는 꾸며낸 이야기만 늘어놓는다”고 한 스웨덴의 청소년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16)의 절규는 큰 울림을 줬다. 이후 청소년 결석시위와 시민사회의 비상행동이 세계 여러 나라에서 이어졌고, 기후변화 대응은 여러 나라의 선거에서 가장 중요한 의제로 떠올랐다.   현대사회의 주요한 주체인 기업은 맹목적 이윤추구에서 벗어나 사회와 환경, 다양한 이해관계자를 함께 고려하는 경영을 하겠다고 2019년 여름 선언했다. 환경과 사회 위기의 요인으로 지목되던 극단의 시장주의는 점점 발붙이기 어려워졌다. 페이스북, 애플, 구글 등 거대기업이 앞장서 석탄·가스와 같은 온실가스 전기를 버리고 태양광·풍력을 100% 쓰는 에너지전환을 이뤄갔다. 무엇보다 각국이 2050년까지 탄소배출 제로에 이르겠다는 약속을 실천한 결과, 지구 기온은 과학자들이 경고한 수준인 산업화 이후 상승폭 1.5도 직전에서 겨우 멈췄다. 모든 사람의 인간적 권리를 보장하는 경제와 사회 체제의 밑돌이 놓이며 불평등도 차츰 완화되어갔다.  인류를 점점 압박하는 위기는 지금 우리에게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묻고 있다. ‘일의 미래’ ‘불평등 극복’ 등 한국 사회의 의제를 한발 앞서 제시해온 한겨레 아시아미래포럼이 10회째를 맞는 올해 지속가능한 미래를 설계한다. ‘대전환: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새로운 합의’를 주제로 세계가 직면한 경제·사회적 위기와 생태·환경 위기 앞에서 여러 사회 주체와 나라들이 어떤 합의를 해야 하는지 집중적으로 논의한다. 세계적인 미래학자 제러미 리프킨 미국 경제동향연구재단 이사장은 특별 영상강연을 통해 디지털 및 자동화 기술 발달이 사회와 경제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를 보여주고, 위기의 시대에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를 제시한다. 노동 및 도시 연구의 석학 리처드 세넷 영국 런던정경대 명예교수는 기후변화가 도시의 삶에 어떤 정치·사회적 영향을 끼치는지 집중 조명한다. 도시사회학의 거장 사스키아 사센 미국 컬럼비아대 석좌교수는 세계화된 도시에서 소외된 취약계층의 문제를 다룬다. 첫날과 둘째 날의 다양한 세션을 통해 한국 사회의 녹색전환, 포용 금융, 도시의 공동체 경제 등 지속가능성과 관련한 다양한 이슈를 조망한다. 이와 함께 한반도 주변 정세가 구한말을 연상케 하는 격변의 시기라는 점에서 중국의 왕후이 칭화대 교수, 일본의 신도 에이이치 쓰쿠바대 명예교수가 동아시아의 새로운 질서와 평화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도 마련된다.   이봉현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bhlee@hani.co.kr한겨레에서 보기:http://www.hani.co.kr/arti/economy/heri_review/913509.html 

“중국은 더 공평하고, 더 융합적인 발전 경로를 찾아야 한다”

【제10회 아시아미래포럼 기획】 미리 만나보는 주요 연사④왕후이 중국 칭화대 교수왕후이 중국 칭화대 교수. 사진 한림대 일본학연구소 제공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이 확전을 멈추고 1단계 ‘스몰딜’(부분 합의)에 이르렀으나,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것이 아니어서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나 마찬가지다. 중국과 홍콩 사이의 범죄인 인도 조례인 ‘송환법’에서 시작된 홍콩 시위는 복면금지법 철회, 행정장관 직선제 등을 요구하며 격렬하게 저항하고 있다. 이처럼 최근 중국을 둘러싼 동아시아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갈등과 긴장을 완화하고 동아시아의 평화체제를 만들기 위해서는 중국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왕후이 중국 칭화대 교수(인문학부)는 아시아미래포럼 첫날인 이달 23일 오후 ‘동아시아의 새로운 질서와 평화’라는 주제로 신도 에이이치 일본 쓰쿠바대 명예교수와 특별대담을 한다. 왕 교수는 한국에 여러번 방문해 강연을 하는 등 우리에겐 친숙한 학자다. 중국 ‘신좌파 그룹’의 대표적 이론가로, 시진핑 정부 국정철학에 이론적 토대를 제공하는 진보 지식인으로 평가받는다. 신좌파는 낡은 형태의 사회주의에 반대하지만, 중국 정부가 충분히 사회주의적이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는 동아시아 갈등의 원인을 짚고 평화와 화해를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논의할 예정이다. 왕 교수는 동아시아의 갈등이 냉전, 탈냉전 등 여러 복합적인 요소가 동시에 터져 나오면서 발생한 것이라고 진단한다. 눈앞에 닥친 홍콩, 대만 문제만 해도 식민주의, 냉전 등 역사의 유산이 고스란히 녹아 있어 접점 찾기가 쉽지 않다. 왕 교수는 <한겨레>에 보낸 전자우편에서 “중국 대륙과 대만, 홍콩 사이의 곤경은 역사의 산물일 뿐만 아니라, 당대 신자유주의 조건하에서 불평등한 발전의 결과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중국이 더 공평하고, 더 융합적이고, 더 문화적 다양성을 존중하고, 생태보호에 더 유리하고, 사람들에게 창조적 활력을 제공할 수 있는 발전 경로를 개발하지 못하면, 무거운 역사적 부담을 뚫고 나아가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실제 송환법, 복면금지법 등에 반발하며 저항하고 있는 홍콩의 경우 그 이면에 중국이 홍콩민의 민심을 존중하지 않고 점점 더 강압적으로 변한 데 대한 분노와 공포가 있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중국은 1997년 홍콩 반환 협정에 따라 2047년까지 일국양제(한 국가 두 체제)로 홍콩의 자치권을 인정해야 한다.  아시아를 중심으로 새로운 실험을 하고 있는 시진핑 주석의 ‘일대일로’(육상·해상 실크로드)도 중국의 패권 전략이자, 사업에 참여한 개발도상국이 막대한 건설 비용으로 ‘부채의 덫’에 빠졌다는 비판도 나온다. 일대일로는 2013년 시진핑 주석이 카자흐스탄을 방문해 처음 제기한 구상으로 고대 실크로드처럼 내륙과 해양에 다양한 길을 만들어 유라시아와 아프리카 대륙을 하나로 연결하자는 것이다.  왕 교수는 “일대일로는 참가국의 주권과 자율성을 존중하고 경제와 무역뿐 아니라 교육, 문화, 인도주의 측면을 중시하는 세계화 이니셔티브”라고 긍정적인 평가를 하면서도 “이상은 훌륭한데 아직은 경제가 지배적인 추진력이 되고 있다”고 우려 섞인 시선을 드러냈다.  왕 교수는 북-미 정상회담 등 한반도의 평화 체제에도 상당히 주목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지난해 한반도는 극히 위험한 군사대치 상황에서 평화로 전환하는 하나의 계기를 얻었다. 이 계기는 아마 동북아의 전면적 평화를 추진하는 새로운 기점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 “세계든, 지역이든 모두 순식간에 여러 변화가 일어나는 시기다. 갖가지 힘을 동원해 평화 프로세스를 추진해야 한다”고 밝혔다. 중국, 일본, 한국, 북한, 러시아 등이 새로운 지역 협력을 시작해, 현재 미국 패권이 주도하는 질서를 뛰어넘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왕후이 약력 1959년 중국 장쑤성 양저우에서 출생 베이징 중국사회과학원에서 루쉰 연구로 박사학위 중국사화과학원 문학연구소 연구원, 하버드대 방문교수 현 칭화대 교수 겸 인문사회고등연구소장 주요 저서: <근대 중국 사상의 흥기> <탈정치화의 정치: 짧은 20세기의 종결과 90년대> <절망에 반항하라> <상상하는 아시아의 정치>   김소연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수석연구원 dandy@hani.co.kr 한겨레에서 보기: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913508.html 

“기후변화 대응위해 불확실성 포용하는 ‘열린 도시’로 가야”

[제10회 아시아미래포럼 기획] 미리 만나보는 주요 연사② 리처드 세넷 런던정경대 명예교수리처드 세넷 <한겨레> 자료사진리처드 세넷 런던정경대(LSE) 명예교수는 국내에 꽤 많은 저서가 번역됐고, 꾸준히 읽히는 학자다. 좀처럼 강연으로 만나기 힘들었던 그가 올해 아시아미래포럼 연단에 선다. 세넷은 첫날인 23일 오전 ‘기후변화와 도시의 정치·사회적 영향’을 주제로 기조강연을 한다. 그는 <한겨레>에 보낸 전자우편에서 “기후변화는 오늘날의 도시가 직면한 가장 긴박한 문제”라며 “이런 환경적 도전이 도시 내부의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는지를 얘기하고 싶다”고 밝혔다.사회학자로서 세넷은 도시를 건설하는 방법과 그 속에서 주민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연결하는 연구를 좋아한다. 바둑판 모양의 도로, 수직으로 올라간 빌딩 등 직선의 도시에서 ‘굽은 나무’로 태어난 인간이 어떻게 사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세넷이 이를 전개하는 개념 틀이 ‘빌’(Ville)과 ‘시테’(Cit?)다. ‘빌’은 물리적 장소로서의 도시이며, ‘시테’는 그 속에서 사람이 어떻게 거주하느냐는 것이다. 엉성하게 설계된 뉴욕의 어느 터널에서 빚어지는 차량 정체는 ‘빌’의 문제이지만, 수많은 뉴욕시민이 아침부터 일어나 터널을 지나 달려야 하는 무한경쟁은 ‘시테’의 문제이다. 곧 국내에 번역돼 출간될 예정인 그의 책 <짓기와 거주하기: 도시를 위한 윤리>(김영사)에서도 이런 틀로 도시를 들여다본다.세넷이 보기에 ‘빌’과 ‘시테’는 비대칭적이고 비틀려 있어 고통스럽다. 예를 들어, 서울역 새 청사를 아무리 현대적으로 만들어도 노숙인은 저녁이면 여전히 골판지로 텐트를 친다. 그래서 세넷은 ‘열린 도시’(Open City)의 미덕을 강조한다. 이는 복잡성, 모호성 그리고 불확실성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것으로, 칸트가 말한 “인간이란 ‘비틀린 재목’으로는 곧은 물건을 절대 만들어낼 수 없다”는 통찰에 바탕을 두고 있다. 도시는 “수십개의 언어를 쓰는 다양한 성분의 이민자로 가득하기에” 또 “그 안의 불평등이 너무나 확연하기에” 비틀려 있다. 도시를 바라보는 세넷의 이런 접근법은 그가 1970년대에 쓴 <무질서의 효용>(다시.봄)에서부터 일관된 흐름이다. 이 책에서 그는 “질서정연하지만 단조로운 삶을 살 것인가, 무질서하지만 생기 있는 삶을 살 것인가”라고 물으며 “다양성과 창조적인 무질서를 구성원 스스로가 통합해 가는 도시, 살면서 만나는 갖가지 시련과 도전에 적절하게 대처하는” 도시를 만들자고 제안한다.세넷에게는 기후변화도 열린 시스템적 사고가 필요한 도시의 비틀림 가운데 하나다. 기후위기는 근대 이후 인간이 자연을 대한 방식인 ‘통제’(control)를 까다롭게 만든다. “예측 불가능함”을 특징으로 하는 자연의 변덕은 우리에게 미래를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도록 강제한다. 인간이 통제하기 어려운 힘 때문에 도시 형태의 통일성이 변할 수 있다는 얘기다. 기후변화가 불러온 도시의 무질서를 인정하고 적응해가되 좀 더 개방적인 자세가 필요하다고 세넷은 말한다.도시가 직면한 정치적·사회적 과제는 이런 ‘적응’이 가능한 ‘협치’(governance)를 어떻게 끌어낼 것인가다. 세넷은 “일부 지역은 제한 급수하는 법을 제정하고, 상습 홍수 지역은 포기하는 계획을 세우며, 화석연료를 줄이면서 전기를 제한 송전할 수도 있는” 생각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우리가 오래된 습관을 고치길 미룰수록 문제는 더 악화할 것이 분명하다”고 강조한다.세넷은 ‘석학’이라는 이름이 어울리는 르네상스형 학자다. “하도 사통팔달해서 어떤 모임에서든 다른 참석자를 모두 합쳐도 그의 박식함을 따라가기 힘들다”는 게 <제3의 길> 저자인 앤서니 기든스의 평가다. 사회학뿐 아니라 건축, 디자인, 음악, 예술, 역사, 문학, 정치, 경제 등에 두루 조예가 깊다. 세넷은 13살에 첼로 연주회를 열 정도로 음악에 재능을 보였지만, 불행히도 19살 무렵 첼리스트의 꿈을 접어야 했다. 손목뼈에 난치병이 생겼기 때문이다. 학자가 된 세넷은 활 대신 펜을 쥐고 <장인>이란 책을 써 내려간다. 인류 문명을 직조해왔으나 이제는 잊히고 있는 ‘생각하는 손’을 다룬 이 책은 세넷의 대표작이 됐다.△리처드 세넷 약력 1943년 미국 시카고 출생 현 런던정경대(LSE) 사회학 명예교수 현 유엔 도시와 기후변화 프로젝트 선임자문관 주요 저서: <무질서의 효용> <신자유주의와 인간성의 파괴> <불평등 사회의 인간 존중> <뉴 캐피털리즘> <장인> <투게더> <짓기와 거주하기: 도시를 위한 윤리> 등이봉현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bhlee@hani.co.kr한겨레에서 보기: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913215.html 

조명래 “‘온실가스 배출 넷제로 선언’ 이끌어내겠다”

조명래 환경부 장관 인터뷰온실가스 목표치도 절대량으로 전환“녹색전환은 선진국으로의 이행 의미환경가치 근본 변화시킬 정책 펴겠다”“(관행과) 완전히 단절하지 않는 한 (온실가스 문제는) 하루아침에 해결되지 않는다. 정책 전환 비용에 대한 국민의 부담과 수용이 따라야 하지만, 현재 우리 국민의 수용성은 상당히 약하다. 예로 탈원전 정책은 전형적인 패러다임 전환이지만 저항이 많았고, 최근 설악산 오색 케이블카 결정(환경부의 ‘부동의’)도 여러 반대에 직면하지 않았나. 관성화된 우리 사회의 개발주의하에서 얼마나 많은 이가 온실가스 감축을 수용할 수 있겠나. 타협할 수밖에, 점진적으로 할 수밖에 없다. 끊임없이 틈새를 찾아 전환과 변화의 실마리를 만들어내는 것이 필요하다. 그게 환경부 역할이라 생각한다.”조명래 환경부 장관. 환경부 제공 ―파리협약 체제가 출범하는 2021년 이후를 준비하는 올해와 내년이 중요 기점이다. 한국도 대비를 단단히 해야 한다.   “에너지 효율 일본 3분의 1”―우리 시민들은 아직 녹색전환의 필요성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한다.―최근 제철소가 고로 정비 과정에서 대기오염물질을 배출해 문제가 됐던 것도 같은 맥락의 사례 같다.“규범과 잣대가 없던 것인데 논란 이후 기준이 도입됐다. 이후론 더 정교하게, 환경적 문제를 야기하지 않는 방식으로 운영될 것이다. 환경도 좋아지고 근본적으로는 생산자들이 외부 영향을 줄이는 방식으로 공정을 개선하는 노력을 하게 된다. 지금까지는 대기오염 같은 사회적 비용으로 전가됐다. 서구 선진국은 그렇지 않다. 스웨덴의 경우 철강 생산에서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공정을 연구 중이더라. 그리되면 철강 제품의 질도 좋아지고 환경오염 물질도 배출하지 않고 종사자나 지역주민들 건강 문제도 없고 그만큼 경쟁력 있는 제품이 나온다. 국민소득이 많아지고 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한 사회가 되는 것이다. 아직도 우린 그저 생산량만 따지지 제품의 질, 환경의 질에 대해선 기업들이 여전히 내부경제화(자신의 비용으로 떠안으려는 노력)하지 않으려 한다.”―그러면 환경부는 녹색전환을 위해 어떤 정책 수단을 쓰고 있나?“대표적으론 통합허가제가 있다. 이전엔 수질, 대기 등을 다 나눠 각각 기준이 있고 그걸 맞추면 허가해왔는데 이걸 통합했다. 시스템적으로 갖춰야 달성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결국 생산 공정이나 제품, 경영의 친환경적 전환을 유도해내는 굉장히 중요한 수단이자 방법이다. 이 제도에선 인허가 때 컨설팅도 해준다. 어떻게 해야 허가를 받을 수 있는지 먼저 알려주고 유도한다. 통합허가제는 독일과 영국이 산업 녹색화의 주요 수단으로 쓴 제도이기도 하다. 아울러 이 정부의 주요 공약인 ‘국토계획과 환경계획의 통합’도 환경을 존중하는 쪽으로 개발 행정을 바꾸는 수단이다. 전 정부에서 시작했으나, ‘배출권거래제’ 역시 산업 녹색화의 주요 수단이다.”조명래 환경부 장관. 환경부 제공“산업·국토부와 이견 줄어”―하지만 여전히 정부 전체적으로 녹색전환에 대한 의지가 충분치 않아 보인다.“아직까진 환경가치가 정부 정책의 우선 가치가 아닌 게 사실인 것 같다. 개발 패러다임을 완전히 벗지 못했다. 구체 정책으로 들어가면 환경정책은 여전히 산업통상자원부, 국토교통부와 협의해야 한다. 다만 정책의 지향 측면에선 분명 차이가 있다. 과거 정권보다 상대적으로 존중하고 있다. 산업부·국토부와의 ‘정책 미스매치(엇갈림)’나 이견도 과거에 견줘 상당히 줄었다 말할 수 있다.” 세종/박기용 기자 xeno@hani.co.kr

“더 늦기 전에 GDP에서 삶의 질로 패러다임 전환해야”

[제 10회 아시아미래포럼 기획] 미리 만나보는 주요 연사 ① 제러미 리프킨 미국 경제동향연구재단 이사장“문명·경제·사회 근본변화 시점기존의 탄소 기반 시장경제디지털 네트워크 자본주의로”제러미 리프킨 미국 경제동향연구재단 이사장이 지난 9월26일 미국 워싱턴 인근 베세즈다에서 제10회 아시아미래포럼 특별강연 사전 녹화에 이어 이뤄진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열정적으로 발언하고 있다. 양영웅 <뉴스데이> 기자지난 9월26일 오후 미국 워싱턴 인근의 도시, 베세즈다에서 만난 제러미 리프킨 ‘경제동향연구재단’ 이사장은 스스로 생각하는 정체성이 뭐냐는 물음에 “나는 활동가”라고 답했다. 실제 그는 과학과 기술의 변화가 경제와 사회, 환경 등에 끼치는 영향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세계의 여러 현장에 적용하고 실험하는 데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할애한다. 그는 이날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지금은 문명, 경제, 사회의 근본적 변화가 있어야 하는 시점”이라며 “역사상 이처럼 좁은 길은 없었지만 더는 지연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서 그는 “커뮤니케이션과 재생에너지, 그리고 운송 및 이동 등 디지털화한 세 기술의 융합에 따른 인프라 혁명이 절실하며, 이는 일자리 창출은 물론 한계비용이 낮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일으켜 궁극에는 공유경제와 협력적 공유사회를 가져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동안 주창해온 3차 산업혁명과 공유경제에 대한 비전을 되풀이한 것이다. 그는 이런 움직임은 “인류를 국내총생산(GDP)에서 삶의 질로 (패러다임을) 이동”하게 하며 이 전환에 “한국이 리더가 될 것을 희망한다”고 말했다. 리프킨 이사장은 오는 23일 한겨레신문사가 주최하고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이 주관하는 제10회 아시아미래포럼 첫날 영상 특별강연을 한다. 베세즈다 현지에서 이뤄진 이를 위한 사전 녹화 촬영에서 그는 인류가 겪고 있는 두 개의 핵심 위기인 생산성의 몰락과 불평등 증대 등 경제·사회적 위기와 기후변화에 따른 지구의 생태적 위협을 거듭 경고하는 한편, 구시대적인 탄소 문명과 성장지상주의 덫에 갇힌 시장 자본주의의 대전환을 다시금 촉구했다. 그러면서도 “소득 격차를 줄이고 글로벌 경제를 민주화하면서도 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한 사회를 창출하는 탄소 후 시대의 새로운 패러다임이자 경제비전으로의 대전환은 가능”하며, 이 전환은 “거래와 시장경제에 따른 기존의 시장 자본주의를 ‘디지털 네트워크 자본주의’로 이끌 것”이라고 전망했다. ― 지금 인류는 불평등이란 경제·사회적 위기와 기후변화 같은 생태적 위기를 동시에 겪고 있다. 이 두 위기는 어디서 오나? “인류가 구축해온 인프라를 보라. 그 특성을 보면 어떻게 힘이 (우리 사회에서) 분배되는지를 알 수 있다. 평등과 불평등에 대해서도 많이 알아낼 수 있다. 1차와 2차에 걸쳐 이뤄진 산업혁명이 구축한 인프라는 비싼 화석연료 및 원자력의 ‘규모의 경제’를 창출하기 위해 수직으로 통합해야 했다. 그리하여 결국 500개의 글로벌 회사들이 세계 6600만명의 노동자를 고용하면서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상황이다. 이는 불평등에 대해 많은 걸 알려주기에 충분하다. 이런 플랫폼, 이런 인프라는 정치적 권력이 분배되는 데서도 기회의 측면에서 제약을 준다.” 리프킨은 화석연료에 기반을 둔 1~2차 산업혁명이 근대적 국민국가와 글로벌 시장을 낳았지만, 그 궤적을 보면 소수의 거대기업과 소수의 강대국이 화석연료를 확보하고 제품과 서비스 제공을 독점하는 등 모든 곳에서 불평등을 초래했다고 진단했다. 이는 또한 각 나라의 무기화를 수반해 인류 사회를 대량파괴의 틀로 만들도록 했다고 지적했다. 이런 탄소 문명이 오늘날 기후변화 등을 일으켜 인류의 생존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류를 이런 위기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탄소 후 시대’를 안내할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이 필요한데, 그것이 바로 ‘3차 산업혁명’이란 게 그동안 그의 핵심 주장이었다. “4차 산업혁명은 픽션이자 마케팅 도구일 뿐” “3차 산업혁명은 인프라가 분산되고 수평적으로 확장되도록 설계된다. 모든 사람이 블록체인 플랫폼 및 네트워크에 참여하며, (에너지 자원은) 화석연료와 원자력에서 태양과 바람으로 이동한다. 이는 평화로운 지구를 만든다. 태양은 어디에나 빛나고 바람은 어디에나 있다. 누구든지 자신의 잉여 에너지를 공유할 수 있다. 이는 허구였던 ‘진보의 시대’에서 우리가 지구와 조화를 이루는 법을 배우는 ‘회복력과 적응의 시대’로 간다는 걸 의미한다.”  ― 당신이 말하는 3차 산업혁명은 클라우스 슈바프가 (2016년 세계경제포럼에서) 제시한 4차 산업혁명과 어떻게 다른가? “4차 산업혁명은 없다. 이것은 픽션이다. 슈바프는 인프라에 대해 오해하고 있다. 1차 산업혁명은 증기 펌프, 2차는 아날로그 전기, 3차는 디지털이다. 슈바프는 로봇공학, 인공지능 및 유전학이 너무 빠르게 움직인다고 보고 이를 혁명이라고 말했지만, 마케팅 도구였을 뿐이다. 세계경제포럼은 혼란을 일으켰다.” ― 당신은 기술변화의 미래가 ‘한계비용 제로 사회’를 낳고, 궁극엔 ‘협력적 공유사회’와 ‘공유경제’가 도래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너무 낙관적인 것 같다. “나는 낙관도 비관도 않는다. 희망적이다. 우리는 20만년 동안의 (인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지점에 있다. 내가 젊은이들에게 말하고 싶은 건 우리가 (기후변화를 가져오는) 탄소 기반 문명을 빠르게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이다. 20년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3차 산업혁명은 (기존) 경제 시스템을 바꿀 수 있다. 커뮤니케이션, 에너지, 운송 등의 (세가지) 디지털 기술이 사물인터넷 플랫폼으로 연결된 세상에서는 거래와 시장은 흐름(flow)과 네트워크로 움직이게 된다. 재산의 소유권에서 서비스에 대한 접근성으로, 생산성에서 재생성으로, 마침내 국내총생산(GDP)에서 삶의 질로 (패러다임이) 바뀐다. 이것이 공유경제다.” 리프킨은 이런 움직임을 ‘거래와 시장경제’에서 ‘디지털 네트워크 자본주의로의 이동’이라고 규정한다. 그는 이런 현상을 우리는 이미 확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매일 수억명의 사람들이 음악을 공유하고, 유튜브로 비디오를 공유하고, 소셜 블로그를 통해 뉴스를 공유한다. 이 중 어느 것도 지디피에는 포함되지 않지만 삶의 질을 높여준다.”이창곤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장과 제러미 리프킨 미국 경제동향연구재단 이사장이 인터뷰를 마친 뒤 못다 한 대화를 이어가고 있다. 양영웅 <뉴스데이> 기자“한국이 변화를 이끄는 리더가 되기를 희망” 그는 특히 “공유경제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와는 다른 새로운 경제 시스템으로, 그것은 놀라운 역사적 사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밀레니얼 세대와 제트(Z)세대가 향후 이 시스템을 사용할 것이며, 우리 모두에게는 좋은 선택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무엇보다 “지금은 문명, 경제, 사회의 근본적인 변화를 해야 하는 시점”이라며 “역사상 이처럼 좁은 길은 없었지만 더는 지연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래서 그는 “젊은이들이 거리로 나와야 한다”며 변화를 위한 청년의 직접 행동을 요구하기도 했다. ― 지난 9월 뉴욕에서 열린 기후정상회의를 봤는가? 현실에서는 세계 지도자들이 그런 ‘좋은 선택’을 하지 않고 있다. “정부 혼자서는 할 수가 없다. 시민사회 및 종교단체, 학생(조직) 및 상공회의소, 노동조합 등은 재난 중에는 모인다. 기후변화 세계에서 모든 공동체는 항상 재난 모드에 있어야 한다. 커뮤니티 전체가 수행해야 한다.” ― 그래도 핵심은 정치가 작동되어야 하는 게 아닌가? “요즘 아이들은 지정학이 아닌 생물권 정치를 배운다. 그들은 우리 삶의 모든 순간, 일상생활에서 하는 모든 일이 다른 인간, 다른 생물, 생태계 및 지구의 영역에 극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걸 배운다. 이것이 희망이다. 우리는 앞으로 지구의 소리를 들어 미래 세대의 인간과 다른 생물들이 그들의 순간을 갖도록, 삶이 새로운 방식으로 지속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나는 한국이 (이런 변화를 이끄는) 리더가 되기를 희망한다. 한국도 이제 생각을 빨리 바꾸어야 한다.” 이창곤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장 겸 논설위원 goni@hani.co.kr  제러미 리프킨은 누구? 세계적인 문명비평가이자 경제사회 사상가과학과 기술의 발전이 경제, 사회, 환경을 어떻게 바꾸는지를 예측해온 미래학자이자 문명비평가. <엔트로피>(1980) 이래 논쟁적인 저서를 잇따라 펴내면서 탁월한 사상가이자 활동가로 추앙받지만 일부에선 선동가로 엇갈린 평가를 받기도 한다.1945년 미국 콜로라도 덴버 출생. 1977년 비영리단체인 경제동향연구재단을 설립해 이사장을 맡고 있으며 1994년부터는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경영대학원)의 최고경영자 과정 교수로 재직하면서 세계적인 지도자 및 기업들의 자문에 응하고 있다. 단호함과 온화함을 동시에 보여주는 그는 특히 비전과 서사(내러티브)를 강조한다. <한계비용 제로 사회>(2014) 이후 저서를 내지 않았던 그는 최근인 지난 9월 미국 대선의 뜨거운 이슈인 ‘그린뉴딜’에 관한 책을 펴냈으며, 이 책의 국내판은 ‘글로벌 그린뉴딜’(민음사)이란 이름으로 내년 초 선보일 예정이다. 한겨레에서 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13030.html 

“기후변화 비상상황 선포하라” 시민 5천명 대학로서 ‘기후위기’ 선언

그레타 툰베리 선언한 ‘글로벌 기후 파업’ 일환 자전거 타고 행진하고 사상 최초 ‘다이-인 퍼포먼스’도   21일 오후 4시 서울시 종로구 혜화역 1번 출구. 경기도 화성에서 온 황혜진(13)양은 친구 4명과 태어나 처음으로 집회에 참석했다. 황양은 한 달 전 스웨덴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16)의 영상을 봤다. 툰베리가 태양광 요트로 대서양을 횡단한 뒤 미국 뉴욕에서 열린 ‘글로벌 기후 파업’에 참석한 자리에서 한 연설을 담은 영상이었다. 황양은 “영상을 보고 툰베리도 내 또래인데 나도 기후변화에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지구는 내가 살아가는 땅이고 지구가 없으면 내가 살 수 없어 지구를 지키기 위해 이 자리에 오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경민(18)양도 툰베리의 영상을 보고 장동규(18)군 등 48명의 성미산학교 친구들과 함께 집회에 나왔다. 이양은 툰베리의 영상을 보고 기후변화 문제는 개인의 행동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이양과 장군은 현장에서 향을 피우고 거울을 영정 사진 삼아 향 뒤에 둔 장례식 퍼포먼스를 했다. 장군은 “기후변화가 이어지면 우리 모두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장례식 퍼포먼스를 준비했다”며 “살아가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환경 운동이라고 생각한다. 당장도 당장이지만, 미래도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사회 각계각층의 330개 단체로 구성된 ‘기후위기 비상행동’이 이날 서울 대학로에서 ‘9·21 기후위기 비상행동’ 집회를 열고 기후위기에 침묵하는 정부와 온실가스 다배출 기업 등을 비판하며 기후위기 진실 인정과 비상상황 선포 등을 정부에 요구하고 나섰다. 이날 집회에는 주최 쪽 추산 5천명 정도 모였다. 참가자들은 ‘내일의 희망은 오늘 시작됩니다’, ‘지금 행동하지 않으면 미래는 없다’ 등과 같은 손팻말을 들고 집회에 참석했다. 이날 기후 행동 집회는 부산과 대구, 경남 창원 등 전국 10개 지역에서 함께 열렸다. 이날 집회는 23일부터 열리는 유엔 기후행동 정상회의를 두고 전 세계 젊은이들이 들고일어난 ‘글로벌 기후 파업’의 일환이다. 툰베리의 설명을 보면, 지난 17일까지 전 세계 139개국에서 20~27일 기후 파업에 동참하기 위한 집회가 4638개 예정된 것으로 집계됐다. 이 숫자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기후변화에 대한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전 세계적 집회가 열린 것은 이번이 세 번째인데, 규모 면에선 사상 최대 규모가 될 것이라고 미국 <시엔엔>(CNN)이 보도했다. 청소년기후행동 활동가 김도현(16)양은 단상에 올라 “우리나라가 공장을 짓고 석탄 화력발전소를 짓는 동안 남태평양의 섬나라는 물에 잠기고 동남아시아 사람들은 태풍으로 삶의 터전을 잃게 된다”며 “저에게 편리한 생활을 보장해주는 대한민국의 시스템이 지구 반대편 어떤 이의 삶을 짓밟고 있다면, 저는 그 시스템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청소년기후행동 활동가 오연재(17)양도 “기후변화는 더 이상 북극곰만의 문제가 아니고 우리의 문제”라며 “모두가 기후변화에 관심을 가지지 않고 있어 청소년인 우리라도 방관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 청소년기후행동 활동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청소년기후행동은 금요일인 오는 27일 최대 5천명가량의 청소년이 학교 수업을 거부하고 서울 광화문에 모이는 ‘기후를 위한 결석시위’를 계획하고 있다. 툰베리가 시작한 ‘기후를 위한 등교거부’가 한국에도 확산하는 것이다?. 집회 참가자들은 오후 4시30분께 혜화역 1번 출구에서 종각역으로 행진했는데, 행진 대열은 자전거 행렬이 앞장섰다. 자동차보다 친환경적인 자전거를 이용하자는 의미다. 자전거 행렬 중에는 ‘불타는 지구를 지켜줘 출동! 지구특공대!’라고 적힌 망토를 두른 사람도 있었고, 기후위기 노래에 맞춰 각자 만들어 온 손팻말을 흔드는 이들도 있었다. 시위 참가자들은 행진하면서 “기후위기 이제그만”, “온실가스 이제그만”, “화력발전 이제그만” 등의 구호를 외쳤다.?   행진 대열은 오후 5시48분께 종각역에 도착해 여러 사람이 한 장소에서 죽은 듯이 드러누워 항의를 표현하는 ‘다이-인(die-in) 퍼포먼스’를 했다. 기후위기로 모든 생명이 죽음에 처한다는 것을 경고하는 의미다. 한국에서 수천 명의 시민들이 참여한 다이-인 퍼포먼스는 처음이다.   글·사진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한국형 지속가능발전목표’(K-SDGs) 어디쯤 가고 있나

[더 나은 사회]정부, 시민사회와 지난해 ‘K-SDGs’ 수립기업 지속가능 글로벌 기준 인식 높여야이해관계자 상시적 공론장 마련 필요위원회 지위 격상 등 법체계 정비해야국제민간연구기관인 ‘지속가능발전 해법네트워크’(SDSN)가 발표한 ‘2019 지속가능발전보고서’를 보면, 17개 지속가능발전목표 중 우리나라는 성평등, 이행 수단 및 파트너십과 함께 기후변화대응 목표에서 심각한 상태인 것으로 평가됐다. 지난 9월21일 서울 광화문광장에 1천여명의 시민이 모여 정부와 기업의 진정성 있는 기후위기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한국형 지속가능발전목표’ 수립 9개월.정부가 지난해 12월 국가 지속가능발전목표(K-SDGs)를 발표한 지 9개월이 흘렀다. 2015년 유엔이 전세계적으로 환경과 경제, 사회 분야별로 균형 있는 발전을 강조하며 17개 지속가능발전목표(SDGs)를 내놓았고, 이에 발맞춰 각국 정부도 저마다 나라별 실정에 맞춘 후속작업을 진행해 왔다. 한국의 경우, 국정농단에 따른 대통령 탄핵으로 조기 대선이 치러지는 등 지속가능발전 논의 자체가 어려웠던 사정을 고려하더라도 꽤 늦은 편이라 할 수 있다. 성과를 판단하기엔 조금 이른 시기이다. 하지만 지속가능발전법에 따라 2년에 한차례씩 지속가능발전 이행 성과를 평가·보고해야 하기에 중간 점검 정도는 필요한 시점이라 할 만하다. 때마침 8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중소기업 디엠시(DMC)타워에서는 ‘국가 지속가능발전목표 대토론회’가 열린다. 주최자인 환경부를 비롯해 외교부·교육부 등 주요 부처 관계자가 시민들과 함께 의견을 나누는 자리다. 지속가능발전목표를 담당하는 행정 부처들이 지금까지의 추진 현황을 발표하기로 해, 실질적인 중간 점검의 자리가 될 예정이다. “기업, 글로벌 소통 도구로 인식해야” 과연 현장 분위기는 어떨까. 무엇보다 국내 주요 기업이 지속가능발전목표 이행을 위해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기업은 지속가능발전의 핵심 이해관계자라 할 수 있다. 기업은 경제성장, 산업혁신 및 기반시설 등 경제 분야뿐 아니라 기후변화, 에너지 등 환경 분야, 건강 증진과 웰빙, 지속가능도시 등 사회 분야에 이르기까지 17개 지속가능발전목표 전반에 직간접적으로 연계돼 있다. 유엔도 지속가능발전목표 달성을 위해선 글로벌 기업과의 협력이 중요하다고 일찍부터 강조해왔다. 실제로 지난 9월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 유엔 고위급 정상회담에서도 글로벌 기업들과 기업 협회들을 파트너로 초대하는 등 각국 정부에 버금가는 핵심 이해관계자로 대우했다. 이에 화답하듯 글로벌 기업들의 참여도 상당히 적극적인 편이다. 구글과 알리바바는 지난달 유엔 및 세계은행과 협약을 맺어 지속가능발전목표 이행에 필요한 데이터 취합과 개발도상국들을 위한 글로벌 데이터 작업을 지원하기로 했다. 이러한 국제적인 흐름과 대조적으로 국내 산업계의 움직임은 아직 더딘 편이다. 지난해 환경부는 국책연구원을 비롯한 학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전문가 그룹, 민간 관계자들로 구성된 작업반 그룹, 그리고 유엔에서 지명한 여성·노조·기업·장애인 등 목표별 민간 이해관계자 그룹을 조직한 바 있다. 시민단체 90여곳, 민간 전문가 192명, 23개 행정부처가 참여한 이례적인 민관학 대국민 협력 프로젝트였으나, 기업 관계자들은 좀체 찾기 어려웠다. 124명의 민간 이해관계자 중 기업 협회로는 유엔 산하 유엔글로벌콤팩트 한국협회와 지속가능발전기업협의회가 참여했고, 기업 관계자로는 삼성과 포스코의 실무자가 참여했을 뿐이다. 이처럼 국내 기업들의 참여가 저조한 데는 지난 정부 시절의 국정농단 사태에 전국경제인연합회와 국내 대기업들이 연루된 점도 배경으로 꼽힌다. 당시 전경련 사회공헌팀을 중심으로 주요 대기업 사회공헌팀, 사회책임경영팀들이 불법 자금을 대는 통로 구실을 한 사실이 드러난 것. 이후 관련 조직 대부분 규모가 줄어들거나 활동이 축소됐다. 기업의 지속가능활동 정보를 공개하는 지속가능경영보고서 발행 건수에도 이러한 추세가 반영돼 있다. 지속가능경영원 자료에 따르면, 2009년 66건이던 지속가능경영보고서 발행 건수는 2014년(117건) 정점을 찍은 후 계속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그나마 지방자치단체 및 공공기관을 제외하면, 매출액 100대 기업 중 보고서를 발행한 곳은 절반 정도다.국가 지속가능발전목표 민간 작업반과 기업 부문 이해관계자 그룹 대표로 참석한 이은경 유엔글로벌콤팩트 한국협회 책임연구원은 “국내 이행 성과가 저조한 것으로 나타난 기후변화나 생태계 보전, 이행 수단 및 파트너십 등의 목표는 기업과의 협력이 필수적인 분야”라며 “지속가능발전목표는 글로벌 국가와 기업들의 국제적 합의로서, 국내 기업들도 규제 정책으로만 받아들이지 말고 새로운 사업 기회와 효율적인 글로벌 소통 도구로 인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기업의 이런 소극적인 자세는 시민단체들이 국가 지속가능발전목표 수립 작업에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해온 것과 대조적이다. 여성, 장애인, 이민자 단체를 아울러 40개가 넘는 시민단체가 5개월의 의견 수렴 과정에 적극적으로 관여했다. 윤경효 한국지속가능발전센터 사무국장은 “17개 지속가능발전목표는 시민단체들이 주장해온 가치와 활동 목표를 그대로 담고 있기 때문”이라며 “정부, 기업 등 사회 각계 이해관계자들의 유용한 소통 도구로 활용되려면 유엔 지속가능보고서의 기본가치인 협력과 포용성의 가치가 담긴 목표와 추진체계가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환경부, 8일 국민대토론회 열어지속가능발전목표가 한국 사회에 제대로 뿌리내리기 위해선 서둘러 보완해야 할 점이 한둘이 아니다. 추진체계와 의견 수렴 과정에 아쉬움을 나타내는 목소리도 있다. 정부는 유엔 지속가능발전목표의 핵심 가치인 ‘누구도 소외되지 않도록’(No one left Behind)을 실현하기 위해, 지난해 6월부터 10월까지 전국 순회 토론회를 수차례 개최한 바 있다. 이 과정을 거쳐 완성된 초안은 유엔에서 지명한 여성, 노조, 장애인, 기업 등 17개 민간 이해관계자 그룹에서 목표별 의견을 담은 입장 문서를 받아 수정 작업을 거쳤다. 그럼에도 이해관계자들이 목표별로 이행 현황을 공유하고 의견을 나누는, 상시 운영되는 공론의 장이 필요하다는 현장의 목소리가 나온다. 윤경효 사무국장은 “지난해 이해관계자들이 입장 문서를 검토하고 정리하기에는 시간이 충분치 않았다”며 “17개 지속가능발전목표별로 국제개발협력, 사회복지, 자활 등 다양한 전문가와 시민단체의 의견이 고르게 수렴될 수 있는 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 부처 내 효율적인 거버넌스 체계 정립을 위해 지속가능발전법 개정이 시급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지속가능발전목표는 목표별로 정부 부처의 담당 영역이 중첩되기 때문에 해당 정책과 이행 주체를 조정할 수 있는 기능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이런 기능을 담당해야 할 지속가능발전위원회가 환경부 산하에 있다 보니 국무조정 기능이 전무한 상태다. 문태훈 지속가능발전위원장은 “지속가능발전위원회를 국무총리 산하 위원회로 지위를 격상하는 안을 담은 개정안이 발의돼 있다”며 “지속가능발전목표를 수립하고 추진하는 지방 정부의 역할과 의무도 개정안에 함께 담겨 있다”고 덧붙였다. 문 위원장은 “8일 열리는 국민대토론회를 비롯해 이달 개최되는 분야별 이해관계자 집중 토론 자리를 통해 국민의 의견을 최대한 수렴해 지속가능발전목표 내용과 데이터를 계속해서 수정, 보완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유엔은 2015년 미래세대를 고려해 현세대의 요구를 충족하는 발전 방식으로 경제, 사회, 환경의 균형 있는 발전을 강조하는 17개 지속가능발전목표(SDGs)를 발표했다. 지속가능발전포털 누리집 갈무리  글·사진 박은경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연구원 ekpark@hani.co.kr한겨레에서 보기: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912226.html 

“‘멸종위기종’ 청소년들아, 27일 광화문으로 다 모여라”

청소년기후행동 활동가 오연재(왼쪽), 김서경(오른쪽)양이 지난달 9일 서울 홍대입구역 근처 횡단보도에서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알리는 손팻말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청소년기후행동 제공 “인류 대재앙이 얼마 남지 않았다.” 과학자들의 경고다. 지구 기온이 산업화 시대(1850~1900년) 대비 섭씨 1.5도 이상 오르면 ‘기후재앙’이 오고, 2도 이상 상승하면 인류는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을 맞을 것이라고 이들은 예고한다. 기후재앙을 피하기 위해 우리가 쓸 수 있는 탄소는 약 10년어치에 불과하다. 급진적인 탄소 저감 없이 이대로 가면, 2030년이면 인류는 ‘기후재앙’을 피할 수 없다는 뜻이다. 오는 27일 청소년들이 학교 ‘결석’을 감행하며 거리로 나서는 것은 ‘생존’ 때문이다. 지난 10일 서울엔피오(NPO)지원센터에서 만난 청소년기후행동 활동가 김서경, 김유진, 오연재(18)양과 김보림(27)씨는 “2030년이 됐을 때의 우리 모습을 그릴 수 없다”며 “전 인류가 멸망할 수 있는데도 사람들은 여전히 위기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청소년기후행동에는 청소년·청년 40여명이 활동하고 있다. 김유진양은 ‘개도국’ 지위에 숨어 기후위기 책임에서 벗어나고 있는 한국 정부의 태도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양은 “한국은 처음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에 참여할 당시(1992년) 개도국의 지위였기 때문에 지금까지 그 지위를 유지해오고 있다. 그러나 이제 온실가스 배출량과 국내총생산(GDP) 면에서 개도국 지위 뒤에 더는 숨을 수 없는 위치이지만, 우리는 기후위기에 기여한 만큼 책임을 다하지 않는 것 같아 부끄럽다”고 말했다.지난 5월24일 300여명의 청소년들이 ‘기후악당국가 탈출을 위한 교육개혁’을 요구하는 내용의 펼침막을 들고 서울 광화문에서 서울교육청 쪽으로 함께 걸어가고 있다. 이날 기후파업은 청소년기후행동이 주도했다. 청소년기후행동 제공 청소년기후행동은 지난 3월15일과 5월24일에도 기후악당국가 탈피를 위한 ‘기후파업’을 벌여 등교거부 운동을 주도했다. 결석시위 뒤에도 기후위기에 대한 언론과 정부, 시민들의 무관심은 계속됐다. 김서경양은 “(500여명이 참여한) 3월 기후파업은 우리 스스로에게도 새로운 충격이었다. 그 뒤 많은 사람이 기후위기에 관심을 갖고 함께하게 될 거라 기대했으나, 큰 착각이었다. 여전히 무관심한 사람들과 바뀌지 않는 현실을 보며 우울감이 심해졌다. 만나면 서로 끌어안고 울었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좌절만 하고 있을 순 없었다. 지난 8월부터 토요일마다 손팻말을 들고 ‘기후출몰행동 뿅’이라는 거리시위 행위극을 시작했다. 기후재앙을 앞둔 막막함과 두려움을 떨칠 수 있는 방법은 결국 ‘행동’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미래를 꿈꿀 수 없는 청소년들의 ‘살려달라’는 몸부림이었다. 이들은 9월이 끝나기 전 ‘기후를 위한 결석시위’란 이름의 또 하나의 대규모 기후행동을 계획하고 있다. 유엔 기후행동 정상회의에 맞춰 지난 20일 세계 여러 나라에서 진행된 ‘결석시위’의 연장선이다. 오연재양은 “오는 27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서울 광화문 세종로공원에서 길 위의 기후위기 세미나, 가을운동회, 기후대응 성적표 발표, 모든 우리 세대 자유발언으로 집회를 할 예정”이라며 “많은 청소년과 청년, 시민의 관심과 참여를 부탁한다”고 당부했다. 이날 참석자들은 청와대로도 향한다. 문재인 대통령과 정부에 꼭 하고 싶은 말을 편지에 담아 전달할 계획이다. 김보림씨는 25일 “우리나라는 온실가스 감축계획을 만들고도 제대로 지키지 않아 그동안 배출량이 줄지 않고 오히려 늘어나기만 했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은 지난 24일 유엔 기후행동 정상회의에서 우리나라가 파리협정을 충분히 잘 이행하고 있는 것처럼 말하고 ‘푸른 하늘의 날을 만들자’는 엉뚱한 이야기만 했다”며 “정부는 여전히 상황의 심각성과 시급성을 무시한 채 계속 우리의 미래를 위협하고 있다. 우리는 이제 정말 거리로 나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최예린 기자 floye@hani.co.kr청소년기후행동이 지난 5월24일 서울교육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기후위기에 대응할 수 있도록 교육제도 전반을 개선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청소년기후행동 제공 ?오는 27일 서울 광화문 세종로공원에서 열리는 ‘927 기후를 위한 결석시위’ 안내문. 안내문의 사진은 청소년기후행동 활동가 김서경양이 지난달 31일 북촌 방향 돌담길 앞에서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알리고 정부와 기업의 적극적인 대응을 촉구하는 1인시위를 하는 모습. 청소년기후행동 제공 한겨레에서 보기:http://www.hani.co.kr/arti/society/environment/910972.html?